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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비교 통사

한중일 비교 통사

(역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

미야지마 히로시 (지은이), 박은영 (옮긴이)
  |  
너머북스
2020-12-03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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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비교 통사

책 정보

· 제목 : 한중일 비교 통사 (역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동아시아/극동아시아사
· ISBN : 9788994606620
· 쪽수 : 404쪽

책 소개

2002년 도쿄대 교수를 박차고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된 바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이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2013)에 이은 역작 『한중일 비교 통사』를 냈다.

목차

서문

1부_통사: 전통의 성숙과 새로운 시대로의 항해
(14~19세기 전반)


1장 14세기 동아시아의 정치 변동
왕조교체, 정권교체의 파도
원에서 명으로|강남의 경제력과 북경 천도|조선 왕조와 무로마치 막부
주자학 이념에 기반한 국가체제
주자학의 새로움|과거 관료제와 사대부|한국과 일본의 주자학 수용과 비수용
동아시아 국제 교역 체제
조공 체제의 재확립|정화의 남해 원정|북방 지역의 동정
류큐 왕국의 성립과 번영

2장 생산·생활 혁명
집약도작의 보급
동아시아 도작의 특징|중국의 집약도작 확립 과정|한국과 일본의 집약도작의 길
생활혁명과 문화교류의 양상
옷감 혁명|전통적 생활양식의 성립|문화교류의 여러 양상

3장 16세기 유동하는 동아시아
유럽 세력의 등장과 은의 비등
조선과 일본의 은|포르투갈의 동아시아 무역 참여|아메리카 대륙의 은과 스페인
동아시아 사회의 유동화
16세기 명의 화폐경제와 양명학|조선 사회의 계층화 현상|일본의 센고쿠 시대
도요토미 정권의 조선 침략과 동아시아
왜구와 도요토미 정권|임진·정유왜란=분로쿠·게이초의 역=만력조선역
동아시아의 구조 변동

4장 17세기 해금의 시대로
화이변태
만주족의 대두|명·청 교체와 동아시아의 변동|화기와 동아시아 대변동
화이변태
동아시아 삼국의 국가체제
국가 틀의 강화|국경의 획정|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
경제적 아우타르키
청의 무역 체제|청의 조공 체제|조일 국교 회복과 조선통신사
도쿠가와 정권의 네 개의 창구|자급자족적 경제 체제|문화적 교류의 심화

5장 전통사회의 성숙
사대부, 양반, 무사
사대부와 양반|도쿠가와 일본의 무사|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특질
종족, 문중, 이에
부계 혈연 원리의 강화|가족·친족 결합의 확산
도시와 농촌
인구 동태|촌락의 변모|도시의 발전|화폐제도와 화폐경제의 침투
새로운 사상의 영위와 문화 기반의 확대
주자학의 지배와 그에 대한 비판|천주교와 서학의 영향
새로운 사상 조류와 문제점|문화기반의 확대
류큐와 베트남의 ‘중국화’
류큐와 베트남의 위치|일본 지배하의 류큐와 ‘중국화’|베트남의 동아시아화?

6장 변화의 징조와 근대로의 전망
사회 불안의 증대와 민중 반란
백련교의 반란과 지방 세력|천변지이와 민중 반란
살며시 다가오는 서양
근대로의 전망

2부_주제사: 동아시아의 새로운 이해

1장 동아시아 연구사
동아시아 연구의 특수한 위치
한국 연구 - 내재적 발전론의 함정
일본 연구 - 이데올로기로서의 일본 봉건제론
중국 연구 - 전제국가론

2장 정치 이노베이션
중국의 정치 이노베이션: 집권적 국가체제와 주자학 이데올로기
정치 이노베이션을 파악하는 틀|과거제도의 확립과 집권적 국가체제
주자학의 탄생과 명대 국가교학의 확립
한국과 일본의 정치 이노베이션
역사적 전개|한국의 정치 이노베이션|중국과 조선의 과거제도 비교
중국의 서리와 조선의 향리|일본의 막번체제와 이노베이션의 한계
조선과 일본의 유교 수용 비교 : 『소학』 수용을 중심으로

3장 동아시아 족보 비교
신분제와 가족?친족 조직의 결절점, 족보
중국에서의 족보 편찬과 그 의미|동아시아 각 지역의 족보|조선의 족보

4장 동아시아 경제혁명과 집약도작
동아시아 집약도작의 위치
농업생산력의 파악 방법|현대 세계의 농업과 동아시아의 위치|도작의 여러 형태
중국의 집약도작 확립
화북의 전작에서 강남의 도작으로|화북 건지농법의 유산|명대 이후의 델타 개발
조선·일본으로의 집약도작 전파
조선의 전작형 도작의 전통과 극복|일본의 대개발과 도작사회화
전작에 대한 평가
동아시아의 농서
동아시아 농서의 원천으로서 중국 농서|관찬 농서 중심의 한국 농서
농서의 후발 주자 일본

5장 한반도의 도작 전개
15세기의 도작법과 『농사직설』
도작 전개의 역사 연구와 그 현황|15세기의 수전과 한전 비율
조선 최고의 농서, 『농사직설』|직파법 주체의 도작|건경법와 묘종법
『농가월령』의 도작법
고상안과 『농가월령』의 무대|묘종법의 위험 회피책|시비 기술의 발전
묘종법의 보급-17세기 이후
『농가월령』 도작법의 전국화|『산림경제』와 묘종법의 전국 확산
묘종법의 우월함과 ‘번답’ 현상
근대로의 전망: 건전직파법의 재평가

6장 소농사회의 형성과 국가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국가의 토지 파악 전통
한국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신라·고려 시대의 토지 파악|조선 전기 국가의 토지 파악|전환기로서 16세기
17세기 양전 방식의 변화|특권적 토지 소유의 해체
중국과 일본의 토지 파악 방식의 변화
중국의 토지 파악 방식|일본의 토지 파악 방식|결부·세무·석고
국가 토지 파악의 새로운 단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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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미야지마 히로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교토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쿄도립대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를 지냈다. 도쿄대와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사상사를 연구하여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국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한일 역사학의 교류와 소통에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1991),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2013),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 2013), 『미야지마 히 로시의 양반』(너머북스, 2014),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너머북스, 2014 공저)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너머북스, 2015 공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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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 근대사이며, 근대 국가와 전쟁, 종교, 근대 여성의 사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와 근대 일본」(2023), 「근대전환기 일본 여성의 정치참여와 자기인식-니지마 야에(新島八重)를 중심으로-」(2021) 등 다수의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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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 시기에는 의衣의 변화를 비롯해 식食과 주住라는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측면에서도 동아시아의 전통적 생활양식이 서서히 형성, 확립되었다.
먼저 주住에 대해 살펴보면, 사회 상층부의 주거와는 별도로 일반 서민의 주거는 수혈식竪穴式 주거가 가장 보통의 형태였다.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경우 12, 13세기 무렵부터 일반 서민의 주거에도 기둥을 사용한 주거 형태가 보급되었다. 동아시아의 주住 생활에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앉는 방식의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원래 바닥에 앉는 가부좌跏趺坐가 행해지고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부터 의자좌椅子座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방계 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의자좌의 습관이 처음에는 사회 상층부에서 시작되어 송대에는 도시의 일반 서민에까지 보급되었다. 이후 의자에 앉는 스타일이 정착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에 비해 한반도와 일본에서는 고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지배계층에는 의자좌가 수용되었으나 그것이 서민들에게까지 보급되지는 못하였고, 더욱이 지배층도 가부좌로 회귀하는 과정을 거쳤다. 단 한국의 경우는 왕궁이나 관아에서는 의자좌가 유지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전면적으로 가부좌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바닥에 앉을지 또는 의자에 앉을지의 차이는 단지 앉는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라 가구의 차이(일반적으로 의자좌 쪽이 많은 가구를 필요로 함) 등과도 관련되어 있고, 나아가 체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한반도의 전통적 주거 문화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온돌 난방은 당초 서민의 주거에서 행해지던 것이 점차 사회 상층부로 보급된 것이다.


결국 이 전쟁은 도요토미군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모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전쟁은 왜 일어났던 것인가. 전쟁의 원인에 관해서는 히데요시의 개인적 성격에 무게를 두는 설,센고쿠 시대가 끝나며 정복해야 할 대상을 잃은 무사들의 영토 확장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해외 침략을 감행했다는 설, 혹은 무역의 문제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명의 조공무역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조선과 명의 정복을 시도했다는 설 등의 다양한 학설이 있다. 개중에는 일본 국내의 평화(천하총무사天下惣無事)를 위해 해외 침략을 단행했다는,-즉 평화를 위한 전쟁이었다는-흡사 미국의 이라크 침략 논리와도 통할 만한 발상이 학문이라는 옷을 걸치고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모두 매우 단기적인 관점에 선 것으로 도요토미 정권에 의한 통일 수립이라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 거듭 말하면 일본에서 무사정권의 존재 이유라는 가장 기저에 놓인 문제를 도외시한 진단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의 등장을 일본의 중세=봉건제의 개시로 보고, 그것을 동아시아에서 일본사의 선진성으로 파악하는 전통적 발상이야말로 이러한 상황을 낳은 원인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런 발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은 모두 스스로를 ‘사士’로서 지칭했다. ‘사士’라는 글자는 ‘사仕’와 통하며, 그것은 군주를 섬기는 것을 직무로 한다. 즉 사대부, 양반, 무사 모두 어디까지나 군주라는 존재를 전제하고 있으며, 군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특징은 유럽의 귀족·영주와 비교해 보면 잘 이해된다. 유럽의 귀족·영주는 기본적으로는 군주와 대등한 존재로 이른바 절대주의 시대까지도 강력한 독자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권력이 부정되는 것은 이른바 시민혁명에 의해서인데, 동아시아의 지배층은 유럽의 지배층과 비교하면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갖지 않거나(사대부나 양반의 경우), 혹은 약한 권력 기반밖에 갖지 못하는(무사의 경우) 존재였다.
유럽의 경우 군주 위에는 신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강했는데, 이 점도 교회의 존재와 더불어 군주의 권력을 제약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군주가 곧 천자天子 또는 천天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점에서도 군주에 대한 제약이 결여되어 있었다.
사대부나 양반은 때때로 대토지 소유자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결코 그들의 영토가 아니었고, 토지 소유의 면에서 다른 계층과 구별되는 어떠한 특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일본의 무사도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토를 갖지 못했고, 영토를 가진 다이묘라고 해도 영토와의 관계는 취약했다. 즉 영주는 바뀔 수 있는 존재인 데 반해, 토지와 농민은 ‘공의公儀로부터 위탁받은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무사 중에 매우 소수에 불과했던, 구체적으로는 ‘구니國를 소유한 다이묘’로 일컬어진 자들은 도쿠가와씨와 대등한 지위의 계승자였으나(그리고 이로부터 메이지유신의 중심 세력이 나왔는데), 이들에게 천황과 대등한 존재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구니를 소유한 다이묘’ 이외의 다이묘의 경우는 애당초 도쿠가와씨와 대등하다는 의식이 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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