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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국내 여행가이드 > 전국여행 가이드북
· ISBN : 9788996667087
· 쪽수 : 308쪽
책 소개
목차
부드러운 두부를 한입 베어 무니 _ 들머리
나는 절대 늙지 않는다 _ 삼각산
전투화 코에 빛이 머물다 간 시간 _ 연인산
착하고 편안한 의자가 되는 길 _ 예봉산·운길산
시금치, 그 씁쓸한 맛 _ 굴봉산·검봉산
비겁하고 싱겁고 모자란 _ 호명산
먼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_ 삼악산
너무 외로운 질문 _ 천마산
너는 따스한 풍경이 되려 하고 _ 구봉산·대룡산
천국의 문고리만 만지작거리다 _ 수락산
그림자가 꿈꾸는 그늘 _ 도봉산
시처럼, 영원히 시처럼 _ 운악산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_ 날머리
저자소개
책속에서
강촌역으로 하산하는 도중 발길이 자연스레 멈춰진다. 강촌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위치에 우뚝 서있는 고사목. 이상하게도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나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생명이 다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한 대가일까. 키는 작지만 옹골진 뜻을 품은 애늙은이 같은 모습은 죽어서도 제법 위엄이 감돈다. 죽어서도 마을을 지켜보겠다는 고절함이 서린 가지들은 곧 하늘로 뻗어나갈 듯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고사목이 내려다보는 마을은 높은 산에 둘러싸여 평온해 보인다.
산속의 모든 길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쌓여 비로소 길로 거듭나야 된다는 믿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타르나 시멘트가 깔린 길엔 앞서 간 이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다. 너무 깨끗이 정돈된 문명의 길은 앞서 간 이의 흔적을 매번 지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문명의 길은 늙거나 오래된 존재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느낄 만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중략) 산길은 늙음의 가치를 온전히 되살려준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단단하게 다져진 길. 앞선 이의 걸음이 없이는 길이 되지 않았을 길. 산길은 늙음을 토양으로 하지 않고서는 길이 될 수 없다. (중략)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산길은 누군가 처음 걸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잇고 있다.
바위의 표면 군데군데에 뿌리 내린 나무들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바람의 길을 따라 모인 흙 위에 우연히 날아든 씨앗. 내가 허투루 버린 시간을 차곡차곡 모아 자신의 길을 키운 나무들. 혹 그것들은 침묵하는 바위들의 전언이 아닐까? 삶에 대한 의지를 지닌 존재에겐 아무리 척박한 상황이라도 그 길이 열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