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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박영주 (지은이)
  |  
아띠봄
2016-04-18
  |  
1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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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책 정보

· 제목 : 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6882251
· 쪽수 : 492쪽

책 소개

박영주의 여행 심리 에세이. <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는 주인공이 아픈 청춘의 기억을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 가서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뒤 두 달 간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되돌아 본 청춘의 자화상을 담아낸 책이다.

목차

Part 1. 시간을 거슬러

1. 그랜드 캐년_ 존재의 의미
2. 안데스 산맥_ 버리고 싶은 기억, 찾고 싶은 기억

Part 2. 그곳에 있었다

3. 와카치나_ 크리스마스의 기적
4. 나스카_ 존재의 증거
5. 마추픽추_ 한 세계를 짓는다는 것, 그 열정의 실체

Part 3. 생애 단 한 번, 우리의 시간들

6. 티티카카_ 아물지 못한 상처, 벌어진 시차
7. 우유니 사막_ 마음의 국경을 넘어
8. 푸콘_ 내 낡은 유년의 추억

Part 4. 꿈을 좇아 간 청춘

9. 바릴로체_ 이상과 현실 사이, 벤처기업의 고군분투기
10. 파타고니아_ 네 지친 마음을 마중 나갈게
11. 모레노_ 청춘 장례식
12. 엘 칼라파테_ 구원자를 내려 주소서

Part 5. 마음의 끝

13. 우수아이아_ 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14. 이과수 폭포_ 청춘의 얼굴

저자소개

박영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서 문화 콘텐츠 기획과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동화 시리즈 ‘고양이달’, 여행 심리 에세이 ‘세상의 끝, 마음의 나라’, 아동 그림책 ‘기린과 바다’와 ‘고래와 은하수’, ‘홍학과 무지개’, ‘코끼리와 피아노’, ‘사슴과 계속 자라는 뿔’을 집필/출간하였으며, ‘2011 alleh KT 글로벌 프론티어 아키텍트_아키텍트상’ 수상, ‘2012 올해의 여성문화인상_청강문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전국 초, 중, 고등학교 예술강사/교사들을 대상으로 ‘아이들과 함께 동화 쓰는 법’을 교육시키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문화 예술 교육에 앞장서고 있으며, 대학, 정부 기관 및 기업 등에서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16년 제주로 이주하여 아름다운 자연에서 상상과 감성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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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세상의 끝을 향해

꿈을 꾸었다. 매일 밤 반복되는 악몽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깊은 숲 속,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달려가 보니 토끼가 흑곰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흑곰은 사정없이 토끼를 삼켰고, 토끼는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귀를 뻗어 살려 달라고 외쳤다. 흑곰이 토끼의 귀를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악! 토끼의 비명 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그때였다. 누군가 손을 뻗어 토끼의 귀를 잡아당겼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긴 머리칼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는 소녀였다. 그러나 하얀 손이 토끼를 채 꺼내기도 전에 흑곰이 소녀를 밀쳤다. 소녀는 뒤로 나뒹굴었다. 토끼가 외쳤다.
“살려줘! 살려줘, 제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소녀가 다시 흑곰에게 돌진했다. 흑곰의 이빨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토끼의 귀를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토끼의 귀는 흑곰에게 물어뜯겨 잡아당기기엔 턱없이 짧았다. 소녀는 기를 쓰고 흑곰의 입을 비집고 들어가 토끼의 귀를 간신히 붙잡았다.
“짧아. 너무 짧아!”
그때였다. 흑곰이 소녀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한 손으로 번쩍 들어 허공에 던져 버렸다. 소녀는 허공을 붕 날아 숲 한가운데 위치한 호수에 풍덩 빠졌다.
“안 돼!”
흑곰의 입속에 갇힌 토끼가 울부짖었다. 소녀가 빠진 호수 위로 잔잔한 물결만이 원을 그리며 퍼졌다. 꿀꺽. 흑곰이 혀로 입가를 쓰윽 닦았다. 흑곰에게 잡아먹힌 토끼의 자취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였다. 누군가 읊조리듯 말했다.
“나 좀 꺼내 줘.”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듣고 있니? 나 좀 꺼내 줘.”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다시 목소리가 말을 건넸다.
“다 보고 있었잖아. 곰 안에 갇혔어. 도와줘.”
“누, 누구야?”
“나야, 나. 당장 여기로 와 줘.”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거기가 어딘데?”
“마음의 나라.”
“마음의 나라? 거기가 어디야?”
그 순간 흑곰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흑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흑곰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리더니 나를 향해 돌진했다. 숨이 턱 막혔다.
“아니야. 안 돼, 안 돼…….”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 치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어? 어! 안 돼!”
순식간에 흑곰이 나를 덮쳤다.
“아악!”
나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침대 맞은편 가지런히 놓인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아, 꿈이었구나. 나는 헐떡이는 가슴을 쓸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 놓인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숙소를 떠나기 전까지 두 시간 남짓 남았다. 더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잠들기 전까지 살펴보던 세계지도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음의 나라… 어딜까?”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세계지도를 찬찬히 훑었다. 열흘 전 떠나온 대한민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크게 중국이 보이고, 그 위에 러시아가 지나갔다. 아프리카를 지나 대서양을 건너 지금 이곳, 미국이 보였다. 천천히 손가락이 지도를 타고 바닥까지 내려갔다. 남미 대륙의 가장 끝자락. 지구 반대편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Ushuaia). 나는 한동안 우수아이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을 찾았다. 그랜드 캐년에서 남미의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여행 경로를 짠 뒤 페루로 날아갈 계획이었다. 페루에서부터 남미 대륙의 끝을 향해 내려가, 해가 바뀐 2015년 1월 20일에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1월 20일, 나는 거짓말처럼 세상의 끝에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나를 괴롭혔던 청춘의 꿈과 사랑, 열정을 모두 버릴 것이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그랜드 캐년에 온 것은,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곳 1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지난 삼 년간 죽을 맛이었기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그 기억들을 버리러 떠나왔기에, 세상의 끝에 향하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것 같았다. 여행이 시작되기 전 그랜드 캐년에서 일말의 위로를 구할 수 있다면, 세상의 끝까지 가는 동안 마주할 수많은 풍경 속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 억겁의 세월을 살아 낸 그랜드 캐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면, 복잡하게 엉킨 나의 시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라스베이거스(Las Vegas) 공항에 내리자마자 인근 여행사를 통해 육십 대 초반의 가이드 아저씨와 오프로드 자동차를 한 대 구했다. 3박 4일 동안 약 3,000킬로미터를 달리며 미국 서부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 유타 주에 걸쳐져 있는 다양한 캐년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고양이달』을 쓸 때 그랜드 캐년을 땅속에 넣고 주인공 소녀가 그 세계를 다스리는 설정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느낌과 얼마나 다를까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가 악몽이 다시 찾아오는 바람에 기분을 망쳤다. 아니야, 괜찮아. 여긴 한국이 아니야. 그랜드 캐년이라고. 출발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나 자신을 타이르며 로비로 나가니 먼저 나와 있던 아저씨가 활기찬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럼요. 오늘 하루 힘차게 달려 봅시다!”
아저씨가 먼저 숙소 밖으로 나갔다. 나도 뒤따라 나가 짐을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주변이 캄캄했다. 아저씨와 나는 해가 뜰 때까지 말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가이드 아저씨는 호탕하고 점잖은 분이었다. 긴 여행을 함께할 가이드이자 동료로 어딘지 모르게 듬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 만났을 때도 정식으로 소개를 한다거나 나의 소개를 청하는 일 없이 바로 여행길에 올랐다. 함께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여긴 건지, 아니면 이름, 나이, 직업과 같은 소개가 의미가 없다고 여긴 건지 그 속은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든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말수가 적은 분이어서 옆자리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협곡의 풍경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숨 막히는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때면 서로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에겐 최고의 여행 동반자인 셈이었다.
해가 뜨고 주변이 환해지자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자이언 캐년(Zion Canyon)으로 향하는 길, 아직 캐년과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풍경에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탁 트인 초원 너머 다채로운 지층 무늬가 새겨진 바위산과 기암괴석이 파란 하늘에 수놓인 하얀 구름과 어우러지며 마음을 흔들었다. 좋다, 좋구나.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떠나기 전만 해도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방에 갇혀 주구장창 과거의 기억과 씨름하느라 힘겨웠는데, 탁 트인 대자연의 풍경에 가슴 벅찬 날도 오는구나. 그때 아저씨가 조용히 물었다.
“아가씨는 왜 여기에 왔어요?”
“네?”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아저씨가 몇 마디 덧붙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억지로 꾹꾹 누르고 있는 사람 같아서…….”
“아니에요. 꾹꾹 누르긴요. 그냥 놀러 온 거에요.”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란 하늘 아래로 크고 작은 바위산이 계속 이어졌다. 내 안에 꾹꾹 눌러둔 이십 대 청춘이 너른 자연 속에 기지개를 펴며 흘러나왔다.
아저씨께 대답한 대로 삼십 대에 들어선 나의 일상은 그야말로 평온했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스물다섯, 내 작품을 쓰겠다고 첫 직장을 나와 벤처기업을 만들고, 국내 출판 시장에서는 생소한 장르인 ‘어른을 위한 동화’, 고양이달을 만들고,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해 나가는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침에는 창작하고, 오후에는 사업 계획서를 쓰고, 저녁에는 팀원들 혹은 파트너들과 회의하고, 주말에는 자본을 끌어 모으기 위해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하루걸러 계약서를 작성하고 파트너와 계약 조항을 하나하나 조율하면서 프로젝트를 힘겹게 끌어갔다. 죽어라 배우면 바로 실전에 적용해야 했기에 단 하루도 치열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잠을 청하면 밤새 악몽이 괴롭혔고, 나도 모르게 앓다가 잠에서 깨면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중에는 언제쯤 끝날지 앞이 캄캄했고, 그렇게 죽어라 해도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어 김빠진 콜라처럼 축 처진 어깨를 억지로 펴고 달린 것도 여러 날이었다. 그러나 내 나이 스물아홉, 이십 대 내가 벌인 일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매듭지어졌고, 나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서른이 된 나는 그때처럼 의욕만으로 일을 벌이지도 않고, 무리라고 생각되는 일에는 선뜻 나서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골라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작년만 해도 엄두도 못 냈던 운동을 꾸준히 했고, 하루의 일과가 끝난 뒤에는 아파트 안에 조성된 정원을 산책하거나 가까운 공원을 돌면서 휴식을 취했다. 기타도 배우고, 한 달에 한 번 캠핑도 다니면서 자연과 어울렸다. 고양이달은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고양이달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며 보람을 찾았다. 다음 작품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구상했다. 그토록 원하는 작품을 완성했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 왜 텅 빈 마음 한구석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걸까. 왜 아직도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지난 시간을 더듬는 걸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곳은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서부의 한 협곡이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달렸다. 가이드 아저씨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차창 밖의 풍경만 길게 늘려 주었다. 나는 풍경 도화지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청춘의 한 조각을 그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하면서 그곳을 지나갔다.

존재의 의미만으로도

차는 계속 달리고 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정상은 편평하지만 주위는 깎아지른 듯한 탁자 모양의 암석 구릉들이 사방에 펼쳐졌다. 그 풍경에 눈길을 빼앗긴 나를 보며 가이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평범한 고원이었는데, 빗물과 하천이 흘러들어 가면서 지층을 깎아내려 홀로 우뚝 솟은 모습이 되었단다. 규모가 큰 암석 구릉을 메사(Mesa), 작은 구릉을 뷰트(Butte)라고 부른다고.
나는 뷰트와 메사의 정상을 보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뷰트와 뷰트 사이, 메사와 메사 사이에 깎여 나간 부분을 생각했다. 세월이 더 흐르면 메사가 깎여 나가 뷰트가 될 것이고, 언젠가는 뷰트의 정상도 뾰족하게 깎여 나가겠지. 원래는 고원이었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흔적도 없이 도려내졌을까. 뷰트와 메사는 주변이 온통 비바람에 깎여 나가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깎여 나간 존재와 살아남은 존재, 어느 쪽을 위해 슬퍼해야 하는 걸까. 나는 청춘의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아 손에 쥔 것들을 기뻐해야 하는 걸까, 깎여 나간 나의 인연과 꿈을 슬퍼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잃었든 지켰든, 결과에 상관없이 흘러간 그 시간을 애도해야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잃은 걸까.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든 나는 고민이 깊었다. 원하는 일을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까. 나보다 먼저 직장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이 언젠가 회사를 나가 진정으로 원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그 언제가 언제일까. 함께 꿈을 꾸었던 동기는 고작 스물둘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다음 해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던 작은 엄마는 사촌 오빠가 전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기막힌 시간을 겪고 난 뒤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생에서 이왕이면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꿈에 도전하면서, 그 꿈을 응원했던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삶의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꿈과 사랑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살면서 그만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던 적은 없었는데, 그런 실패는 처음이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고, 애정이 깊었던 만큼 상처가 깊었다. 나는 오랜 시간 조용히 앓았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새로운 꿈을 찾아, 또 누군가는 사랑을 찾아 각자의 길을 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좌절한 내 꿈과 사랑을 온전히 보내지 못한 채 여전히 애정하고 있었다.
문득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모두 사라지고 없는데, 여전히 애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과거는 지나갔고, 아무리 애정했다 한들 다 끝난 이야기 아니던가! 그러자 과거의 기억이 타이르듯 속삭였다. 실패는 유감이지만 그래도 뜨겁게 사랑했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되지 않느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어떻게 결과와 상관없이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는 건지. 살아 있는 것만이 최선이라면, 꿈 많았던 내 동기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 선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던 작은 엄마가 그런 시간을 코앞에 두고 삶을 등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저 살아 버티는 것만이 최선이라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삶은 의미가 없단 말인가. 삶에서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고 누가 말했단 말인가. 실패한 사랑도 의미가 있다고 실패한 그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성공한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잠시 들른 고고학 박물관에서 나무 화석을 보았다. 바다가 땅이 되어 지층에 묻힌 바다 생물 화석도 보았다. 이들은 나를 더 깊은 상념으로 이끌었다. 나무가 화석이 되는 시간, 바다가 땅이 되는 시간. 그 억겁의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 낸 존재들. 길고 긴 세월의 증거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내 안의 시간과 존재에 시선을 돌렸다. 십 년이든, 십억 년이든 우리는 한 세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나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다들 살아 내고 있구나. 너는 나보다 거대하지만, 나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깎이면서도 견뎌 냈구나. 나는 한동안 화석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차는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자연도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은 데다 따뜻한 햇살까지 온몸을 감싸자 몸이 나른해졌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토끼가 다시 나를 찾았다. 흑곰은 혹독했던 청춘의 계절처럼 토끼를 잔인하게 집어삼켰고, 토끼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토끼의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살려줘! 살려줘!”
나는 귀를 틀어막고 토끼와 흑곰으로부터 도망쳤다. 그 시간들은 다 지나갔다고! 나는 살아남았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꿈도 세상도 없다고! 다 끝났다고! 그러나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토끼는 결국 흑곰에게 완전히 먹혔고, 토끼가 남긴 말만 허공에 맴돌았다.
“마음의 나라로 와 줘.”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제발…….”
“못 가! 안 가! 왜 가, 내가!”
고래고래 소리치자 흑곰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건 꿈이야. 너는 가짜야. 너는 나를 잡아먹을 수 없어. 나는 흑곰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주문을 걸었다. 흑곰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두 발을 딛고 서서 포효했다. 그리고 곧장 내게 돌진했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가짜야, 너는 가짜야.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번쩍 떴다. 흑곰의 입이 내 머리통을 삼키기 직전이었다.
“으아악!”
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몸을 벌떡 일으켰다. 흑곰은 온데간데없이 차창 밖으로 브라이스 캐년이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가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요? 무슨 꿈을 꾸었기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쓸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아저씨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시곗바늘이 오후 2시를 가리켰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악몽이 찾아오는구나.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의 그의 문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헤어진 지가 언젠데, 너는 왜 아직도 내 안부가 궁금한 거니.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신경질적으로 차 문을 열고 나갔다. 브라이스 캐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와 헤어지던 삼 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겨울의 끝날’, 그날도 지금처럼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쳤고 그는 눈보다 더 차가웠다.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브라이스 캐년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브라이스 캐년은 수백 수천 개의 후드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길고 좁다랗게 살아 버티는 저 존재도 지금까지 견뎌 온 그 시간만큼 시간이 더 흐르면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렇게 매 순간 존재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데, 이 겨울, 아무도 찾는 이 없이 홀로 세상과 이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추운 겨울, 방 안에서 홀로 침잠하던 나와 다르지 않아 브라이스 캐년의 홀로 있음이, 그 고독이 나의 것처럼 마음에 와 닿았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아무리 단단한 마음을 가졌다한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텐데, 모두 떠난 빈자리에 홀로 남아 긴 변화의 시간을 묵묵히 견딘 브라이스 캐년의 마음은 어떨까. 브라이스 캐년을 조용히 바라보다 보니 악몽과 그의 문자에 울컥 치밀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살아남은 브라이스 캐년의 후드(hoodoos)들이 앞으로도 계속 깎여 나갈 운명인 것처럼, 누가 사라지고 누가 살아남았든, 얼마나 살아서 버텼든 간에,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소멸하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삼 년의 방황도, 무겁게 짊어진 내 응어리도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생각에 잠긴 사이 사방에 눈이 내렸다. 황토색의 깎여 나간 돌벽을 어루만지듯 하얀 눈이 브라이스 캐년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내 머리 위에도, 손 위에도, 가슴 위에도 쌓였다. 그렇게 쌓이는 눈 속에서 나는 브라이스 캐년을, 브라이스 캐년은 나를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지식은 사람을 자만하게 하니, 지혜를 구해야

차는 멈추지 않고 너른 초원을, 협곡을 가로질렀다. 아저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나 역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국의 겨울은 해가 짧았다. 오후 4시면 해가 지기 시작하여 금세 어두워졌다. 거기다 오늘은 갑자기 눈보라까지 치기 시작해 시야를 가렸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계속되자 아저씨는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궂은 날씨가 걱정이라며 몇 마디 건네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IMF 때 사업이 크게 망해서, 여기로 건너왔어요. 한국에서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나는 뜻밖의 고백에 귀를 기울였다.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그랜드 캐년 가이드였어요. 그래서 작년, 재작년에 친구들을 데리고 여행하면서 경험을 쌓았죠. 여기 캐년 코스는 여러 번 왔어요. 겨울에는 처음이지만……. 그래서 이런 눈보라는 당황스럽네요.”
“저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 건데, 몇 번씩 오신다니까 부럽네요.”
“부럽긴요. 젊은 게 부럽지……. 한국에서 무슨 일 해요?”
아저씨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는 일을 감추기 시작했다. 내가 그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는 주저하다가 그냥 말해 버렸다.
“창작을 하고 있어요. 제 작품도 쓰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쓸 수 있게 가르치는 일도 해요.”
“멋진 일을 하고 있네.”
아저씨가 의외라는 듯 나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전혀 멋지지 않아요. 잘 못하거든요. 간당간당 버티는 수준이에요.”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을 보았다. 내리막길이 이어지자 차가 미끄러질까 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정말로 간당간당 버티고 있어서 그래요. 고양이달을 쓴 건 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었지만, 남이 작품을 쓸 수 있게 가르치는 일은 남을 위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랬다. 나에겐 그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내 삶이 어떻다,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렴 상관없지만, 내 삶의 경험을 훨씬 넘어서는 타인에게 당신의 삶이 이랬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듣고, 사유의 방향을 안내하는 것은, 그렇게 그들의 삶을 다시 쓰게 하는 것은 내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내 삶의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내가 감히 남의 삶을 위한 방향을 안내할 수 있는지, 그런 지혜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이 계속될수록 그 일이 정녕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를 위한 일이었던 고양이달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남을 위한 교육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데, 이 일을 정녕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왜 그 시절의 무모한 열정과 치기에 인생을 걸었던 걸까. 그렇게 후회하는 내가 시시때때로 틈을 엿보다가 나를 사정없이 공격했고, 무너뜨렸다. 나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나를 떨쳐 버리고 싶었다.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아가씨가 하는 일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일이네. 지식은 사람을 자만하게 하니, 꼭 지혜를 터득했으면 해요.”
“맞아요. 지혜가 필요해요. 그렇지만 지혜는 지식처럼 공부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연륜이 쌓여야 얻을 수 있는 건데, 제가 하는 일은 그게 없으면 힘들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 한 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봐요.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터득할 것인지가 관건이지, 언제가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노인이라고 꼭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아이라고 꼭 철부지가 아닌 것처럼……. 어쩌면 이 여행에서 아가씨가 필요로 하는 지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질문을 해야만 대답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아가씨는 이미 질문을 던졌잖아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의기소침한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아저씨의 어머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가방 끈이 긴 사람들조차 어머니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옆에서 보면 딱히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어머님만 찾은 걸 보면 말하지 않고도 헤아리는 지혜를 터득한 것 같다고. 배우지 못한 데서 온 겸손과 따뜻한 마음이 상대의 귀를 열게 했고, 듣는 귀를 통해 결국 그러한 지점에 이르게 된 것 같다고…….
“아가씨도 그런 마음과 귀가 필요해요. 그렇죠?”
“네.”
짧은 대답을 내뱉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아저씨는 아저씨의 어머님을 닮은 걸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 주다니……. 나보다 인생을 두 배 더 살아 낸 선배가 마음으로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의 온도가 그대로 전해졌다. 차 안의 분위기와 달리 창밖의 눈보라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와이퍼가 아무리 호들갑을 떨며 몸을 휘저어도 쌓이는 눈을 당해 내지 못했다. 시야가 완전히 눈에 파묻히자 아저씨는 허리를 더 곧게 세우고, 온 신경을 운전에 집중했다. 눈보라가 사정없이 시야를 때리다가 갑자기 우박으로 바뀌었고, 그러다 폭우로 변했다. 나는 마른 침을 연거푸 삼켰고, 아저씨의 미간에는 주름이 움푹 팼다. 차 안은 침묵이 감돌았고, 우리는 밤에 꼼짝없이 갇힌 채 조심스레 나아갈 뿐이었다.

세계와 세계 그 사이, 건널 수 없는 강

그날 저녁, 우리는 눈 속에서 약 300킬로미터를 달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달린 셈이었다. 여행 초반부터 계속 강행군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말았다. 희미하게 눈을 뜰 때마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거세게 부는 단편적인 장면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잠들어 있었던 걸까. 서서히 정신을 차릴 때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나는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차창 밖을 응시했다. 눈도, 비도 그친 상황이라 아까보다 시야가 또렷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캄캄한 시골길을 비추자 오른쪽에 움직이는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 저게 뭐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차가 가까이 갈수록 그 형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토끼였다. 토끼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도로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저씨가 차를 급히 세우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나는 토끼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숨이 탁 막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차에서 내렸다. 아저씨가 토끼를 부축하자 토끼가 아저씨의 몸에 기대어 쓰러졌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눈을 크게 뜨고 토끼를 살폈다. 하얀 털의 자그마한 체구와 생김새, 내가 아는 토끼가 틀림없었다. 한쪽 귀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까지 똑같았다. 아저씨가 토끼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니?”
토끼가 힘겹게 입을 뗐다.
“곰이…….”
“뭐라고?”
아저씨가 토끼의 입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나도 마찬가지로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고, 곰이 귀를…….”
토끼는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자신을 꺼내 달라던 그 목소리와 같았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저씨는 토끼를 차 안에 눕혔다. 나는 토끼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상처 입은 귀를 감쌌다. 카디건이 이내 붉은 피로 물들었다. 토끼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아저씨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
나는 걱정스런 마음과 당황스런 마음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아저씨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밤을 뚫고 달렸다. 삼십 분가량 지났을까. 캄캄하고 황량한 시골길에 일층짜리 작은 호텔 간판이 보였다. 아저씨는 호텔 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토끼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토끼를 안고 호텔 방에 뛰어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구급약을 얻어 와 토끼의 귀를 치료했다. 토끼의 귀에 붕대를 감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저보단 아저씨가 운전하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이런 일까지…. 얼마나 놀라셨어요.”
“그래도 그때 거길 지나가서 천만다행이지, 아니면 큰 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요.”
나는 붕대를 매듭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저씨가 말했다.
“배고프죠? 뭐라도 먹어야죠. 호텔 주인장이 뜨끈한 수프를 준비해 주기로 했어요. 나가서 한술 뜹시다.”
아저씨가 나의 어깨를 살짝 다독이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든 토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붕대를 감아 놓은 귀는 다른 귀에 비해 확연히 짧았다. 어쩌다 귀가 저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방을 나섰다.
아저씨와 나는 마주 앉아 조용히 수프를 먹었다. 서로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저씨는 마지막 한 술을 뜨기 직전 숟가락을 든 채로 눈을 감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의자 밀리는 소리에 아저씨가 놀라 화들짝 눈을 떴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내일 아침에 뵐게요.”
아저씨도 따라 일어나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도 잘 자요.”
나는 미소로 화답하며 방으로 향했다. 과연 잘 잘 수 있을까. 악몽 속에 나왔던 토끼가 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잠이 올까.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어떻게 꿈속의 네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야. 여긴 미국이라고!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꿈이다. 이건 꿈이야. 대낮에 본 대자연의 풍경도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던가! 여기까지 다 꿈인 거다. 얼른 깨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 위 잠든 토끼를 보는 순간 무릎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토끼가 숨을 쉴 때마다 하얀 배가 살짝 오르락내리락했다. 분명히 살아 있는 존재였다. 꿈이 아닌 실제였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모르겠다. 일단 자자. 아침이 밝으면 모든 의문이 풀리겠지.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대에 누웠다. 토끼의 얼굴과 붕대로 칭칭 감은 귀가 코앞에 보였다. 나는 등을 돌렸다. 눈을 감자 악몽 속의 토끼가 했던 말이 환청처럼 메아리쳤다.
“나 좀 꺼내 줘, 마음의 나라로 와 줘.”
마음의 나라가 여기였어? 가만, 그럼 흑곰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야? 아, 머리 아파. 머리 아파……. 나는 두통에 짓눌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침대 옆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았다. 토끼는 어디 갔지? 로비로 나가자 먼저 준비를 마친 아저씨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 토끼 보셨어요?”
“글쎄, 여기 어디 있을 거예요. 먼저 나와서 과일 먹고 있던데요?”
“과일이요?”
“좀 진정이 됐는지 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더라고요.”
아저씨는 시리얼을 마저 먹었다. 호텔 문 밖으로 토끼가 쌓인 눈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토끼가 만든 눈사람이 보였다. 아저씨가 물었다.
“아침 먹어야죠.”
나는 고개를 저으며 토끼를 응시했다. 어제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저씨가 말했다.
“어서 준비하고 나와요. 그랜드 캐년 보러 가야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가는 길, 토끼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상한 토끼야, 정말.”
나는 짐을 대충 챙겨 나와 바로 차에 올라탔다. 토끼가 눈사람과 씨름하다 말고 달려와 뒷좌석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좋은 아침이요!”
좋은 아침? 어이가 없어 뒤돌아보자 토끼가 말했다.
“고마워. 밤새 보살펴 줘서…….”
토끼가 씨익 웃자 툭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도드라졌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무심히 말을 던졌다.
“밤새는 무슨……. 나도 잤어.”
아저씨가 시동을 걸며 토끼에게 따스하게 말을 건넸다.
“좀 괜찮니?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곰한테 당했어요. 거울을 보니 귀가 더 잘렸더라고요. 상처야 시간이 지나면 아물겠지만, 곰이 또 쫓아올까 봐 걱정이에요.”
“왜 쫓기고 있는 건데?”
“모르겠어요.”
“그 곰은 왜 네 귀를 잘라 먹는 건데?”
“그것도 모르겠어요. 귀에 기억이 다 있어서, 귀가 잘리니까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왜 여기 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니?”
“네. 왜 여기 있는지, 곰이 왜 저를 쫓는지, 하필 귀만 노리는지…….”
토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오늘 그랜드 캐년에 갈 거야. 넌 어떻게 할래?”
“저도 그랜드 캐년 보고 싶은데, 함께 가도 될까요?”
토끼의 대답에 아저씨가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토끼가 미심쩍었지만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저씨는 묵묵히 협곡의 절경을 뚫고 달렸다. 눈보라와 우박이 언제 사납게 몰아쳤냐는 듯 초원도 나무도 바위도 절벽도 당당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제의 흔적이 남아 흐린 하늘 아래 뿌연 안개가 때때로 나무를 가리고, 바위를 덮고, 절벽을 숨겼다. 그 풍경을 보며 감상에 잠길 때마다 토끼가 뒤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토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이어폰의 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그렇게 두 소리가 맞붙어 내 귀를 사정없이 찢어 놓는 동안 어느덧 그랜드 캐년에 입성했다.

차에서 귓가를 때리던 음악과 토끼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깊은 침묵이 풍경을 휘감았다.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이 콜로라도 고원(Colorado Plateau)을 가로질러 흐르는 곳에 형성된 대협곡이 눈 앞에 있었다. 길이가 무려 447킬로미터로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가 약 390킬로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입이 떡 벌어질 노릇이었다. 너비가 30킬로미터, 깊이는 1,500미터로, 길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규모에서도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망대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시야에 들어온 협곡의 벽을 바라보았다. 토끼도 조용히 서서 앞만 응시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로 암갈색, 회갈색, 고동색, 황토색, 진녹색, 상아색 등 다채로운 색상의 지층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시절에는 차곡차곡 쌓여 수평으로 이어진 지층을 만들고, 또 어느 시절에는 옆이나 밑에서 오랫동안 힘을 받아 모양이 휘어지기도 하고, 또 어느 혹독한 시절에는 양쪽에서 잡아당기거나 미는 힘에 의해 끊어지기도 하며 살아남은 지층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 내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백 년을 살기 힘든 인간이, 고작 삼십 년을 살아 낸 내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이십억 년의 나이테를 맨몸으로 드러낸 그랜드 캐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랜드 캐년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느냐고, 실제로 나를 보니 기분이 어떠하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백 년도 아니고, 이천 년도 아니고, 이억 년도 아니고, 이십억 년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 나는 고작 삼 년을 부둥켜안고 끙끙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좁디좁은 내가 무슨 능력으로 감히, 그랜드 캐년의 시간을, 언어를, 풍경을 이해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걸까. 이십억 년, 그 세월과 나 사이에는 또 하나의 콜로라도 강이 존재하여 나는 도저히 그랜드 캐년으로 건너가 그것의 마음을 보고 듣고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랜드 캐년은 멀리 떨어져서 그저 한 폭의 그림처럼 우뚝 서 있을 뿐 내게 다가와 내 가슴을 치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헤어진 그도 그랬다. 우린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는 그의 세계에, 나는 나의 세계에…. 나는 나의 세계에 홀로 존재함이 외로웠고, 그 역시 그랬기에 우리의 세계가 만났을 때 우리는 환희에 가득 찼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의 세계를 탐색했고, 때때로 비교라는 것을 했다. 나의 세계와 그의 세계, 나의 마음과 그의 마음을 두고 치열하게 우위를 가려 상대보다 내가 부족하면 노력이라는 것을 했고, 상대가 나보다 부족하면 서운해 울기도, 화를 내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 속에서 때론 희망에 부풀었고, 때론 비관하기도 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서로의 시간과 언어와 풍경을 이해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서로를 끝없이 오해했고, 원망했고, 심지어 미워했다. 우리는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마음이 온통 애증으로 바뀌어 버렸을 때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떠났다. 이십 대에 겪은 가장 뼈아픈 실패였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그가 보낸 문자를 다시 보았다.
‘잘 지내니. 일은 잘하고 있고? 여전히 좋지?’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잘 지내지 못해. 일은 다 정리하고 떠나왔어. 이곳에서조차 여전히 좋지 않아.’
이번엔 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좋지 않을 건데?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일을 벌인 거야? 왜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일을 좋아한 거야?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떠난 그였어. 왜 그런 그를 좋아했고, 지금껏 상처를 붙들고 괴로워한 거야?’
나는 이십억 년의 기억을 가진 그랜드 캐년 앞에서 지난 몇 년 간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청춘의 기억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행복이고 불행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애증인지, 어디까지가 열정이고 어디까지가 자기 학대인지, 어디까지가 미련이고 어디까지가 그리움인지 알기 어려웠다. 사랑과 미움과 행복과 불행이 복잡하게 얽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응어리졌고, 그 응어리는 시시때때로 내 가슴을 치고 나를 통째로 흔들었다. 나는 더는 견딜 수 없어, 그 돌덩이 같은 응어리를 뱉어 내려 한다. 시간을 두고 잘근잘근 깨부수어 세상의 끝에 버리고 올 것이다. 마음 속 응어리들이 짐을 빼면 얼마나 텅 빌지, 얼마나 처절히 무너질지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내가 나를 구할 것이다. 나는 비로소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로 향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그랜드 캐년과 그, 모두 내게 설렘과 도전을 주었지만 나를 좌절하게 한 존재들. 당신들을 이해하기엔 나는 미약한 존재랍니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래서 감히 당신의 이십 억년으로부터 내가 일말의 위로를 받게 된다면 나는 지난 삼 년보다 더 혹독한 삶의 지층을 쌓았겠죠?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깊고 넓어져야겠지요? 얼마나 더 울어야 할지 상상조차 안 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위로받을 거고, 다시 사랑할 겁니다. 그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픈 기억부터 버리러 세상의 끝으로 갈 거예요. 잘 있어요, 그랜드 캐년.

나는 조용히 그랜드 캐년과 작별했다. 토끼가 묵묵히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내려다보자 빙그레 웃어 주었다. 나도 그때만큼은 귀가 잘린 토끼가 가엾게 느껴져 말없이 웃어 주었다. 거대한 그랜드 캐년에 또 하루만큼 시간의 지층이 쌓이고 있었다.
아저씨와의 작별은 첫 만남만큼이나 담백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함께 여행을 떠나듯 공항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요?”
“페루에 가요. 거기서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갈 생각이에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행운을 빌어요.”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대답한 뒤 이번에는 토끼에게 물었다.
“넌 이제 어디로 갈 거니?”
토끼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아저씨가 그런 토끼를 걱정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정체가 뭘까. 아저씨만 없으면 대놓고 물었을 텐데, 이도저도 못한 채 생각만 하는 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차에서 짐을 내린 뒤 잠시 고민하다가 뒷좌석으로 다가갔다.
“잠깐 얘기 좀…….”
어라? 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거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토끼가 뒤에서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도 데려가 줘.”
“뭐라고?”
나는 ‘너 대체 누구야?’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차분히 이유를 물었다. 토끼가 대답했다.
“나도 세상의 끝에 가야 해.”
“거긴 왜?”
“기억을 찾으러……. 나도 데려가 줘. 부탁이야.”
토끼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두고 가면 더 찜찜하겠지. 매일 밤 악몽에 등장하는 토끼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대체 왜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알아야 했기에 나는 토끼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까지일지 모를 동행을 시작했다. 토끼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나는 비행기 창 아래 멀어지는 그랜드 캐년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붙잡았다. 두 달 뒤 청춘의 아픈 기억을 모두 버리고, 마음의 응어리를 뱉어 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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