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극동아시아사
· ISBN : 9788994606309
· 쪽수 : 568쪽
· 출판일 : 2014-09-22
책 소개
목차
개정판에 부쳐1 일국사를 넘어선 역사 읽기_기시모토 미오
개정판에 부쳐2 족보와 한국의 평등의식_미야지마 히로시
1장_ 동아시아 세계의 지각변동
송·원 시대의 유산
가시적인 동아시아 세계 | 몽골제국의 유산
흔들리는 고려왕조
공민왕의 반기 | 경주의 설씨 | 이성계의 대두
원 말기의 반란과 주원장
빈곤한 회서 지역 | 원 말기의 반란들 | 주원장 세력의 대두
명 왕조 지배의 확립
회서의 기풍 | 유교적 정통주의 | 공포정치
조선왕조의 건국
태조 이성계의 즉위 | 용의 눈물 | 위대한 발명, 한글 | 보기 드문 독재자 세조
넓어지는 국제적 시야
『해동제국기』 | 조선 사절이 본 중세 일본
2장_ 명 제국의 확대
명 정권 초기의 '남과 북'
명 왕조의 중심 | 건문제와 연왕 | 북경 천도 | 새 수도 북경
영락 시대의 대외발전
몽골 원정 | 동북의 여진족 | 정화의 대항해 | 환관과 주변 민족
명대의 조공 세계
명대의 조공관계와 해금 | 류큐와 말라카
수세에 선 명 제국
토목의 변 | 끊어진 곳 없는 만리장성
명대 중기의 국가와 사회
성화·홍치의 성세 | 황제와 중앙관제 | 지방 행정제도 | 과거와 신사 |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던 황제
3장_ 양반의 세기 - 16세기 조선
유희춘과 『미암일기』
『미암일기』 | 유희춘의 생애 | 다채로운 등장인물들
양반관료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조선과거론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 중국과의 비교 | 과거와 양반 | 사림파 정권 성립의 의의
친족 네트워크
유희춘을 둘러싼 친족들 | 쌍계적인 친족개념 | 족보 편찬의 시작 |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와 관련해서
향촌사회와 지방통치
담양 향안 | 양반은 신분인가? | 유향소와 경재소 | 개발의 시대 | 양반들의 경제력
양반의 정신세계
독서광 유희춘 | 계몽정신 | 16세기 대유학자들 | 문학하는 마음
시대의 변천
그 후의 유희춘 일가 | 무대는 바뀌고 | 당쟁의 시작 | 좁아지는 국제적 시야
4장_ 후기 명 제국의 빛과 그림자
북방 방위와 재정 문제
풍속의 변화 | 북방정세-장성을 넘는 한인들 | 명 재정과 은 문제
동남 연안의 왜구
일본 은의 등장 | 왜구 집단의 성장 | 가정의 대왜구 | 북로남왜 문제의 완화 | 북로남왜 와 은의 흐름
명말의 도시와 농촌
관료·상인의 축재 | 농촌 수공업 | 도시 서비스업
공동성와 질서
양명 선생의 돈오 | 갓난아기의 마음 | 명말 사회와 양명학 | 양명학의 급진화와 양명학 비판
정치의 계절
가정제의 시대 | 서계와 해서 | 장거정의 시대 | 중앙과 지방 | 위충현과 개독의 변 | 초 망의 지사와 ‘조로’한 영웅들 | 명말 '시민' 사회 | 살찐 환자
5장_ 화이변태
세계 시스템과 동아시아
『화이변태』 | 은을 둘러싸고 | 19세기와 비교하여
임진·정유왜란
'상업의 시대'와 신흥국가 | 안동 하회에서 | 『징비록』으로 보는 임진·정유왜란 | 점령지 에서의 일본군
변경의 자립세력
변경 '권력'의 동시 발생 | 요동의 군벌 이성량 | 남해의 주인공 정지룡 | 남과 북의 신흥 세력
청의 성장
누르하치의 등장 | 후금국의 성립 | 후금의 진격 | 홍타이지의 시대
명의 멸망
궁핍한 농민의 반란 | 전설에서 사실로 | 북경 함락과 청의 입관 | 남명 정권 | 청의 중 국 대륙 정복 | 명의 유민들
청 왕조 지배의 확립
정씨와 대만 | 삼번의 난 | 주변세력의 결승전
6장 조선 전통사회의 성립
호란과 소중화
포로가 된 왕자들 | 광해군의 균형외교 | 『조선왕조실록』과 두 종류의 『광해군일기』 | 인조반정과 호란 | 소중화
당쟁으로 죽어간 사람들
당쟁의 경위 | 나주 나씨와 해남 윤씨 | 당쟁에 대한 평가
지배체제의 재편
세제의 변혁 | 균역법 | 호적과 양안 | 전통농법의 성립
전통의 형성
네덜란드인이 본 17세기의 조선 | 친족제도의 변화 | 마을의 형성 | 장시와 상업 | 상업 의 위치
7장_ 청 왕조의 평화
강희 시대의 국제환경
강희제의 시대 | 동남의 해상무역 | 러시아와 만나다 | 중가르와의 싸움
청 황제의 두 얼굴
칸과 황제 | 연회와 사냥 | 자금성 내의 학자 황제 | 역법 논쟁 | 청 황제의 다문화적 소 양 | 주접 정치
청 왕조 국가의 비전
옹정제의 즉위 | 『대의각미록』| 옹정제의 사회관 | 황제가 쥔 줄사다리
유럽에서 본 중국
기독교 포교와 전례 문제 | 계몽주의자들이 본 중국
8장_ 새로운 도전자들 - 왕조 말기의 조선
향촌사회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향전 | 향리의 세계 | 향리 조직과 그 역할 | 향리층의 양반 지향
실학과 천주교
실학의 '발견' | 『열하일기』의 비판정신 | 실학 사상가의 위치 | 천주교의 전래 | 양반 들의 천주교 수용 | 중인층의 천주교 수용 | 연행사와 통신사
정조의 꿈과 좌절
영조와 탕평책 | 정조와 규장각 | 정조와 정약용
사회변동을 예감하다
신분제의 동요 | 노비제의 해체 | 『춘향전』의 세계
근대를 전망하며
민란의 시대 | 흥선대원군의 등장 | 대원군의 권력 기반
9장_ 성세에서 위기로
『홍루몽』과 『유림외사』
청대의 사풍 | 『홍루몽』논쟁 | 과거와 중국사회 | 청대의 고증학
'십전노인' 건륭제
판도의 확대 | 청 왕조의 통치구조
호황의 시대
빈발하는 식량폭등 | 구미선 무역의 활성화 | 칸톤 시스템
산구 경제와 종교반란
동서의 '인구론' | 이주민의 사회 | 가경 백련교의 난
10장 사람과 사회 - 비교 전통 사회론
중국의 '가'와 사회단체
‘차등적 질서구조’ | ‘가’란 무엇인가 | 명청 시대의 종족 형성 | '동기'의 감각과 사회집단
조선의 사회조직 - 중간단체를 중심으로
헨더슨의 정치사회론 | 조선의 중간단체 | 중국·일본과의 비교
대담 ‘왜구적 상황’에서 ‘쇄국’으로
연표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글 제정은 조선의 문자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왜 이 시점에서 독자적인 민족문자가 만들어진 것일까? 이 문제는 언어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한국어의 구조 자체가 독자적인 표음문자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한국어 음절의 특징상 자음으로 끝나는 것이 매우 많은데, 즉 하나의 음절이 자음+모음+자음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다른 언어보다도 음절의 수가 훨씬 많아진다. 일본어는 100개도 안 되는 음절밖에 없고, 하나의 음절을 하나의 문자로 표시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한국어의 경우에는 음절 수가 1만 가까이 되는 것이다.
음절의 종류가 이렇게 많기 때문에 한 음절에 하나의 문자를 대응하면 1만 가까운 문자가 필요하게 되고, 이것으로는 한자와 마찬가지로 그 습득이나 사용이 극히 어렵다. 한자를 차용해서 만든 베트남의 민족문자 추놈 등은 이 방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 번잡성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음과 모음의 종류만큼 문자를 만들고, 그 문자를 조합해서 음절을 나타내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다. 한글이 자음자와 모음자로 이루어진 표음문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언어보다도 민족문자의 제정이 훨씬 곤란했던 것이고, 그 제정을 위해서는 음성학적인 치밀한 연구를 필요로 하였다.
한쪽에는 혹한의 삼림·산지의 특산품인 초피나 인삼의 이득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성량 군단, 한쪽에는 햇빛 넘치는 바다를 무대로 은과 생사의 교역으로 거대한 이익을 얻은 정지룡 선단이 있었다. 양자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공통의 특질을 발견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자에서 공통의 배경을 이룬 것은 16세기부터 17세기 초에 걸친 동아시아의 국제 교역 붐이다. 두 세력 모두 국제 상업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사상인(私商人)에 머무르지 않고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변경의 상업 질서를 지탱하는 무인이 되었다. 그들 군사력은 명 정부에 공인되어 명의 군사조직 일부가 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수령에게 개인적인 충성심을 가지는 사병에 의해 지탱되었다. 다문화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그들의 리더십은 다양한 민족 집단이 제휴하고 반발하는 변경지대의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단련되었다. 강한 응집력을 가진 그들의 시야는 ‘외향적’이었고, 필요하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 기회주의적 내지는 현실주의적 재능이 그들의 장점이었다.
이들 세력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명 정부는 그들의 힘을 빌려서 변경·연안의 치안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량으로 투하된 군비는 그들의 사복을 채울 뿐만 아니라 변경의 상업 붐을 부채질하고 그 상업 이익을 둘러싼 여러 집단 간의 분쟁은 더욱 격화되어 무역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 명 정부는 더욱 깊이 그들엑 의존하게 되었다. 명말 중앙정부에 의한 엄격한 징세는 사람들의 원망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는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변경의 자립세력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와 군사의 무제중심이 주변부로 이동해가는 강력한 원심력 속에서 명의 지배는 해체되어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