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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언어학/언어사
· ISBN : 9788996649809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1-06-01
책 소개
목차
004 서문, 왜 말인가?
011 추천의 말, 말은 인간적 삶을 특징짓는 경이로운 능력이다
017 노무현은 비유와 유머의 고수였다
025 히딩크는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031 몸은 마음과 함께 반응한다
037 우리는 말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대로 생활한다
045 통역은 얼마든지 있다
051 연기자들이 말을 맛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057 말은 글에 비해 정직하다
065 말에 일관된 원칙은 없다
071 말은 구체적 삶에서 나온다
075 좋은 이야기가 힘이다
081 무엇을 말할 것인가
087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093 유머는 말재주가 아니다
101 오히려 오바마를 잊어라
109 한국에서 말이 대접받고 있을까
115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121 한글에게 미안하다
127 수다는 대화의 노래방이다
133 한국인은 감성적이다
137 우리말의 감성은 오감을 자극한다
147 귀맛이 소통을 좌우한다
153 작당한 무관심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159 고수에게는 보인다
167 몸으로 듣고 공감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171 침묵이 말보다 큰 소통력을 가질 때가 있다
179 듣기는 말하기의 교과서다
193 춤은 몸으로 하는 말이다
209 진심으로 일상을 들여다볼 때 말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221 행복한 말하기는 행복한 나를 만든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왜 말인가? 이 시대에 왜 갑자기 ‘말’이 화두로 등장했을까? 사람끼리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갑자기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주목하게 됐을까?
우리는 그동안 ‘말’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인식해 온 경향이 있다. 많은 스피치 관련 책들은 ‘효과적인 표현방법’으로서의 ‘말하기’를 소개한다. 하지만 말을 매끄럽게 잘한다고 소통이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소통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상대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말은 사고와 생활이 퇴적된 문화다. 우리는 사고의 깊이만큼 말할 수 있고 말하는 어휘는 우리의 지적 수준만큼 분화된다. 논리적인 사람은 사물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해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감성적인 사람은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말은 당장 의도한 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하면서 말은 곧 사람의 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걸음걸이가 있듯이 말에는 지나온 삶이 깃들어 있는 말의 틀이 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면, 법조인은 법치주의를 생각하고, 시위대는 시위의 의미와 배경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말한다. 농부는 살기 위해 농사를 말하지만 농민운동가는 사회적 정의를 위해 말한다. 이렇듯 일상의 말은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이자 살아온 모습이다.
많은 스피치 관련 책에서는 ‘말하기’를 기술로 다루고 있다. 많은 책에서 협상, 설득, 발표, 프레젠테이션 등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을 의도와 연습으로 쉽게 개선되는 테크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은 사고와 생활로 뭉쳐진 몸이자 일상의 예술이다. 일상의 삶을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
-서문, ‘왜 말인가?’ 중에서
말은 인간적 삶을 특징짓는 경이로운 능력이다. 말은 인간의 생존뿐만 아니라 고양된 문화의 영역을 열어가는 핵심적 통로이기도 하다. 이러한 말은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말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춤을 추며 말하자』는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말이 언어학자나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일 수 있다는 오래된 사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확인시켜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방송인으로서 현장 활동을 통해 도달한 언어적 사색을 때로는 잔잔한 이야기로, 때로는 재기 넘치는 이야기들로 풀어내고 있다.
-추천의 말, ‘말은 인간적 삶을 특징짓는 경이로운 능력이다’, 노양진(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전부터 말의 방식 때문에 구설수에 시달렸다. 대통령 당선자가 된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기자회견에서 족벌체제와 세습을 고수하는 재벌신문이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미묘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논란이 되었다.
취임 초기에 검찰을 혁신하기 위해 젊은 검사들과의 생방송 토론을 추진한 것도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나는 여러분의 선배들을 믿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은 정치적인 발언에 길들여졌던 우리들에게 충격적인 표현이었다.
원래 정치인은 경계를 오가는 말을 잘한다.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선문답 같은 말을 잘한다. 문제가 됐을 경우 빠져나갈 구멍은 남겨놔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서 “기자들이 확대 해석한 것 같다”, “…란 의미였다”라는 표현을 곧잘 들을 수 있는 것도 여지를 남겨놓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취임 초 한미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계설정을 고민했던 노무현은 한 대학 특강에서 “우리가 미국에 대해 비판 좀 하면 안 됩니까?”라고 물었다. 전통적인 한미 관계나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이었다.
노무현은 하고 싶은 말을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했다. 아예 의도적으로 여지의 싹을 잘라버리고 말했다. 결과가 잘못 나타나면 그의 말도 잘못된 것이다. 그의 말에는 좀처럼 형용사나 부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형용사나 부사 같은 감각어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에 경험과 감성으로 공유하는 공간이 있어 소통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노무현의 말은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말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대통령 노무현의 말은 파격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점잖은 말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에게 그의 말은 불안하게까지 비춰졌다.
임기 내내 논란거리였던 노무현의 직설적인 말의 방식은 일정부분 의도된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보수적인 사고와 문화에 익숙해 있던 우리 사회에 이슈를 던지기 위한 충격요법이었다.
참여정권의 많은 인사들이 집권초기 사회에 대한 충격요법을 많이 쏟아냈다. ‘노’의 남자라고 불렸던 유시민은 의원 선서를 하는 날 하얀 색 남방에 남색 캐주얼 바지를 입고 나와 의원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다. 마치 국회의원이 별거냐는 식으로 입고 나왔던 하얗고 파란 캐주얼 복장은 그 뒤로는 유시민에게서 볼 수 없었다. 유시민은 그런 옷과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다.
노무현의 말의 방식이 의도된 충격요법이라는 것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부드러운 비유로 예봉을 피해 가는 그의 치밀함에서 엿볼 수 있다. 취임 초기 <뉴스위크>와의 기자회견에서 노무현은 북한 핵문제로 미묘해진 한미관계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하게 대답한다.
기자 : 미국인들은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원하는 한국의 움직임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이 반한감정을 일으키지 않을까?
노무현 :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과 미국인을 좋아한다. 비록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항의하지만 그것은 반미감정과는 별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에게도 당당하게 항의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기자 : 미국 밖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가치체계를 다른 나라에 강요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미국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나?
노무현 : 미국이 요구하는 세계 질서는 대체로 정당하지만 일방적 강요라는 측면도 있다.
기자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노무현 : 아,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자. 그건 미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아내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아내를 사랑한다.”
한미관계를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비유한 것은 인터뷰의 백미였다. 한미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짐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했던 노무현은 외신과의 회견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하게 경계선을 넘나들며 말했다. 한국의 정치인이 한미관계나 남북문제에 대해 국민의 정서를 넘어선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은 감각적인 비유로 진보적인 생각을 의도적으로 내비쳤다.
노무현은 이상주의자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가 펼치려 했던 굵직굵직한 정책과 말이 그가 이상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성공한 리더가 된 사람들의 리더십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영감을 가지고, 조직원들이 그걸 확실하게 공유하게 합니다. 미래의 비전을 가지게 하는 것이죠. 이건 논리로 되는 게 아닙니다. 비전을 받아들이는 데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과정이 있어요. 지도자가 가지는 신화, 신뢰성, 예감 같은 겁니다. ……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건 논리가 아니고 직관으로 하는 겁니다.”
이것은 정치인이나 변호사의 말이 아니라 이상주의자이자나 철학자의 말이다. 정치와 현실은 다른 모양이다. 정치는 권력의 싸움터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그의 말의 방식은 늘 공격하기 좋은 대상이 되었다.
20년 전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말’ 때문에 수많은 항의 전화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명절날 온가족이 즐기는 전 국민의 오락 고스톱을 왜 저급한 것으로 몰아가야 하는가?”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만 버리면 고스톱은 아주 묘미가 있는 오락”이라고 하면서 “아직도 고스톱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번 명절에 한번 배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 말 때문에 나는 청취자들에게 시달리고 상관에게 훈계를 들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번쯤 하고 나서 나는 방송을 진행할 때 논란이 될 만한 말은 피해 갔다.
노무현은 고스톱을 국기로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고스톱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왜 자꾸 타박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좋아하고 쉽게 잘 놀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자꾸 고스톱을 구박하는지 모르겠어요. 고스톱이 무슨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 않습니까?”
노무현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말한다. 집착해야 할 가면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당당하고 거침없이 말한다.
노련한 정치인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실체적 진실이라 해도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거나 사회적으로 대세를 이루는 견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정치인에게는 특히 그렇다. 더욱이 권력이나 명예, 돈이 주는 편안함을 경험하고 나면 말이 달라진다. 김상철 전 청와대 행정관은 노무현을 두고 “무대 앞과 무대 뒤의 말이 다르지 않은 분”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우리 사회의 견고하고 질긴 인식의 틀을 깨고 싶은 이상적인 욕망에서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말했다.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로 돌아간 노무현이, 찾아온 관광객들 앞에서 편안한 심경을 말하면서 “야! 신난다!”라고 외친 한마디에서 우리는 소박하고 감성적인 자유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도 파격적이라고 우려하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파격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파격적이라고 보는 시각이 타성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던 그가 기자회견 끝에 “잘 봐 주십쇼”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노무현은 비유와 유머의 고수였다. 장인의 좌익 활동에 대한 시비에 대해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그런 대통령이라면 그런 것 안 하겠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여기에 더 이상 시비를 걸면 거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해외 순방을 떠나면서 “내가 없어 한동안 조용하겠다”고 한 것은 정치에 대한 엄숙한 시각을 지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맛보기 어려운 카타르시스였다.
노무현의 말의 방식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 사회가 관료사회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게 여겨졌던 것은 대통령의 지위가 우리에게 권위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과 촌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이 우리 정치에 문화적 관용성과 유연성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대중의 정서를 의식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해야 하거나 진실을 애써 외면할 때가 있다. 그러나 접대용의 말이 일상이 되면 그 사람의 주변에 기름살이 낀다. 언어가 지나치게 화려해지고 기름살이 끼면 사회는 본질적인 것보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게 되고 진정성이 사라진다. 노무현은 한국의 정치문화에 기름살이 끼지 않은 말의 방식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노무현은 비유와 유머의 고수였다’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