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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 - 상

조선사연구 - 상

(오천년간 조선의 얼)

정인보 (지은이), 문성재 (옮긴이)
  |  
우리역사연구재단
2012-10-29
  |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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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 - 상

책 정보

· 제목 : 조선사연구 - 상 (오천년간 조선의 얼)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88996197584
· 쪽수 : 848쪽

책 소개

1935년 1월부터 1년 7개월간 '오천년간 조선의 얼'이란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국학자 정인보의 한국고대사 저술이다. 저자 정인보는 불교, 역사, 언어, 민속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섭렵하여 한국학의 독보적인 거성으로 추앙받은 학자였다.

목차

조선사연구上 (朝鮮史硏究)
〈우리국학총서(國學叢書)〉를 펴내며
해 제
일러두기

1. 서 론

2. 시조 단군

3. 고조선의 큰 줄기

4. 특수한 상고시대의 정치와 풍속
1. 고조선의 정치제도
2. 국방과 재정
3. 풍속

5. 단군조선의 전쟁사

6. 처음 겪은 흥망
1. 진개(秦開)의 내침
2. 비왕(否王)과 요동
3. 위만의 난
4. 준왕의 순국과 ‘말한’의 남하

7.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부여
1. 천제의 정통성을 계승한 부여
2. 해모수를 왜 단군이라고 했는가?
3. 세계(世系)와 판도

8. 예인의 수복운동과 한나라·위만조선의 교체
1. 위씨조선과 한나라의 대립
2. 조선 수복을 위한 예인들의 지난한 노력
1) 한나라와의 직접 통교를 통한 이간책
2) 남려(南閭)의 항복 3) 한·위의 전쟁
3. 성기(成己)의 살신성인
4. 최후의 승자 한나라

9. 한사군 전쟁
서 론
1. 한사군 초기의 진상
2. 한사군의 위치
1) 진번 2) 임둔 3) 현토 4) 낙랑
5) 점제현신사비의 실체 6) 평양에서 출토된 와당과 봉니의 실체
7) 황해도 봉산(鳳山) 출토 묘전(墓塼)의 실체
8) 봉니, 와당 조작의 이유
【부록】 ‘효문묘 동종’ 변증

10. 풍운이 이는 삼국
1. 삼국 건국 직전의 조선
2. 고구려의 건국
1) 동명성제 2) 고구려 초기의 강역과 백성
3. 신라
1) 진한 육부와 혁거세왕 【부록】 신라 화백(和白)제도와 시조 혁거세왕
2) 신라의 국명과 금성의 유래 3) 동옥저와의 내왕
4. 백제의 건국
1) 비류와 온조의 남하 2) 온조왕의 업적

12. 마한의 멸망과 주근()의 죽음
1. 말한의 유지를 품고 사라져 간 후예들
2. 꺼진 불씨를 되살리려 애쓴 주근(周勤)

13. 고구려의 발흥
1. 유리왕의 왕위 계승과 고구려의 상무정신
2. 고구려의 민정과 군정
1) 선비족과의 충돌 2) 부분노(扶芬奴)의 지략
3) 고구려의 오부 4) 고구려의 기병
5) 형법 6) 관등제도
3. 고구려의 영토 개척
1) 건국 초기의 양상 2) 천도
4. 패퇴당하는 한군
5. 부여를 연파하다

14. 성장하는 신라
1. 선정과 양위의 미덕
2. 도구의 제작과 농상업의 발전
3. 신라의 전장제도
1) 육부의 정비 2) 관등제도
3) 염찰법(廉察法)과 원죄(原罪) 관련 법규
4. 국방 혁신과 살신애국의 기상

15. 가야국
1. 건국 설화
2. 강을 사이에 둔 신라와의 충돌
1) 최초의 충돌 2) 가야 국명의 유래

16. 백제 초기의 영토 확장
1. 더욱 굳어진 내부 결속
2. 백제의 국가제도와 상무정신
1) 고구려와 공통된 오부제도 2) 농업 생산력 발전
3) 백제의 영토 확장 4) 와산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200열사’
5) 기루왕의 왕위 계승과 나·제 국교 회복 6) 백제의 관등제도

17. 고구려의 대한(對漢)전쟁과 여제(麗濟)연합
1. 모본왕의 웅대한 경략
1) 대무신왕 이래의 대한 관계 2) 한인의 추방
3) 모본왕의 즉위와 치적 4) 재위 6년 만에 명성을 떨친 모본왕
【부록】 《후한서》 〈제동전〉 고증
2. 요서에 쌓은 10개의 성
3. 태조대왕은 어떠한 군주인가
4. 을사년의 요동 전쟁
1) 중국 사서에만 전해지는 태조대왕의 전적
2) 을사년 전쟁의 득실
5. 한사군의 대퇴각
1) 화려성의 위치 2) 험지 선점의 문제
3) 한군(漢軍) 격퇴
6. 백제 기루왕의 요해 출병
7. 부여왕의 배반
8. 태조대왕 최후의 업적

쉽게 풀이한 《조선사연구》 뒤에
번역을 마치면서
위당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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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인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3년 5월 6일 서울 종현(鐘峴, 현 종로성당 부근)에서 정은조(鄭誾朝)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열다섯 살이 되었던 1907년 위당은 충북 진천으로 이사했다. 위당 집안은 한국 양명학을 이어 왔던 몇 가운데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위당 자신은 열세 살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문하로 들어갔던바, 난곡은 당대 한국 양명학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난곡이 별세했던 1939년까지 남다른 사승 관계를 지켜 나갔으니, 위당 사상의 기본좌표는 양명학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열일곱 살 되던 1909년 위당은 단발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위당은 1911년과 1912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로 건너가서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原堡)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때 삼원보에는 이회영(李會榮) 형제가 주동이 되어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한 신흥 강습소가 세워졌는데, 위당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을 정리해서 여기에 군자금으로 건넸다. 1913년에는 상해로 건너가서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인 성씨가 산고(産苦)로 별세한 까닭에 위당은 상해에 머무른 지 7개월 만에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위당은 검은 옷차림으로 일관했던바, 여기에는 부인의 죽음과 더불어 나라 잃은 상황까지 아울러 곡한다는 의미가 겹쳐 있었다. 1922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부임한 뒤에도 그의 상복 차림은 여전히 이어졌다. 1926년 순종이 승하했을 때 유릉지문(裕陵誌文)을 찬술했으며,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도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했다. 위당의 이력에서 ≪시대일보≫, ≪동아일보≫ 논설위원 활동도 빼놓기가 곤란하다. 빼어난 논설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최남선, 이광수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술인 ≪조선 고전 해제≫라든가 ≪양명학 연론≫,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을 남긴 것도 이 시기다.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물로 나오자, 이를 민족의 수치로 여겨 충무공의 유적을 보존하는 한편 현충사를 조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으며, 1935년에는 안재홍(安在鴻) 등과 함께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를 교열·간행함으로써 실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1938년 일제가 조선어 강좌를 폐지하고, 조선학(국학)을 탄압하자 위당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고, 자신을 향한 일제의 회유와 압박이 거세지자 경기도 양주군으로 낙향했다가 1943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의 산속으로 거주지를 옮겨 은둔에 들어갔다. 해방을 맞이하자 국학대학 설립에 나섰고, 1947년 국학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새로운 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민족의 얼이 올곧게 세워져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판단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1년여간 감찰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사정(司正) 활동에 의해 1949년 2월 조봉암 농림장관이 물러나게 되었고, 6월에는 임영신 상공장관이 경질되었다. 임영신 장관의 처리를 두고 이승만 대통령과 마찰을 빚게 되자 위당은 감찰 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사임 후 국학 연구에 매진했던 위당은 1950년 7월 31일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에게 피랍(被拉)당했고, 납북 중 58세를 일기로 10월 24일 병사했다. 위당의 시신은 현재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으며, 1990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위당이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던 바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不降其志 不辱其身)”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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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 중국어권 번역위원장.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비로 중국에 유학하여 남경대학교(중국)와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어학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옮기거나 지은 책으로는 《중국고전희곡 10선》·《고우영 일지매》(4권, 중역)·《도화선》(2권)·《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조선사연구》(2권)·《경본통속소설》·《한국의 전통연희》(중역)·《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루쉰의 사람들》·《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1~3) 등이 있다. 2012년에는 케이블 T채널이 기획한 고대사 다큐멘터리 《북방대기행》(5부작)에 학술자문으로 출연했으며, 현대어로 쉽게 풀이한 정인보 《조선사연구》가 대한민국학술원 ‘2014년 우수학술도서’(한국학 부문 1위), 《루쉰의 사람들》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년 세종도서’(교양 부문),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이 롯데장학재단의 ‘2019년도 롯데출판문화대상’(일반출판 부문 본상)을 수상하고, 금년에는 《박안경기》가 대한민국 학술원 ‘2023년 우수학술도서’(인문학 부문)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곧 선보일 후속작 《금관총의 주인공 이사지왕은 누구인가》와 함께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5》(신당서권)의 번역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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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다시 한 번 더듬어 보라. 고조선이 다스리던 강역이 저토록 광대한 데다 대대로 이어진 정치제도 역시 군사를 훈련시키고 세제를 정비함에 있어 서로 다른 발전의 길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속도 일치하고 언어도 같았다는 증거들이 이처럼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 눈으로 그려 보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광경들이 뇌리에 역력하게 되살아나리라.(제4장)


숙신은 바로 조선이다. 숙신은 초기에 ‘조선’의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고조선의 발상지 즉 고조선의 옛 도읍 일대를 가리키므로 웅심산과 압록수 즉 백두산과 송화강에 해당한다. (제7장)


(《한서》가 저술되던) 당시만 해도 요동만의 바다 면적이 그다지 넓지 않아 동쪽과 서쪽이 서로 마주보일 정도로 가까워서 번갈아 바다를 건너가 영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 같은 내막도 모르면서 진나라 장성의 기점까지 압록강 동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헛수고를 한 셈이다.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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