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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사랑비

이명우 (지은이)
  |  
로담
2011-12-16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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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책 정보

· 제목 : 사랑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7253142
· 쪽수 : 448쪽

책 소개

이명우의 로맨스 소설. 소화기내과 전문의, 장이수.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가 불쑥 그의 삶에 뛰어들었다. 여차하면 포르말린에 확 담가버릴 수도 있다고 막말을 하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여자의 당당함에 그의 눈길이 멈췄다. 존 스미스, 도련님, 보스, 그리고 윤이 아빠. 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의 진짜 이름은 모른다. 다만 정체불명의 이 남자, 오만한 윤이 아빠가 갑자기 달라졌다.

목차

프롤로그 1장 아름다운 귀향? 2장 불꽃의 카포테(capote) 3장 이윤, 엄마 없는 아이 4장 그리운 사람 5장 짱 선생의 자장가 6장 아프면 돈을 바르면 되나? 7장 위험한 남자 8장 불운과 행운은 백지 한 장 9장 삼천궁녀의 마음 10장 바람이 불어와 11장 함정에 빠지다 12장 당신을 원해 13장 비 온 뒤에 무지개 14장 땡볕을 예고하는 소나기 15장 그 여자, 김도희 16장 두려운 마음 17장 사랑비 내리다 에필로그

저자소개

이명우(빨강우체통) (지은이)    정보 더보기
늘 가슴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cafe.naver.com/redtong pwdroom.net 출간작품 : 「동이」「배춧잎 사랑」「주피터의 장난」「입술을 듣는 남자」「착한 사랑」 「오랑아 오랑아」「아내해」「슬리핑뷰티」「슬픔아, 제발!」「사랑아, 제발!」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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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 잔 줄까?”
그가 갑자기 와인 잔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아, 아뇨!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뜻밖의 친절에 놀라 이수는 손사래를 쳤다.
“생선 앞에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무, 무슨 눈빛?
머릿속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맛있는 육개장으로 기분이 나아졌다고 해도 그의 말은 심하게 이수의 귀에 거슬렸다.
“하아, 미안하지만 당신이 내 취향이 아니듯, 와인도 절대 내 취향 아니거든요?”
“그런가?”
“그래요! 난 와인보다 싸고 맛있는 소주가 더 좋아요! 와인은 줘도 안 먹는다고요. 그러니까 생선 앞의 고양이라는 말은 당장 취소해요!”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지만 모욕감에 스친 이수는 자신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이 남자와는 아무래도 상극인 모양이다. 한 공간에 있는 것도 힘들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말만 섞으면 바로 전쟁 모드로 돌변하니 말이다.
“소주가 아니라 막걸리 아니었나?”
“뭐요?”
이수는 당장 공격할 자세로 눈에 힘을 주며 그를 쏘아봤다.
“내 기억으로 당신을 두 번째로 봤을 때, 아저씨 냄새가 났던 것 같아.”
“무, 무슨 냄새? 아, 아저씨 냄새요?”
이수의 머릿속에 쓰나미보다 더한 충격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집채만 한 해머로 한 대 맞아도 이렇게 띵하진 않을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막걸리 냄새였어. 막걸리 아니었나?”
막걸리! 그래, 나 막걸리 마셨다!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다가 불려왔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두 잔이었다. 취하지도 않았고, 냄새가 좀 날 수는 있어도 커피도 마셨고 역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면 내가 마신 막걸리 냄새가 저 남자에겐 아저씨 냄새로 느껴졌다는 말이지? 아가씨한테 아저씨 냄새라니!
차분해지려고 정리를 하던 이수는 더욱 열이 뻗치면서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보자마자 그녀를 무슨 중죄인처럼 몰아붙여 정신없게 만들더니, 이제는 아저씨 냄새란다. 이 인간은 도대체 날 뭐로 보는 걸까? 이수는 생각하면 할수록 흥분되는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표정 보니 막걸리 맞군.”
“이, 이봐요! 2층에선 남의 속옷을 보면서 스몰 어쩌고 하더니 이번엔 냄새예요? 당신, 도대체 뭐예요? 왜 자꾸 사람을 놀리는 건데? 설마, 나한테 관심 있어요? 하하, 그래서 애들처럼 자꾸 시비 거는 거예요? 내 가슴도 쭉 훑어보고 하면서?”
이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다가 난감함에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뒤끝이 있는 줄 정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장이수 뒤끝 있었다. 잊어버렸다 싶은 일을 스스로 꺼내어 이 망신스러운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그런 비생산적인 취미는 없다고 말하고 싶군.”
흥분한 그녀와 달리 그는 역시나 전혀 흔들림 없이 냉정하게 부정했다. 예상했지만 이수는 어쩐지 더 화가 나면서 매몰차게 물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렇게 날 자극하는 건데요?”
“난 머리가 좋아.”
“하하, 그래서요?”
이젠 심지어 머리 좋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이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 번 본 것도, 느낀 것도 절대 잊지 않아. 내가 보고, 내가 기억하는 걸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
“아하, 사실대로 말했다? 하하.”
그래, 나 막걸리 마시고 아저씨 냄새난다! 됐지?
이수는 하마터면 인정하며 소리칠 뻔했다. 하지만 자폭하는 길을 택하는 대신 이를 바드득 갈면서 비꼬듯 말했다.
“네, 네! 도련님! 아주, 대단히 잘나셨네요!”
김 집사가 말하던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그녀는 더욱 힘을 주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식사 끝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비아냥거림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그는 귀찮다는 듯 딱 잘라 상황을 혼자 종료해 버렸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주 온몸에 박혀 있는 듯하다.
“하, 하하!”
이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 정말 싫다! 싫어!
“이미 고소는 취하했어. 진행 중이던 다른 건도 모두 정리됐으니 더 이상 법적으로 얽힐 일은 없을 거야.”
“오, 고맙네요.”
냉정해야 했다. 하지만 생색을 내는 그의 말에 이수는 속이 뒤틀렸다. 지난 10여 년간 여성스럽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저씨 냄새까지 나게 살진 않았다. 연애는 안 했지만 좋다는 남자도 몇 있었다. 화장 한 번 안 했지만 환자들에게 인기도 제법 있었다. 귀엽다는 소리도 들어봤고, 다혈질 성격이 때론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동료들도 많았다.
그래, 나도 한 귀여움 했어! 또래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시간도 여력도 없었기 때문에 꾸미지 못했을 뿐이야. 그런데 어떻게 아저씨 냄새를 운운할 수 있어?
상처였다. 생각할수록 점점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이수는 그동안 자신의 삶까지 되돌아볼 정도로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오늘 일에 대한 수고비야. 넉넉히 넣었으니 부족하진 않을 거야.”
그가 주머니 안에서 봉투 두 장을 꺼내더니 그 중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쭉 밀어주었다. 확인하라는 듯이.
속전속결, 급한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니 넘치는 돈으로 확실히 계산을 해주겠다는 말인가 보다. 끓고 있는 냄비처럼 부글거리던 이수는 봉투를 보자 눈이 확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계약서야. 사인만 하면 돼. 원하는 만큼 금액도 당신이 적어 넣어.”
그가 또 대단한 걸 준다는 듯 다른 봉투를 내려놓았다. 이수는 이를 악물고 그가 내민 첫 번째 봉투부터 확인했다.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공이 일곱 개, 천만 원이다. 천만 원이면 이수가 자는 시간을 반납하고 야간병원 아르바이트를 1년은 해야 만질 수 있는 돈이다. 불과 몇 시간 희생한 대가치곤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수는 이를 악물면서 두 번째 봉투를 열어봤다. 고용 계약서였다.
“이게 뭐예요?”
읽어 내려가던 이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에 대해 알아봤더니 다음 주부터 읍내의 종합병원에 출근 예정이더군.”
“자, 잠깐만요! 그 말은 지금 내 뒷조사를 했다는 거예요?”
이 남자, 점점 더 가관이다. 이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최고 대학에 성적도 좋고,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도 고향으로 돌아와 내과의가 될 예정. 실력이 상위 1프로는 못 돼도 그 정도면 우수한 편이고, 전공은 아니지만 소아병동에서도 인기가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더군.”
그는 변명은커녕 자랑스럽게 그녀의 이력을 읊었다. 지금껏 그녀가 자부심을 느끼며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것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말투로 박살내고 있었다.
“이, 이봐요! 지금 당신…….”
점점 극에 달한 이수는 말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당신을 우리 윤이 새로운 주치의로 고용하고 싶어.”
“하, 하하.”
또다시 그녀의 말을 자르면서 자신의 말만 하는 그를 보며 이수는 어이없게 웃었다. 너무 화가 나는데 자꾸만 웃음이 먼저 나왔다.
“24시간 윤이 곁에 있으면서 보살펴주면 돼. 오늘 같은 일이 생겼을 경우 의사를 기다리는 일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아. 원하는 조건은 전부 들어주지.”
“보모를 잘랐다더니, 저보고 지금 보모를 하라는 거예요?”
“새로운 보모는 알아보고 있어. 다음 주면 고용할 수 있을 거야.”
“하, 그러니까 순수하게 윤이 건강 체크만 하면 된다? 와, 돈 벌기 정말 쉽네. 하루에 백 명 넘게 환자를 봐야 할 때도 있었는데, 겨우 어린 환자 한 사람만 보면서 놀아도 내가 원하는 돈은 다 준다는 거잖아요? 맞죠? 하하.”
이수는 손에 들린 계약서를 보면서 또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곧 싸늘해진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내 기억엔 당신 날 여기로 끌고 오면서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준다고 한 것 같은데. 그거 기억해요?”
“다른 원하는 것이 있나?”
그녀의 삐딱한 태도에 그가 냉랭한 얼굴로 물었다.
“있다면요?”
이수는 더욱 삐딱하게 바라봤다.
“말해. 내 입으로 한 말은 지켜.”
“오, 대단하신 분이구나! 그런데 어쩐다? 난 이런 돈보다 더 받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이 과연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수는 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면서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활짝 웃었다. 의도적으로 그를 놀리려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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