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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역사

패자의 역사

구본창 (지은이)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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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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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패자의 역사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96014010
· 쪽수 : 273쪽
· 출판일 : 2008-03-25

책 소개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를 비판하고 역사를 중립적인 지식인의 시각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대끼고 살아온 일반 백성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목차

제1부 승자가 왜곡한 역사적 진실들

백제의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둔 적이 없다
백제 멸망의 원인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삼국통일! 당나라 주연,신라 조연의 드라마!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적이 없다
김유신,그는 위대한 장군인가?
노비 신분해방을 외친 만적
토지개혁을 단행했던 개혁군주 공민왕
백성들의 눈에 비친 신돈은 미륵불이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맞선 유일한 신하는 선비가 아니라 내시였다
정여립의 난은 조선왕조 최대의 정치조작사건
선조는 이승만에 버금가는 비열한 군주였다
광해군은 개혁군주로 재평가 받아야 한다
조선시대 북벌론,왕권은 안정됐지만 백성들은 더 죽어났다
조선후기의 불운한 혁명가,홍경래
평화통일을 주장해 사형 당한 조봉암

제2부 지배계층이 기만한 역사적 사실들

조선의 신문고,일반 백성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누가 조광조를 개혁가라 하는가?
이율곡은 실제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을까?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 권력투쟁의 대리전이었다
조선의 암행어사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양반 의병운동은 진정한 애국운동이라 볼 수 없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더 이상 우리의 민족대표가 아니다
조선물산장려운동,왜 기만적일 수밖에 없었을까?
독립협회의 회장은 매국노 이완용이었다
이승만,우리 현대사를 일그러뜨린 주범
베트남의 피밭에서 피어난 박정희의 경제개발 신화
인혁당 사건은 유신정권 최대의 정치조작 사건

저자소개

구본창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재학시절과 군복무를 마친 뒤의 얼마 동안 서울의 구로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했었다. 그러던 중 민중사관에 근거해 역사를 인식하는 몇몇 지인들과 ‘대중 역사 연구소’를 설립하여 친일사관의 잔재가 정리되지 않은 기존의 주류 역사학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하는 한편, 생계대책을 위해 대입 재수생 종합학원의 영어강사와 고등학교 영어참고서 저자로 활동했었고, 2003년에는 ‘강서 아파트값 화곡대성이 올립니다’는 광고카피와 지역 내 이마트와의 공동 입시설명회 마케팅을 통해 개원한 첫해부터 연매출 55억 원의 대형 입시학원을 성공시켰다. 현재는 십수년 간 민주화 운동을 했던 후배 5명과 설립한 소셜커머스 메타사이트인 ‘반가격닷컴’의 창업주로 있으면서 일제통치 기간의 항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역사서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각하는 사회 교과서’, ‘패자의 역사’, ‘조이풀 잉글리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영어책’, ‘말하는 솜씨로 부자가 된 사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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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삼천 궁녀는 완전한 허구
660년 7월 18일, 신라와 당의 연합군 18만 명이 사비성까지 밀고 들어왔다. 황급히 왕궁 뒤 부소산으로 피한 삼천 궁녀는 추격해 오는 적군에게 쫓겨 마침내 낙화암에 서게 되었다. 적에게 치욕을 당할 것인가? 죽음을 택할 것인가? 삼천 궁녀는 선택의 기로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슬픈 최후다.

삼천 궁녀로 상징되는 의자왕의 사치와 방탕으로 백제는 점점 힘을 잃었고, 마침내 나, 당연합군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었다. 이것이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 온 백제 역사다. 그런데 정말로 의자왕이 삼천 궁녀를 두며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을까?
결론을 말하면 의자왕의 사치와 방탕의 상징인 삼천 궁녀란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허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삼천 궁녀의 존재가 허구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백제 멸망 당시 수도인 사비성 인구는 5만 명에 불과했다. 당시 남녀 구성비를 반반으로 볼 때, 여자는 2만 5천 명이다. 그 중에 궁녀가 될 수 있는 연령대인 15~25세 여자는 몇 명이나 되었을까? 연령대별로 고르게 분포했다고 가정하면 약 4천 명 정도다. 그런데 그 중 3천 명이 궁녀였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당시 사비성의 인구를 따져보면 삼천 궁녀는 전혀 근거 없는 허구일 뿐이다.
둘째, 현재 충남 부여에 남아 있는 당시 왕궁 터의 넓이를 따져 봐도 삼천 궁녀의 존재는 허구다. 왜냐하면 당시 왕궁 터의 넓이가 3천 명의 인원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당시에 궁녀가 아무리 공간을 아껴 썼다 해도, 3천 명을 수용할 공간으론 불가능하다.
셋째, 삼국사기을 비롯한 역사서 어느 곳에도 의자왕의 삼천 궁녀에 대한 기록이 단 한 건도 없다. - p.17~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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