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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95655375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13-12-16
책 소개
목차
추천사 - 청년 비례대표에서 국민의 대표로 성장하세요.(문성근, 후원회장)
격려사 - 청년 정치인 김광진 의원, 큰 정치인으로 건승하세요. (박지원, 국회의원)
1장 김광진, 국회 국방위원이 되다
‘토종’ 순천 청년 김광진, 여의도를 품다.
모금 운동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1일만에 '5억 원 달성'
청소년 문제 전문가, 김광진
김광진, 민주당 ‘청년 비례대표’에 도전하다
전체 372명 공모, 청년 비례대표 후보 1등으로 선출되다
청년 비례대표 선출은 결국 ‘쇼’?
김광진 의원, 어쩌다 국방위원회를 가셨나요?
김광진이 선택한 국회 상임위 1, 2, 3순위는?
상임위원회 배정, 어디로 가야할까
제가 국방위원회로 갈께요.
국방위, 최악의 상임위를 선택했구나?
국회의원, 제대로 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도대체 대한민국에는 비행기가 몇 대가 있는 건가요?
막연한 무기 구매 논리보다 납득할 수 있는 설명 아쉬워
국방부는 ‘소정부’, 부처중에서도 가장 부자
장병들 의식주 챙겨주는 ‘큰 형 같은’ 국방위원
국방위가 참 좋은 비밀, 공개합니다.
대한민국은 정말 북한군을 이기지 못할까
북한보다 국방예산 10배 이상 더 쓰는 대한민국, 그런데...
그 많은 국방 예산, 어디에 다 쓰이는가?
장병이 대우받는 날까지 내가 외칠 한마디 있습니다
2장 정치를 꿈꾸는 청년이여, 내 뒤를 밟고 오라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합니다.
김태일 위원장님. 이의 있습니다.
김태일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합니다!
청년을 표로만 생각해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어
다음 세대 준비를 위한 청년의 정치 참여 배려해야
정당 보조금의 5%를 청년에게 지급해야
청년은 선거 운동시 명함 배포도 차별받아, 개정해야
최저 임금 결정권에 청년 참여 보장해야
당신의 출신은 시민단체, 아니면 정당?
지지 세력 없는 청년 정치의 현실
3장 김광진의 소신 ‘제가 그 말을 왜 했냐면요’
정치인에게 ‘소신’이란 무엇일가
소신 첫 번째, ‘하나회 출신’ 국회의장 반대하다.
존경하는 국회의장을 원합니다.
의정 활동의 ‘첫 번째 소신’, 잊지 않지 못할 것
소신 두 번째, 의무복무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15년간 2,270명의 군인 사망, 2.4일당 한명꼴
국방부 조사본부는‘수사의 달인’? 단 한건의 결과 번복 없어
2013년 현재, 최장 42년째 방치된 169기의 군인 시신, 유해 해결해야
의무 복무 군인의 모든 죽음에 ‘공무상 연계성’을 인정해야
의무 복무중 군인 사망에 대해 국가가 면할 책임 없어
의무복무 중 죽어간 모든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소신 세 번째 / 나는 왜 ‘백선엽’을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나
친일 반민족행위 조사위, ‘백선엽은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전 장군, 자신 역시 친일 행적 인정
친일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미화 뮤지컬, 반대 기자회견를 하다
백선엽 미화 뮤지컬 국가 예산 철회 지적, 후회하지 않아
2012년 10월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속기록
‘민족 반역자’ 언급, 새누리당이 윤리위원회에 제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물을 대한민국 문화재로, 절대 안돼
보존해야 할 의복이 친일파 것들 밖에 없나
문화재청의 친일파 물품 문화재 등재 반대, 반드시 철회 해야
친일파 유물 문화재 등재 반대 서명 요구, 민주당 의원에게 친전보내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 군복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합니다
작지만 값진 결과, 친일파 문화재 등재를 막다 친일파 물품 문화재 등재 '보류' 결정, 이유는?
작은 승리를 축하하는 성명서 발표
민족 정기 바로 세우는 법안 연이어 발의, 끝까지 간다.
소신 네 번째,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만들겠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효창원 국립묘지 승격 법안 반발, 오해입니다.
효창원 국립묘지 결사반대 서명용지, 전부 다 엉터리?
소신 다섯 번째 / 국군의 날,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뀌어
국군의 날, 왜 10월 1일로 결정 되었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계승. 국군 역시 광복군 창설일로...
4장 김광진의 소통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2012년 12월 19일부터 2013년 11월 8일 사이에 페이스북에 남긴 소통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왜 ‘백선엽’을 민족 반역자라고 불렀나
제 이름 ‘김광진’을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연관 검색어중 하나로 뜨는 이름이 ‘백선엽’입니다. 마찬가지로 백선엽 전 장군의 이름을 포털 검색해도 제 이름 ‘김광진’이 연관 검색어로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저와 백선엽 전 장군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바로 ‘그 사건’ 때문입니다.
정치인을 두고 재미있는 여러 유머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정치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유머입니다. 열광적인 지지도 마냥 좋을 수는 없겠죠. 반면 뭘 하든 국민들에게 무조건 비난만 받는다면 이 역시 좋아할 정치인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두가지 경우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뭘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국민에게 무관심을 받는 정치인입니다. 즉, 대중으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못 받는 정치인이 가장 저주받은 정치인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는 헌법상 300명 이내의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4년 임기가 끝나도록 “그런 이름을 가진 국회의원도 있었나” 하는 말을 듣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비참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솔직히 말해 그의 의정 활동을 두고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욕을 좀 먹더라도 ‘존재감 있는’ 정치인이 더 낫다는 말인데 물론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지 욕 먹고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하간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이 사건’은 저로서는 아주 오랫동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건’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이러 저러한 정치적인 피해도 많이 봤습니다만, 또 그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제가 서야할 자리도 명확히 알게된 전화위복의 계기도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 입장에서 억울한 어떤 사실에 대해 제대로 해명할 기회가 없이 ‘사실상’ 그냥 당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매우 유감스러웠습니다. 이에 당시 있었던 사실에 대해 그 일부의 진실을 남기고자 합니다. 이 역시 제가 지나온 또 하나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백선엽 전 장군과 관련하여 제가 처음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2012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개최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독립운동 유공자의 후손 분이었는데 분노로 격앙되어 그분이 알려온 사실에 의하면 한 민간 업체가 백선엽 전 장군을 미화하는 내용의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민간업체가 자신들의 돈으로 뭘 하든 국회의원이 이를 따질 일은 없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민간업체의 이같은 뮤지컬 행사에 국방부가 국가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독립운동 유공자 후손 분들은 국방부의 잘못된 백선엽 전 장군 미화 뮤지컬에 국가 예산 지원을 반대하고자 기자회견을 할테니 이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분노가 무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백선엽 전 장군이 일제 당시 거쳐온 ‘친일 행적’에 대해 조금이라도 바르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백선엽 전 장군을 미화하는 뮤지컬에 국민의 세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그분들의 주장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에게 6.25 전쟁의 영웅으로만 부각된 백선엽 전 장군이 일제 강점기 당시 어떤 일을 했으며,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실체를 정확하게 확인한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친일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함께 정부가 여야 합의하에 출범시킨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가 업무를 종료하며 발간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백선엽 전 장군은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입니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백선엽 전 장군은 '만주 국군 중위, 간도 특설대'라고 적시돼 있으며,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뒤 1942년 견습 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기까지 과정을 소상하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 일부의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선엽 대장이 간도특설대 기박련(기관총, 박격포 중대) 소속으로 팔로군 공격 작전에 참가했으며, 일제 패망 당시 만주 국군 중위였다.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패망으로 해산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에 대해 모두 108차례 토공(討攻)작전을 벌였다. 이들에게 살해된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했으며, 그 밖에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 약탈, 고문을 당했다.”
친일 반민족행위 조사위, ‘백선엽은 친일 반민족행위자’
한편, 국가 기관으로서 일제 강점기 당시 대상자의 친일 행적을 통해 ‘친일 반민족행위자’ 여부를 조사했던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조사보고서를 보면 백선엽 전 장군의 친일 행위는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백선엽 전 장군은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0호에 의하여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으며 해당 조항의 구체적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자를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 의하면 백선엽 전 장군은 1942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1945년 일제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만주 국군 장교로서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1943년 2월부터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일한 백선엽 전 장군은 이 부대에서 만주지역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간도특설대원으로서 일본군의 '대륙 타통 작전'의 일환으로 열하성으로 들어간 백선엽 전 장군은 중국군 팔로군을 토벌하는 작전에 적극 종사하는 한편, 1945년 봄부터 일제의 패전 당시까지 연길지역 국경수비 임무에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매우 적극적으로 복무했음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기록을 통해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백선엽 전 장군, 자신 역시 친일 행적 인정
그렇다면 백선엽 전 장군은 이같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이같은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히고 있을까요. 백선엽 전 장군이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자신의 회고록 <간도특설대의 비밀>중 일부 내용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 행적에 대해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과거 항일 운동을 하던 조선인을 토벌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백선엽 전 장군의 책 <간도특설대의 비밀>중 일부 발췌 대목입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백선엽 전 장군의 친일 행적을 입증하는 자료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00년 일본에서 발간된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에서도 백선엽 전 장군의 친일 행적은 다시 한번 명확하게 재 확인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도선 일대는 게릴라(항일무장독립세력)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치안 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빴는데 간도특설대의 본래의 임무는 잠입, 파괴 공작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특수부대, 스페셜 포스로서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의 훈련이 자주 행해졌다. 만주 국군 중에서 총검 대회, 검도, 사격 대회가 열리면 간도특설대는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백선엽 전 장군이 장교로 있었던 간도특설대가 무슨 일을 했는지 분명하게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두고 보여주고 있는 백선엽 전 장군의 어처구니없고 표리부동한 속마음입니다. 그는 같은 책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 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백선엽 전 장군의 과거 오래전 친일 행적에 대해 지나친 비판 아니냐고 하는 분이 일부 계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선엽 전 장군이 민족을 배반하고 조국을 배반한 행위는 결코 과거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과거 친일 행적을 용서받고 싶다면 진실로 자신의 행적에 대해 뼈저린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낸 회고록을 통해 말 장난에 가까운 괴언만 되풀이한다면 백선엽 전 장군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이같은 언행은 그의 친일 행적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