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88997188505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4-02-2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참사람[無位眞人]으로 사는 길 제시한 선어록의 왕
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 서문
1. 상당(上堂)
개당설법(開堂說法)
불법(佛法)의 큰 뜻
세 번 묻고 세 번 두들겨 맞다
부처님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입을 열면 벌써 어긋난다
천수천안의 진짜 눈
지위 없는 참사람 - 무위진인(無位眞人)
할, 할, 할
주인과 손님이 명백하다
불자(拂子)
다시 한 번 몽둥이를 맞고 싶다
칼날 위의 일
석실 행자와 방아
안다, 모른다 하는 것은 모두 착각
고봉정상과 네거리
집안과 길거리
삼구(三句)
삼현ㆍ삼요(三玄三要)
2. 시중(示衆)
사료간(四料揀)
생사에 물들지 않는다
일 없는 사람
본래의 자기를 밖에서 찾지 말라
돌아가 쉴 곳
마음은 형상이 없다
연야달다의 잃어버린 얼굴
네 가지 조용(照用)
일 없는 사람이 귀인이다
심지법(心地法)
잡으면 그대로 쓸 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부처와 마군 모두 물리쳐라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어디를 가나 막힘이 없다
본래 아무런 일이 없다
인가 받았다고 지껄이지 말아라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도인[無依道人]
찾을수록 멀어진다
인생의 덧없음
네 가지 형상 없는 경계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
물에 비친 달처럼
지금 바로 작용하는 ‘이것’을 믿어라
마음 밖에 법이 없다
수행도 업 짓는 일
사자후에 뇌가 찢어진다
평상심이 도다
그 마음 그대로 살아있는 할아버지다
구함이 있으면 괴롭다
형상 없음이 진실한 형상이다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地行神通]
만법이 의식이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주인과 손님
귀신과 도깨비들
도안(道眼)이 분명해져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너는 무엇이 부족한가
삼계는 마음의 그림자
한 생각 마음 쉰 곳이 깨달음의 나무
보고 듣는 이가 누구인가
주인과 객의 탐색전
눈이 밝아야 간파할 수 있다
형체도 없으면서 밝고 뚜렷한 ‘이것’
동정일여(動靜一如)
세 가지 근기로 판단한다
모두 놓아버려라
선사의 계보
형상에 속지 말라
보리의 옷과 열반의 옷
알음알이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참 부처는 형상이 없다
참 부처, 참된 법, 참된 삶
마음과 몸이 부처와 다르지 않다
밥값을 갚아야 한다
도인은 자취가 없다
대통지승불
마음 따라 일체 법이 생하고 소멸한다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
내 말도 취하지 말라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잃는다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잔다
전체작용(全體作用)
순수하고 유연한 정신
3. 감변(勘辨)
쌀을 가리다
도적에게 집 맡기는 격
불자(拂子)를 세운 뜻
보화스님과 극부스님
밥상을 엎어버린 보화스님
도적놈아, 도적놈아!
보화스님의 나귀 울음소리
밝음으로 오면 밝음으로 치고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말라
수좌를 점검하다
한낱 나무토막이로구나
이것도 살 수 있느냐
강사를 점검하다
덕산스님의 몽둥이 30방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빈 터의 흰 소
몽둥이와 할(喝)
손을 펼쳐 보인 뜻
불자(拂子)를 세우고 좌구(坐具)를 펴다
조주선사의 방문
정 상좌가 크게 깨닫다
12면 관세음보살의 바른 얼굴
네 종류의 할(喝)
잘 왔는가? 잘못 왔는가?
조사의 뜻은 없다
경산스님의 오백 대중
보화스님의 전신탈거(全身脫去)
4. 행록(行錄)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황벽선사의 불법도 별것 아니다
호랑이 수염을 뽑다
소나무를 심은 뜻
덕산스님의 선상을 뒤엎다
산 채로 한순간에 묻어버린다
황벽스님이 당신 입을 쥐어박다
임제선사가 졸고 있을 때
빈손으로 노동 하는 법
이 일을 안다면 그만 둡시다
앙산스님의 예언
여름 안거를 깨뜨리다
황벽스님이 선판과 경상을 물려주다
부처와 조사에게 예배하지 않는다
용광스님의 낭패
앉아서 차나 들게나
삼산이 만 겹의 관문을 가두다
훌륭한 선객은 정말 다르구나
화살이 서천을 지나갔다
여기서 무슨 밥그릇을 찾는가
짚신만 떨어뜨릴 뿐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라
공적으로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은 운이 나쁘구나
정법안장을 부촉하다
임제혜조선사 탑기(臨濟慧照禪師塔記)
저자소개
책속에서
… 임제스님이 황벽스님의 방장실에 가서 불법의 대의를 물었는데, 황벽스님은 곧바로 20대의 몽둥이로 임제를 후려쳤습니다. 그야말로 간단히 진리를 열어주고[開], 보여주고[示], 깨닫게 해주고[悟], 불법 속으로 들어가게[入]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세 차례나 묻고 세 차례나 얻어맞았다 하는 이것이 그 유명한 ‘삼도발문(三度發問) 삼도피타(三度被打)’의 기연인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대오스님를 찾아가 옆구리를 쥐어박은 사연… 임제스님이 황벽의 뺨을 처버린사연 등 황벽스님과 그 제자인 임제스님의 법거량은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단한 경지입니다. 진정 도를 깨쳤다면 삼라만상은 하나여셔, 대오가 곧 황벽이요 황벽이 대오이니, 황벽을 쳐도 대오를 친 것입니다.
‘할’을 하면서 내리치는 것은 개아(個我)의 망상과 분별을 죽이는 차원이기도 합니다.
… 경계가 다 끊어진 시공을 초월한 마음자리를 가리키는 반야, 법, 부처라는 명칭은 무위진인(無位眞人) 차원에서 붙여놓은 이름일뿐입니다. 현상계에서는 삼라만상이 다 있지만 볼 수도, 나눌 수도 없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마음자리에 마음을 두고 있는 참사람을 무위진인이라 합니다.
만공스님의 제자인 원담스님(수덕사 방장 역임)은 비구니인 이모님을 뵈러왔다가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깍았다고 합니다.
만공스님은 자주 어린 원담에게 머리를 쥐어 박으며 “아프냐?” 하고 물으셨으며,
원담이 “이제 괜찮습니다.” 하면,
“그 아픈 놈이 어디 갔는고?”를 묻곤 하셨다 합니다.
여기서 그 ‘아픈 놈’이 바로 무위진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훌륭한 스승이 있어서 원담스님이 17세에 도를 깨친 게 아닌가 합니다.
… 두 스님이 서로 상대를 보는 순간 ‘할’을 한 것은 보는 자와 보여 지는 자, 주와객이 나눠진 상태입니다. 깨닫지 못하거나 중생을 제도하는 입장에서는 손님[賓]과 주인[主]이 따로 있을 수 있지만, ‘할’로써 거량 하는 그 순간에는 손님ㆍ주인(賓ㆍ主)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깨달아라” 하는 것입니다. 선방 입제시에 조실스님이 의문만 제시한 후 석달이 지난 뒤 해제시에 답을 해보라 하는 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