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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정석해

철학자 정석해

(그의 시대, 그의 사상)

박상규 (지은이)
사월의책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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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정석해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철학자 정석해 (그의 시대, 그의 사상)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97186624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6-06-01

책 소개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연세대학교 초창기의 인문학적 기틀을 세운 학자로서 정석해라는 인물의 사상과 활동을 밀착하여 기록한 책이다. 정석해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 박상규가 수많은 기록들을 모아 이 평전을 썼다.

목차

새 판에 붙이는 저자의 말
초판 저자 후기

1장 철학자의 생애

2장 소년과 그의 시대
1. 철산군 정씨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다
2. 관서문화 소묘
3. 선천 신성학교 시절

3장 3.1운동 한가운데서
1. 연희전문학교 학생이 되다
2. 3?1 독립운동의 숨은 주모자
3. 망명기의 활동

4장 유럽 유학과 연구 시절
1. 프랑스의 고학생
2. 독일에서 길을 찾다
3. 다시 파리로
4. 20년 만의 귀국

5장 일제와 칩거 시절
1. 귀향 그리고 실의의 나날들
2. 아내를 만나다
3. 해방에서 연희 동산까지

6장 학문과 교육의 길
1. 고달픈 행정보직 교수
2. 6.25 전쟁과 인공 치하 90일
3. 서울 수복, 그리고 피난살이
4. 피난지의 연희대학교
5. 환도와 학교 재건
6. 미국 시찰
7. 보직과 교단 사이에서
8. 평교수로 돌아와서

7장 4.19 혁명과 사회참여
1. 4.19 혁명의 발발
2. “내가 겪은 교수단 데모”
3. 4?25 교수데모의 전말과 의의
4. 학원 민주화운동

8장 만년의 학문과 삶
1. 5.16 군사쿠데타
2. 정년퇴임
3. 특별강사 정석해
4. 숙명학원의 돌풍을 잡고
5. 고려대에서 명예 학위를 받다
6. 정치 비판 활동
7. 혈압으로 쓰러지다
8. 태평양을 넘나들며 - 말년의 삶

9장 회고와 일화로 본 서산의 생활과 철학
1. 해학과 멋
2. 교수로서의 자세
3. 탁월한 문장가
4. 학문과 실천의 문제
5. 사상과 생활신조

서산 정석해 연보
부록: 선생과의 서신 교류

저자소개

박상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 홍익대학교 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전임강사 및 이화여자대학교 등의 강사를 지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객원교수를 거쳐 홍익대학교에서 오랜 교수 생활을 한 뒤 정년퇴임했다. 저서와 역서로는 『윤리와 사상』(공저), 『서양 사상의 궤적』(편역), 『西山 정석해 - 그 인간과 사상』, 『열린사회의 철학』, 『미학과 현상학』, 『새로운 사회』(E.H. 카), 『현상학 서설: 데카르트적 성찰』(에드문트 후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토마스 어니스트 흄), 『예술의 비인간화』(오르테가 이 가세트), 『영화란 무엇인가』(앙드레 바쟁)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영혼과 상처』, 『선이 굵은 지식인이 그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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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것[3?1운동]은 지도자 없는 우리 독립운동이요. 지도자가 없었어요. 글쎄, 그 후에 퍼진 말로는 독립운동이 김성수 씨의 저 중앙학교 교무실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합니다만, 거기 내가 반대했고. 그 말도 사실이긴 하외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살신성인할 사람이 없었어요. 남강 선생이 정주에서 올라오고 평양서 온 이들도 있었지만 33인 중 어느 한 사람 탑골공원에 온 이가 없었어요. (…) 민중을 동원해야 군중사변을 만들어야 일이 될 게 아닙니까? 청년 정재용 씨가 불을 질렀으니까 일이 터진 게죠. (…) 나는 그래, 그 학교 등사판을 몰래 가져다가 집에서 독립선언서, 삐라 등을 인쇄해서 거리에 마구 뿌렸어요. 사실상 죄다 내 손에서 나간 거죠. (…) 남대문의 학생 만세운동은 그렇게 벌어졌어요.”


“이때부터 선생과 이상은, 이종우 세 사람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4?19 학생의거의 뜻 깊은 결말을 짓고자 하는 모의를 계속해 나갔다. 그들은 주로 종로의 ‘백궁’ 다방에서 만났는데, 22일 다시 모일 때는 계동에 있던 선생의 아우 정석원 씨 댁으로 옮겨갔다. (…) 그날 이들 세 사람은 사태를 이대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칫하다가는 이 박사와 그 추종자들이 시간을 벌어 재규합하여 국민과 학생들에게 더 포악한 방식으로 보복을 할는지도 모른다는 것, 따라서 교수들이 궐기해야 한다는 것 등에 의견을 모으고 시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4월 25일의 거사가 이(李) 정권에 대하여 4?19 학생의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정도로 끝나서는 분명히 실효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었다. 뭔가 충격을 안겨주는 행동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선생은 처음부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교수단의 데모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세속의 잣대로 볼 때 선생을 두고 실패의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갖춘 높은 식견과 이 사회에 대한 성실한 봉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없지 않다. 선생은 평생 철학 가운데서도 논리학과 인식론, 그리고 형이상학과 같은 순수철학 분야의 문제에 몰두했는데, 이러한 철학적 관심과 그의 실천적인 사회 참여와의 관계 문제라든가, 또는 각 분야 상호간의 연계 문제 등에 해답을 주지 못하였다는 지적도 받는다. (…) 그러나 선생이 학문에서나 실천에서나 그토록 집요하게 관심을 두었던 것이 객관적인 과학 정신의 추구요 공정성의 획득이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선생이야말로 그의 실천적?학문적 활동의 중심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를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본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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