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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증산도
· ISBN : 9788994295022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북부여기』는 어떤 책인가
북부여기 상
시조 단군 해모수 재위 45년
2세 단군 모수리 재위 25년
3세 단군 고해사 재위 49년
4세 단군 고우루(일명 해우루) 재위 34년
북부여기 하
5세 단군 고두막(일명 두막루) 재위 22년
6세 단군 고무서 재위 2년
가섭원 부여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2세 금와 재위 41년
3세 대소 재위 28년
부록
01 일본 문화의 뿌리 동방 배달의 삼신 문화
02 참고 문헌
03 참고 문헌 사료 원문과 해석문
04 『북부여기』원문
책속에서
『북부여기』는 어떤 책인가?
1. 한민족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1) 부여사의 역사적 의미
한민족사에서 ‘부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나라는 하나가 아니다. 대부여, 북부여, 졸본부여(동명부여), 동부여(가섭원부여), 갈사부여(갈사국), 연나부부여(서부여), 남부여(백제) 등 여러 부여가 나타난다. 이 중 대부여는 고조선 말 44세 구물단군 때 조선이란 이름을 바꾼 것이지만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하는 부여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동부여와 가섭원부여는 같은 나라의 다른 명칭으로 북부여의 태자 해부루가 동명왕 고두막한의 압력에 의해 가섭원으로 이주하여 세운 것이다. 졸본부여는 동명왕 고두막한이 세운 나라로, 후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나라를 세운 지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나부부여(혹은 그 왕의 성을 따서 낙씨 부여 또는 서부여라고도 한다)는 동부여가 망한 후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동부여의 유민집단으로 독립된 나라는 아니다. 남부여는 백제 말 제26세 성왕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면서 부른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북부여인데, 이 북부여가 부여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나라이다. 『환단고기』에 실린 부여사의 사서 이름이 『북부여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북부여는 고조선(대부여)의 국통을 계승한 국가였고 그로부터 동부여,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의하면 부여 황실의 딸 파소婆蘇가 만주로 부터 경주 지역으로 도피하여 낳은 아들이다. 요컨대 고조선에서 열국시대로 옮겨갈 때 중요한 고리 구실을 한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여의 역사를 잃어버렸다. 우리 상고사에서 잃어버린 고리, 부여사를 찾는 열쇠가 바로 이 북부여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밝혀내는 일이다.
북부여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런 격동의 시기였다.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에 따르면 북부여는 대부여(곧 고조선)가 망하면서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BCE 239년부터 북부여가 망한 BCE 58년까지 180여 년의 기간을 말한다. 연나라의 위만 일당이 번조선으로 망명하였다가 준왕의 왕위를 찬탈하고 소위 위만조선을 세웠다. 위만정권은 다시 한무제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지역에 ‘조선족의 4개 자치 군현’이 설치되었다. 그 후 고두막한이 졸본부여(BCE 86~BCE 58)를, 해부루가 동부여(BCE 86~CE 22)를 세웠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BCE 58)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혼란기를 타고 이루어진 것이다.
북부여사는 이와 같이 고조선시대에서 열국시대로 열려 나가는 과정에서 두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 구실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 거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날 사대주의 사가들과 일제하 식민사학자들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고조선 승계설을 주장하며 고조선과 부여의 계승 관계를 단절시켜 놓았다. 즉, 그들은 대동강 일대의 고조선을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계승하였으며, 만주의 예맥족이 부여를 세웠고 여기서 고구려가 나왔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결과 배달국과 단군조선으로 내려오는 민족사의 국통맥은 사라져 버렸다. 국통맥이 부여사에 와서 끊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 왜곡된 까닭은, 주체성을 상실한 역사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여사에 대한 사료의 부족에도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고려시대 복애거사 범장이 남긴 『북부여기』는 북부여와 동부여의 뿌리,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을 상세히 밝힌 유일한 문헌으로서 우리 상고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수 있는 너무도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최근 문제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고 할 것이다.
<북부여의 계보>
시조 해모수解慕漱단군 재위 45년(BCE 239~BCE 195)
2세 모수리慕漱離단군 재위 25년(BCE 195~BCE 170)
3세 고해사高奚斯단군 재위 49년(BCE 170~BCE 121)
4세 고우루高于婁단군 재위 34년(BCE 121~BCE 87)
5세 고두막高豆莫(동명왕)단군 재위 49년(BCE 108~BCE 60)
6세 고무서高無胥단군 재위 2년(BCE 60~BCE 58)
<가섭원부여(동부여)>
시조 해부루解夫婁왕 재위 39년(BCE 86~BCE 48)
2세 금와金蛙왕 재위 41년(BCE 48~BCE 7)
3세 대소帶素왕 재위 28년(BCE 7~CE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