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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7471751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5-07-01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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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게 인생이라지만, 나는 그 시절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을 걸었던 것 같다. 빛을 따라 쫓아가면, 어느새 어둠이 형체를 녹여 버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 어둠 속에서 뒤돌아보면 절망뿐이었다. 내가 걷는 길이 어둠 속 혼돈의 길이라도 가는 게 인생이다. 나는 어두운 길을 너무 열심히 걸어서, 어느 길을 얼마만큼 걸었는지조차 기억해 낼 수가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붉디붉은 달뿐이었다.
정말 내가 아는 거라곤 녀석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과 여자를 엄청 밝힌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녀석이 좋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운전밖에 없는 나를, 놈은 왜 그런지 우리 부대에서 제일 좋아해 주었다. 사령부라는 특성 때문에 돈 많고 괜찮은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녀석은 항상 나와만 다니고 내 돈을 쓰고 자기 돈을 나한테 나누어 주었다.
허름한 시골집 좁은 방 안에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잠들어 있다. 한 여인이 사내아이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고 있다. 여인은 사내아이의 손을 이불 속에 밀어 넣고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사내아이는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열었다. 한 여인이 저 멀리 달빛을 향해 사라지고 있었다. 사내아이는 사라지는 그 여인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내어 울어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버스는 얼마간 곧게 난 도로를 쉬지 않고 달렸다. 버스란 한 번 올라타면 내릴 때까지는 기사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야만 한다. 인기와 함께 다니면서 상호는 가끔씩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후회 섞인 한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한 번 선택한 길이기에 끝까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말이 좋든 나쁘든 간에.
그녀의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과 맑은 음성, 그리고 그녀의 희고 긴 손가락이 건반을 쓰다듬을 때, 울려 나오는 소리는 마치 상호의 영혼을 몸 바깥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다 한가운데에 빠진 것처럼 상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댔다. 그러다가 이내 음악이 만들어 내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곧 흐르는 선율과 하나가 되어 깊고 깊은 바다의 신비를 맛보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움을 모른다. 막연히 멀고 먼 곳에서부터 굽이쳐 오는 강물이나, 땅거미로 파랗게 물든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그런 게 아름답다고 말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지금 여기 보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아파 오는 것. 내 가슴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는 것. 이것이 아름다움인 줄 이제야 알았다.
녀석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난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악어는 수족관에서만 기르는 게 아니다. 가끔은 악어에게도 더 넓은 습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게 돌아오리라. 따뜻한 잠자리와 기름진 음식은 아무 데나 있는 게 아니다. 습지에서 몸이 썩어 가는 고통을 느끼면 돌아오리라. 비열함보다 더 무서운 건 고생이다. 약간은 심통이 난 듯, 못 이기는 체하며 돌아오기를 바란다. 악어야.
지금이라도 문 밖에 나가면 되찾을 수 있지만, 인기에게는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어려서는 자신을 두고 떠나간 엄마를 따라 나설 줄 몰랐었고, 지금은 일어날 힘이 없어서 따라갈 수 없었다. 저 문 밖을 나설 때에는 분명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은혜는 더욱 상실감에 휩싸여 아파하겠지. 가엾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