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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이탈리아소설
· ISBN : 9788994217901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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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부인은 자랑스러웠다. 외로움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특권처럼 보였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든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의 습관에 길들여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도 결국 쉽게 깨지지 않는 두꺼운 껍질을 쓰기 마련이다. 그러면 함께하는 삶은 보잘것없어지고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소모적인 참호전이 일어난다. 양보나 타협은 모두 골칫거리가 되고 무엇이든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런저런 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점점 더 서로의 거리는 멀어진다. 퀴리나 부인은 혼자서도 잘 지냈고, 그거면 충분했다.
얼마 후 퀴리나 부인이 후작 사위에게 두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사위는 한술 더 떠서 마르크스가 했던 비유까지 들먹였다. 마르크스도 언젠가 자신의 책에서 땅 위로 단번에 올라오는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빈틈없이 굴을 파는 늙은 두더지를 혁명과 비교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제목이 ‘두더지’라 붙은 별책 부록까지 있었으니 마르크스가 두더지에 꽤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두더지는 꼭 필요한 시간 동안만 어미 노릇을 하고 그만둔다. 가정을 꾸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완벽한 전문가다. 강한 의지를 지닌 이 진정한 프로토 페미니스트는 주인에게 속박되기를 거부하고 사교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마다한다. 이것이 두더지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걸까? 물론 고독이 두더지에게 형벌과 같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