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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환경/생태문제 > 환경문제
· ISBN : 9788996751434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4-05-15
책 소개
목차
오가와 미쓰오의 세계 (地)
들어가며
1.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곁에서
호류지 오중탑에 반하다
대목장과 주고받은 편지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제자가 되다
제자 입문식
야쿠시지 금당 재건에 참가하다
스물일곱, 호린지 삼중탑 일을 맡다
규구술의 귀재 니시오카 나라미쓰
연장 쓰는 재주가 남달랐던 니시오카 나라지로
큰 가르침을 주신 다카다 종정 스님
연장은 손의 연장이다
스스로 궁리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
형제 제자 기쿠치와 오키나가
제대로 물어야 한다
도면 너머를 보라
호류지 귀신, 니시오카 쓰네카즈
마지막 큰 나무
목수의 교과서, 호류지
2. 오가와 미쓰오, 새로운 길을 묻다
벌어먹고 사는 궁궐목수의 길을 생각하다
장인 집단 이카루가코샤를 세우다
마지막 시험, 안논지 조사당
사람을 기른다는 것
인내를 통해 배우는 시간의 길이
이카루가코샤의 도제 제도
누구라도 허드렛일부터
스스로 몸에 붙여야 한다
시간을 들이다
하고자 안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십 년은 벼려야 하는 연장질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자를 돌보며 배운다
겐짱이라는 녀석
아들 료이치
실수를 깨달았다면 고쳐라
궁궐목수라는 일
고민과 미래
새로운 도전, 이카루가코샤 (人)
궁궐목수들의 야구 시합
1. 오가와 미쓰오의 생각
이카루가코샤의 출발
오가와 미쓰오, 이카루가코샤를 말하다
학교가 아니다
이곳에 오려는 사람들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다
한 걸음씩 더듬어 여는 앞날
왜 밥 당번을 하게 하는가
씨를 뿌리다
뒤틀린 것의 소중함
쉽지 않은 일들
다른 분위기를 한 번쯤 겪을 수 있도록
이카루가코샤의 입사식
2. 이카루가코샤의 제자들
니노미야 긴지로 동상의 의미
제자들의 생활
제자들과 나눈 마주이야기
목수 _ 기타무라 도모노리 | 오노 고키 | 가쿠마 노부유키
부목수 _ 마쓰모토 겐쿠로 | 지바 마나부
나카자와 데쓰지 | 아이바 마사히코
목수 보조 _ 하라다 마사루 | 후지타 다이 | 요시다 도모야
견습 _ 마에다 세이키 | 오가와 료이치 | 시바타 아키라
마쓰나가 히사야 | 오하시 마코토 | 하나타니 다이키
시미즈 히데야스
목수 _ 오키나가 고이치 | 가와모토 도시하루
3.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손자 제자들에게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손자 제자들에게 전한 것
새로운 출발
부록
후기 _ 듣고 정리한 자의 이야기
대담 _ 탑을 세우고 사람을 키운다
대담 _ 인터뷰의 참맛
리뷰
책속에서
+ 우리 일이란 호흡이 긴 일입니다. 하나하나 쌓아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니시오카 대목장은 대패질을 가르치실 때, 당신이 민 대팻밥을 보여 주며 “이렇게 해.” 하시는 게 다였습니다. 그걸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런 방식으로 깎아라,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면 빠를 수야 있겠지만, 그래서는 가망이 없습니다. 배우는 제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번득이는 깨달음도 얻지 못합니다. 느닷없는 상황을 만나거나 이런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을 때 아무 생각도 내놓지 못해요. 그저 시키는 대로 배우기만 했다면 거기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는 겁니다. 이래서는 진정한 목수는 되지 못합니다.
+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착실히 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실력이 붙습니다.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 일은 빨리 간단히 습득하는 것보다 몸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익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렇게 익히면 결코 잊지 않습니다. 머리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머리와 몸은 그런 점에서 다릅니다. 손은 잊지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오 년 걸린 일을 십 년 걸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십 년 걸린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제자들 가운데는 빨리 배우고 싶다며 책을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팻날은 이렇게 하는 게 좋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 책에 그렇게 써 있을 겁니다. 언어란 참 편리하죠.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마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저한테도 그럴듯한 질문을 하러 오는 제자가 있습니다만, 저는 말로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해서 보여 줍니다. 하지만 본을 보여 줘도 좀처럼 이해를 못 하지요. 책에서 배운 건 자기 손으로 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읽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식하고 신경 쓰는 만큼 기술은 더디게 늡니다.
+ 뭐든 완벽하게 치수대로 만드는 것만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저마다 성질이 있고, 마르면서 줄어들기도 하니까요. 일을 다 마쳤을 때의 그 모습이 완성품도 아닙니다. 건조물에 따라서는, 기와 무게가 더해져 이백 년은 흘러야 안정된 모습을 찾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 사람을 기른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만 해도 삼 년 정도는 묘상苗床에서 키우고, 그렇게 키운 묘목을 산에 가져가 심습니다. 묘상에서 동쪽으로 서 있던 나무라면 산에서도 동쪽을 바라보도록 심어야 합니다. 이걸 서쪽으로 심는다면 일 년 안에 원래 방향으로 몸을 틀어 버리지요. 그러면 나무가 비틀려 버립니다.
오늘날 학교와 가정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아이들을 잘 돌봤고, 훈육도 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를 학교에 맡기는 걸로 끝이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보내잖아요?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제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자기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아이가 사고를 치거나 비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겁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는 모든 아이가 같다고 여깁니다. 저마다 다른 씨앗을 모두 같은 비탈면에 심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인간에게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있습니다.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 목수입니다. 손으로 연장을 갈고, 나무를 깎고, 얼마나 잘됐나 손으로 확인합니다. 손끝에 닿는 감촉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눈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정도면 됐다.’라는 것, 이것이 직감입니다. 결국 목수의 마지막은 이 직감을 키우는 것입니다.
학교나 훈련소에서 이런 감각을 키울 수 있을까요? 뭐든 학교에서 다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직감을 어떻게 배우냐고요? 스승한테서 그대로 베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모두 성격도 다르고 지니고 있는 재능도 달라요. 가르치는 쪽이 제자의 성격이나 재능, 습득하는 속도에 맞게 ‘여기까지 해낸다면 다음에는 저기까지 시켜 보자.’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르치고 그걸로 끝,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인간에게 개성이라는 것이 없다면 누구든지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겠지요. 하지만 사람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성질이 서로 다릅니다. 그걸 무시하면 망치게 됩니다. 각각 성질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그 성질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가르치는 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 식사 준비부터 청소, 날붙이 갈기, 연장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빨리 빨리’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일 년이라는 시간이 몸에 스며들어야 알게 되는 것들입니다. 아무것도 서두를 게 없어요. 언뜻 보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기술 면에서도 됨됨이 면에서도 큰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것을 견뎌 낸 사람은 시간의 길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고대 건축을 보았을 때, 그것을 만든 장인의 손길 하나하나, 그 나무가 자란 세월, 산에서 베어낸 나무가 여기 오기까지 걸린 시간, 그런 것들을 어림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의 길이’를 알려면‘인내’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