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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8047450
· 쪽수 : 110쪽
책 소개
목차
제 1 부
풀이 마르는 소리
황사바람
퇴학당한 학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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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고속도로로 갈 수 없는 들판에 질주하는 고요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등불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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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사람의 바다
불꽃 비단벌레
삽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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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부
푸른 산에서 고서를 읽다
여름술잔
그릇의 형상을 얻은 대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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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구정 연휴 첫날 일어나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찾아갈 사람을 다 지운 길 위에
바퀴 자국을 남기고
교문을 들어와 닫힌 철제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에 들어섰다.
책 더미 속에 나무 구멍처럼
나의 자리를 차지하니
마치 고목나무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겨우살이 하는 벌레와 같았다.
어디로부터도 오지 않은 발걸음 소리들,
하루 종일 말소리를 전하지 않는
전화기 그리고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도시락을 비우고
천천히 찬 물을 마셨다.
창 밖에 쌓인 눈더미를 바라보며
멈출 줄 모르는 음악도 쉬게 하고
작은 글자들을 따라가
머나먼 산간 계곡의
싱그러운 바람 소리를 들었다.
돌 건물 한 모퉁이에서
모래알이 부스러지고
가끔 書冊에서 고개를 내민 글자들이
丁丁한 겨울나무 속의
벌레처럼 꿈틀거릴 때
딱딱한 부리가 가슴을 쳤다.
햇살 푸르게 되살아나는
구정 연휴 첫날,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흰 눈 머리에 함께 쓴 白雪과 道峰이
서로를 비추며 빙긋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등불과 꽃
---아내에게
모래알 하나도 외로움이 깊으면
투명한 등불이 된다
눈물방울 하나도 그리움을 다하면
꽃이 된다
모래알 아린 눈물샘
산 위에서 세상으로 흘러넘치고
등불을 지우고 꽃을 피우는 아침
가슴 아픈 인간이 산다
노인과 수평선
가물거리는 수평선을 무릎 아래 두고
저물녘 개를 끌고 가는
노인의 구부정한 실루엣은
전생의 주인을 모시고 가는 충직한
하인처럼 공손하다
다음 생에서 개는 주인이 되고 노인은
개가 되어 서로의 실루엣을 끌고
한 생애를 살아갈 것이다. 먼 바다에서
새벽을 열려고 달여 온 파도가
하얀 해안선을 잡아당겨
불덩이 머금은 어둠을 멀리 날려 보낸다
먹이를 찾아 새벽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모래사장에서 개와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도
한 생애의 바퀴를 굴리고 나면
언젠가 다시 저물녘
가물거리는 수평선을 그의 무릎 아래 두고
구부정한 실루엣과 더불어
검은 태양을 끌고 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