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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88994207742
· 쪽수 : 88쪽
책 소개
목차
세계와 바지
장애의 화가들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리뷰
책속에서
유동하는 이 평면들, 떨리는 이 윤곽선들, 안개 속에서 재단된 듯한 이 몸들, 아무것도 끊어낼 수 없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스스로 끊겼다 다시 형성되기를 거듭하는 이 균형들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호흡하고 헐떡이는 이 색채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들끓는 듯한 정지 상태에 대해서는? 이 무게도, 힘도, 그림자도 갖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헤엄치고, 빠져 달아나고, 되돌아오고, 해리되었다가, 재형성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끊어진다. 분자들의 반란, 풍화되기 1천분의 1초 직전인 돌의 내부라고 하면 될까.
그거다, 문학은.
-「세계와 바지」
A. 판 펠더는 펼쳐진 것(l'étendue)을 그린다.
G. 판 펠더는 연속을 그린다.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으려면, 더구나 재현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것을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하기에, 전자는 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 태양의 채찍질 아래 마치 팽이처럼 도는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하나의 내적 감각으로 만든다. 그리고 정확히 그와 같은 이상화의 방편을 통해 그는 예의 객관성, 그 선례 없는 선명함을 확보하며 이 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A. 판 펠더의 독창적 발견은 그 점에 있다. 명료하게 보고자 하는 필요를 극단적으로 팽팽하게 밀고 간 덕분의 결과다.
반면 후자는 고스란히 바깥을 향해, 빛 아래 사물들의 소란을 향해, 시간을 향해 돌려져 있다.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갖는 일은 오직 시간이 뒤흔드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그것이 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그렇다. 스스로를 온전히 바깥에 제공함으로써, 시간의 전율에 의해 요동하는 대우주를 가리켜 보임으로써 G. 판 펠더는 자신을, 혹은 인간을 그가 보유한 가장 확고부동한 사실 속에, 즉 현재도 휴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 속에 실현해낸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겸허한 산법을 따르자면, 아무도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저 강물의 재현이다.
-「세계와 바지」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대상은 그저 그것 자체일 뿐이니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일 뿐이니까.
이 두 종류의 예술가들, 또는 대상-장애(empêchement -objet)와 시선-장애(empêchement-oeil)라는 두 종류의 장애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장애를, 사람들은 셈에 넣어왔다. 그에 대한 조절이 가해져왔다. 그럼으로써 이들 장애의 문제는 재현의 범위로 귀속되지 않았다. 혹은 거의 귀속되지 않았다. 반면, 판 펠더 형제에게서 이 장애들은 재현의 일부이다. 심지어 그들에게선 그것들이야말로 재현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되리라. 그리는 행위를 저애(沮礙)하는 어떤 것, 바로 그것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헤르 판 펠더는 (나의 취약한 견해에 의하면) 첫 번째 부류의 예술가이며, 브람 판 펠더는 두 번째에 속한다.
-「장애의 화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