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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641926
· 쪽수 : 204쪽
책 소개
목차
1. 아 씨 울엄마
2. 할머니
3. 가족이 한자리에
4.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5. 외출
6. 황제와의 만남
7. 돈 앞에서
8. 놀아라, 자운영 언덕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이거이, 이거이 뭐래여? 뭐가 이렇게 징그래여?”
“엄니, 지 손을 잡으셔유. 되로 올라와유. 아, 어서 되로 올라와여!”
아빠가 앞선 할머니를 끌고 도로 올라오며 뒤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엄마에게 말을 쥐어박았다. 엄마는 얼른 물러나 올라오며 표정이 멍청했다. 나는 그들이 올라와서 설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뒤로 냉큼 물러섰다.
맙소사! 할머니 발이 반짝거리는 검은 장화를 신었다. 우리 세 식구는 할머니를 기준으로 삼각으로 둘러싸고 장화를 쳐다봤다. 검정 장화는 새것처럼 반짝거리는데도 추악했다. 똥 밟은 발보다 더 추악했다.
“저거를 어떻게 닦는대? 콜타르는 뭘로 닦는대? 퐁퐁으로도 안 질 거 아녀.”
“여편네가 지금, 닦는 게 문제여?” “별일이네. 아까부텀 깐죽대네. 그럼 머시 문제야? 이 상황에서! 닦을 건 닦아야지. 안 닦고 절케 팽생 신고 다니실 거여?”
“이것이 죽은 건 아니여?”
“........”
‘이것이’ 누굴까. 나? 나라면 큰일이다. 나여서는 안 된다. 나는 이렇게 살이 쪄서 그렇지 아직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이름 하여 꽃봉오리다. 살이 좀 쪘다고 꽃봉오리를 죽거나 죽여도 상관없는 늙은 개로 보면 안 된다. 꽃봉오리는 살이 아무리 쪄도 꽃봉오리다. 나는 꽃봉오리다! 소리소리 쳤다.
“엄니, 죽진 안 헌 모양이유. 일키 잠꼬대까지 하잖유. 머언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던 몬하겄어유.”
“그람 그냥 자게 내비둬여.”
“그람, 아까 내비두지 뭐하러 저까지 깨우고 그래유우?”
“무서워 그렸제여........ 저것이 저래 퍼져 있으니께. 거시기 오줌은 마렵고.”
“오줌 싸셨어유?”
“아녀, 시방 거시기 헐라고여.”
“아 얼른 싸셔유, 차암 별 것을 가지고서랑, 왜 지한티만 그려요오?”
“왜, 무신 일 있어여?”
“일은 무신 일이유............무슨 일이나 마나, 요런 상황이 그람 아시랑토 않은 일상 생활이여유?”
“일상이 뭐여, 외상이믄 모르까. 시방 일상이 걱정이랴.”
“수표여유. 천만 원짜리 한 장! 한 번 만져 볼쳐유?”
할머니가 놀라 사양하는 손사래를 쳤다. 엄마가 엉덩이를 움직여 아빠 쪽으로 다가가는 걸 나는 보고 있다. 아빠 손에는 봉투가 할머니 앞을 향해 들려있다.
“아빠! 조심해요.”
늦었다. 엄마가 낚아챘다. 아빠는 순식간에 비어버린 빈손을 폈다 주먹 쥐었다를 반복한다. 사태를 알아차린 할머니가 엄마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려 했다. 연세에 비하면 할머니도 절대로 느린 건 아니었는데 엄마가 워낙 빨랐다. 엄마의 표정이 금방 양양해졌다. 엄마의 눈동자가 파란 빛을 내며 초롱초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