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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 수필선집

정인보 수필선집

정인보 (지은이), 홍기돈 (엮은이)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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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 수필선집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정인보 수필선집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28838248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7-08-10

책 소개

정인보는 글쓰기에서도 역사 논문을 비롯해 각종 언론 매체를 활용한 논설, 비문 및 추도문, 기행문 등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정신이 있으니 바로 민족의식이다. 그의 수필은 다양한 형식과 소재를 통해 '조선의 얼'을 찾아내고 민족의식을 고취한다.

목차

檀君 開天과 十月
丹齋와 史學
丙子와 朝鮮
朝鮮 佛敎의 精神 問題
朝鮮 古書 刊行의 意義
民族的 羞耻
誠金 一萬 圓
마음의 節制
私令을 排除하고 公令 遵行의 官紀를 세우자
百八煩惱 批評에 對하야
閑山島 制勝堂 碑文
露梁 忠烈祠 碑文
並川紀義碑文
<大東輿地圖>
≪擇里志≫
五千 年間 朝鮮의 ‘얼’
터무니없는 거짓을 바로잡는 글(正誣論)
부록 : <터무니없는 거짓을 바로잡는 글>의 원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저자소개

정인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3년 5월 6일 서울 종현(鐘峴, 현 종로성당 부근)에서 정은조(鄭誾朝)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열다섯 살이 되었던 1907년 위당은 충북 진천으로 이사했다. 위당 집안은 한국 양명학을 이어 왔던 몇 가운데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위당 자신은 열세 살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문하로 들어갔던바, 난곡은 당대 한국 양명학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난곡이 별세했던 1939년까지 남다른 사승 관계를 지켜 나갔으니, 위당 사상의 기본좌표는 양명학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열일곱 살 되던 1909년 위당은 단발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위당은 1911년과 1912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로 건너가서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原堡)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때 삼원보에는 이회영(李會榮) 형제가 주동이 되어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한 신흥 강습소가 세워졌는데, 위당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을 정리해서 여기에 군자금으로 건넸다. 1913년에는 상해로 건너가서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인 성씨가 산고(産苦)로 별세한 까닭에 위당은 상해에 머무른 지 7개월 만에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위당은 검은 옷차림으로 일관했던바, 여기에는 부인의 죽음과 더불어 나라 잃은 상황까지 아울러 곡한다는 의미가 겹쳐 있었다. 1922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부임한 뒤에도 그의 상복 차림은 여전히 이어졌다. 1926년 순종이 승하했을 때 유릉지문(裕陵誌文)을 찬술했으며,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도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했다. 위당의 이력에서 ≪시대일보≫, ≪동아일보≫ 논설위원 활동도 빼놓기가 곤란하다. 빼어난 논설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최남선, 이광수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술인 ≪조선 고전 해제≫라든가 ≪양명학 연론≫,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을 남긴 것도 이 시기다.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물로 나오자, 이를 민족의 수치로 여겨 충무공의 유적을 보존하는 한편 현충사를 조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으며, 1935년에는 안재홍(安在鴻) 등과 함께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를 교열·간행함으로써 실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1938년 일제가 조선어 강좌를 폐지하고, 조선학(국학)을 탄압하자 위당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고, 자신을 향한 일제의 회유와 압박이 거세지자 경기도 양주군으로 낙향했다가 1943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의 산속으로 거주지를 옮겨 은둔에 들어갔다. 해방을 맞이하자 국학대학 설립에 나섰고, 1947년 국학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새로운 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민족의 얼이 올곧게 세워져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판단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1년여간 감찰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사정(司正) 활동에 의해 1949년 2월 조봉암 농림장관이 물러나게 되었고, 6월에는 임영신 상공장관이 경질되었다. 임영신 장관의 처리를 두고 이승만 대통령과 마찰을 빚게 되자 위당은 감찰 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사임 후 국학 연구에 매진했던 위당은 1950년 7월 31일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에게 피랍(被拉)당했고, 납북 중 58세를 일기로 10월 24일 병사했다. 위당의 시신은 현재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으며, 1990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위당이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던 바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不降其志 不辱其身)”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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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주 출생. 199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학비평가로 등단. 중앙대학교에서 1996년 「김수영 시 연구」로 석사학위, 2003년 「김동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평론집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ㆍ『인공낙원의 뒷골목』(실천문학)ㆍ『문학권력 논쟁, 이후』(예옥)ㆍ『초월과 저항』(역락). 연구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출판)ㆍ『김동리 연구』(소명출판)ㆍ『민족의식의 사상사와 한국근대문학』(소명출판). 산문집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삶창) 등이 있다. 2007년 제8회 젊은평론가상(한국문학가협회 주관)을 수상하였으며, 『비평과전망』, 『시경』, 『작가세계』 등에서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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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를 아는 者ㅣ 누구냐 알랴는 者ㅣ 누구냐. 또 우리를 모르는 者ㅣ 누구냐. 삼가 告하노니 우리는 突然한 우리가 아니다. 멀리 所本함이 잇다. 오래 所歷함이 잇다. 盛衰 그 所自함이 잇고 榮悴 그 所因함이 잇다. 或伸 或蹙, 或强, 或弱이 그 故ㅣ 없을 리 없고 哀, 樂, 舊, 屈과 時困, 時紓함이 다 徒然한 배 아니니 五千이 少數이냐. 年代와 함께 百折, 千回하며 나려올 제 어떤 것이 우리의 長點의 發露이며 어떤 것이 우리의 短處의 破綻이냐. 어찌하다가 우리로서 우리를 모르고 또 알랴고도 하야 보지 아니하얏느냐. 返古라면 或 退蹙도 같다. 그러나 이 古는 묵고 썩은 후락한 古가 아니라 解釋하면 곧 ‘本我’라 함과 같으니 末流의 弊 그 本을 違棄하게 된 뒤는 返古ㅣ 아니고는 本我를 自證할 道理 없고 이 自證이 아니고는 언제나 兪轉, 兪迷하고 말 것이라. 그런즉 우리 自體에 對한 至纖, 至悉한 基本의 調査, 곧 우리로서 우리의 正實로 도라가는 미천이다. 우리의 紛郁한 芳香이 이제 와 덤덤한 것 같음은 오래 두고 내버려 헐어젓든 탓이니 屑片으로라도 모두어 보라. 東盟古日의 풍기든 그것이 예런 듯 나타날 줄 안다.
<朝鮮 古書 刊行의 意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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