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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97453023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2-02-10
책 소개
목차
시작하며… _7
1940~1960년대 스포츠는 눈물이자 희망이다
해방 후부터 60년대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작 _15
통증과 함성 속에 고유명사가 된 김일 _22
인생과 역사, 마라톤의 승자 마라토너 이창훈 _28
백인천 일본 프로야구 진출, 한국 스포츠 해외 수출의 원조 _34
김기수, 국가 주도 경제의 스포츠 버전 _40
선진국 필리핀, 가난한 한국에 체육관을 선물하다 _46
1966년과 2002년, 실미도 축구팀 양지를 아십니까? _52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축구 대회를 만들다-박스컵 _58
스포츠 저널리즘의 시작, 일간스포츠 창간 _66
1970년대 스포츠는 감동이다
1970년 아시안게임 개최 반납,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_71
남북 대치에 너덜너덜해진 스포츠 정신, ‘져주기 게임’ _77
한국 여성의 힘과 여자 탁구 세계 제패 _83
복싱 신인왕전,<슈퍼스타K>의 권투 버전에 국민이 열광하다 _89
진정한 무적함대, 여자배구 미도파 _95
홍수환, 스포테이너의 탄생 _101
남자들도 못 한 일, 한국 낭자들의 선전, 1976년·1984년 올림픽 _107
영원한 천하장사 김성률, 씨름판을 통일하다 _113
남자농구 이동균 스포츠 파동, 삼성vs현대 재벌 간 경쟁체제 돌입 _119
1980년대 스포츠는 즐거움이다
광주와 야구, 그리고 선동렬 _127
1980년 아시안컵 축구 4강전, 남북 축구 대결사의 결정적 순간 _133
80년대 최고의 수출 상품 차범근, 세계 최고의 리그를 평정하다 _139
‘쎄울’ 5공의 첫 업적, 올림픽이 유치되다 _145
고교 야구의 마지막 전성기, 선린상고의 불운 _151
‘1982년 프로야구 개막’ 3S 정책이 꽃피우다 _157
컬러TV의 등장과 천하장사 이만기 _163
헝그리복서여서 더 슬펐던 김득구의 죽음 _169
목포의 눈물. 부산갈매기 노래 속 지역감정 골은 깊어만 간다 _175
정의사회 구현, 항의하는 야구 감독 구속 _181
국기 태권도에도 배어든 분단의 흔적 _187
80년대, 스포츠광 대통령을 두다 _193
1988년 올림픽 개최, 독재개발시대 최대의 활황을 맞이하다 _198
팔 빠지게 공을 던졌던 최동원을 추억한다 _204
1990년대 스포츠는 위로다
남북 화해의 상징. 코리아팀 결성 _213
‘오빠부대’의 탄생, 농구 열풍을 이끌다 _219
한국야구의 전환점 메이저리거 박찬호 _225
LPGA를 제패한 ‘요술공주’ 박세리, IMF 시대의 아이콘 되다 _231
프로야구 해태의 9번째 우승과 KIA의 V10사이 _238
IMF 경제 위기와 허재의 불꽃 투혼 _244
2000년 이후 스포츠는 미래다
‘오 필승 코리아!’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와 히딩크 감독 _253
이종격투기 열풍, 왜 천하장사와 세계챔피언은 한국을 떠났을까? _260
칸첸중가에는 올랐나? 오은선 파문, 상업 등반의 명과 암 _266
여자 핸드볼, ‘우·생·순’ 신화는 눈물에서 싹텄다 _272
IT붐과 e스포츠, 그리고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등장 _278
F1(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의 개최,
국민 소득에 걸맞은 스포츠의 탄생인가? _285
김연아의 금빛 점프, ‘퀀텀점프’로 이어지다 _292
이영하의 좌절부터 김연아의 환희까지, 한국 동계스포츠 _299
조오련, 최윤희, 그리고 박태환. 서말구, 장재근 그리고……. _305
‘베이스볼 키즈’ 세대의 등장, 그리고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9구단 창단 _311
베팅한 대로 뛴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스캔들 _318
사라진 성동원두, 동대문의 추억 _324
마치며… _330
1940~199
부록 스포츠와 대한민국의 역사 _333
리뷰
책속에서
“먹는 것, 입는 것 다 좋아졌으니 운동선수가 운동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굶주렸던 조선의 청년은 대한만국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지만 여전히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거나 역기를 들어 올리는 역도에서, 혹은 죽을힘을 다해 치고받는 권투에서 빼어난 성과를 냈다. 미는 뒷전이었고 힘이 앞섰다. 투박하지만 그들의 팔뚝은 불뚝거렸고 낡은 유니폼은 땀에 절었다. 빛바랜 사진 속 울고 웃는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이지 할아버지였다.
해방 후부터 60년대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의 시작 중에서-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은 고유명사다. 그를 떠올리면 변변찮은 스포츠 중계가 없던 60~70년대 서민들의 체육관 안, TV속 함성이 연결된다. ‘땡땡땡’으로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원, 투, 쓰리’로 이어지는 경기 캐스터의 숨 가쁜 경기 중계도 귓가를 맴돈다……하지만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야구, 농구 등 각종 스포츠로 볼 것이 많아지고 약물로 근육을 빵빵하게 키운 WWF 등 미국 프로레슬링의 시대에 단색 경기복만을 입은 배 나온 아저씨들의 아날로그식 프로레슬링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고백은 여전히 레슬러들의 발목을 잡았다……화끈한 박치기의 추억을 남기고 반칙이 특기인 일본 선수들은 박치기와 코브라 트위스트, 풍차돌리기 등으로 혼내주던 김일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쾌감을 넘어선 승리감마저 느꼈다. 그가 떠난 날 환호와 추억은 사라졌다. 프로레슬링의 한 페이지이자 한 세기도 끝이 났다.
통증과 함성 속에 고유명사가 된 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