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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8328870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14-12-25
책 소개
목차
1권
00. 이상한 나라의 병아리
01. 병아리와 유령
02. 병아리와 친절한 살인자
후기
2권
03.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병아리
04. 병아리와 춤추는 피에로
05. 대마법사 병아리
후기
3권
05. 대마법사 병아리(2)
06. 요리하는 병아리
외전. 어느 봄날의 병아리
후기
4권
08. 번뇌하는 병아리
09. 폭풍 속의 병아리
10. 병아리의 외출
후기
5권
10. 병아리의 외출 : 가을
11. 병아리의 외출 : 봄
12. 연애하는 병아리
13. 병아리 사랑
Epiloge. 병아리 웨딩
외전. 병아리 우는 소리
외전2. 병아리떼 쫑쫑쫑
후기
리뷰
책속에서
“너 빨리 대답 안 해?”
아킨토스가 버럭 소리칠 때마다 사람들이 우릴 돌아봤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런 아킨토스를 모르는 척했다. 쪽팔려. 그냥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다녀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데 아킨토스가 다시 날 불렀다.
“야!”
“아, 진짜! 뭐! 뭐!”
내가 휙 돌아 소리치자 아킨토스가 순간 주위를 살피더니 내 팔목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날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 마치 대의를 도모하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진짜 그 새끼랑 무슨 사이야? 아니지? 빨리 아니라고 해!”
“이게 진짜……. 야, 너 자꾸 왜 소리를 질러? 내가 뭐 그 새끼랑 무슨 사이면 네가 어쩔 건데!”
“안 돼, 그 미친놈은 안 돼!”
아킨토스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형이나 아이리스도 심하긴 했지만 아킨토스는 유독 심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난 그 새끼 싫어! 그놈이 옛날에 형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그러고 보니 가을이가 형한테 몹쓸 짓을 하긴 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를 찔렀다고 했으니 많이 위험했을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진짜야?”
“그래.”
내 말에 아킨토스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봤다. 내가 뭐,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고. 난 꿀릴 거 하나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어?”
“무슨 일?”
그때 아킨토스가 뜬금없이 말했다. 갑자기 일은 무슨 일? 내가 고개를 갸웃 하자 아킨토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왜……. 소, 손잡은 적 있냐?”
“…….”
아킨토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손잡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얼굴까지 벌게져서 저렇게 말을 더듬는지 모르겠다. 나는 멀거니 아킨토스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손잡은 적 있냐고?”
“그래, 손!”
손만 잡은 게 아니라 다른 것도 했는데……. 태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사막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다시 기분이 심란해졌다. 나는 내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벽에 머리를 쿵 박았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킨토스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야! 너 손 잡았지!”
나는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다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손을 꽉 붙잡고 말했다.
“손잡는 게 왜? 지금 우리도 잡고 있잖아.”
“그 새끼랑 넌 남이잖아!”
“그럼 우린 뭐…….”
남 아니냐? 그렇게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을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아킨토스가 말을 이었다.
“나랑 그 새끼가 같냐? 이게 어디서 외간 남자 손을 덥석덥석 잡고 난리야!”
- 4권
뛰어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웠을 뿐이지 막상 장애물을 넘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삽질을 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뭐?”
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냥 인정하면 이렇게 편할 걸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나는 조금 전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가을이랑 사귀기로 했어.”
“…….”
“나도 지금 완전 어이없어서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좀 말지?”
요즘 들어 형이 당황하는 걸 참 많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무슨 괴물을 보듯 날 쳐다보다가 들고 있던 종이를 떨어뜨렸다. 내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종이를 재빠르게 잡자 형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
“아, 진짜! 야! 너 귓구멍 막혔냐! 사귄다고! 좋아한다고! 결혼할 거야!”
내가 빽 소리치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형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결혼?”
사귀자마자 결혼한다는 얘길 들었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가을이와 결혼해야겠다는 의지가 너무 확고했다. 왜냐면 난 강가을 말고 다른 남자랑은 사귈 생각이 개미 오줌만큼도 없었으니까.
“걘 내가 지구에 있을 때 남자였다고 말을 했는데도 날 좋아한다고 했어.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그리고 그건 그렇다 쳐도 다른 남자는 내가 싫어.”
“…….”
“아, 너도 내가 남자랑 살림 차리는 건 싫을 거 아니야! 나도 그런 건 싫다고!”
내 말에 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굳이 걔가 아니더라도 난 지금 여자니까 언젠가는 결혼을 할 거 아니야. 평생 독신으로 산다고 해도 나한테 결혼하자고, 사귀자고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겠어!”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난 정말 예뻤다. 이런 원피스가 아니라 거적때기를 둘러도, 자다 막 일어난 부스스한 꼴도, 씻지 않아서 머리가 떡이 져도, 돼지처럼 허겁지겁 밥을 퍼먹어도 귀엽고 예쁘기만 했다.
“강가을까지는 타협할 수 있어. 근데 내가 다른 사람은 안 돼. 내 인생의 남자는 걔 하나로 충분해.”
강가을이 아닌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근데 강가을은 괜찮았다. 내가 걔한테 죽고 못 살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이건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이었다.
“난 걔랑 결혼할 거야.”
“……결국 이런 상황이 오네.”
단호하게 말하는 날 보며 형이 피곤하다는 듯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그러니까 형도 이제 가을이랑 싸우지 마. 야, 솔직히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봐. 걔 돈 완전 많아. 돈도 많고 집도 많고 힘도 세고, 머리는 또 좀 좋아? 이건 내가 완전 땡 잡은 거라니까?”
여기서 밀어붙여야 된다는 생각에 나는 주절주절 혼자 떠들었다. 내가 가을이랑 결혼하게 되면 싫어도 계속 볼 사인데, 형이랑 가을이가 지금처럼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형이 날 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꽃뱀이냐?”
“꽃뱀이든 뭐든 어쨌든 걔가 잘난 건 사실이잖아.”
형은 계속 한숨만 내쉴 뿐 그 뒤로 더 이상 딱히 말을 하지 않았다.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던 형이 다시 안경을 쓰며 내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나는 볼에 잔뜩 바람을 넣고 형에게 다가가며 웅얼거렸다.
“난 형이 걔랑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친하게 지내고 나발이고, 너 지금 몇 살이야?”
“열일곱. 근데 지구에 있을 땐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조금만 지나면 나도 성인…….”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이 머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양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더니 뭔가 결정한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좋다니까 그냥 내버려두긴 할 건데, 당장 결혼은 안 돼.”
진지하게 말하는 형을 보며 나도 더 이상 떼를 쓸 순 없었다.
“그건 나도 알아. 당장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할 거라고 말하는 건데…….”
변명하듯 말하는 날 보며 형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요 잠깐 사이 한숨을 몇 번이나 쉰 건지 모르겠다. 형은 들고 있던 깃 펜을 책상 위에 놓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물었다.
“넌 그 새끼가 그렇게 좋냐?”
내가 빨개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자 형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얼씨구 하며 웃었다.
자꾸만 얼굴 쪽으로 열이 몰려서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 5권
형이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 새끼가 널 왜 찾아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는 형을 보며 나도 거기에 공감했다. 나도 모르겠다.
걔가 도대체 날 왜 찾아오는 거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말했다.
“가을이 동생 이름도 겨울이래. 근데 동생이 결혼을 너무 빨리 해서 어렸을 때부터 나가서 살았다고 하던데……. 날 자기 동생으로 생각하거나, 뭐 그런 거 아니야? 저번에 그렇게 말하기는 하던데……. 아, 그리고 내가 오므라이스를 해줬는데 걔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대. 아마 내 요리 실력에 반한 게 틀림없어.”
잘하는 건 요리하는 것밖에 없는 나로서 그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다. 지구에 있을 땐 형도 그렇고 가을이 형도 그렇고 맛있다고 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뿌듯한 얼굴로 혼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형이 다시 물었다.
“몇 번이나 해줬는데?”
“몰라? 근데 좀 많이 해줬어. 거의 만날 때마다 해줬으니까……. 근데 걔도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았나 봐. 그냥 감자 쪄서 설탕만 뿌려줬는데 그것도 환장을 하고 먹는데, 그거 보면서 마음이 좀…….”
“만날 때마다?”
“몰랐으면 괜찮은데 그 새끼가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안자고 그런다는 거 알고 나니까 좀 안쓰러워. 오늘 낮에는 내가 좀 고마운 것도 있고 해서 걔한테 해달라는 거 다 해준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감자 샐러드랑 오믈렛이랑 오므라이스랑 뭐 그런 걸 해줬어. 근데 솔직히 내가 구첩반상을 차려준 것도 아니고 그냥 하기 엄청 쉬운 거 해줬는데도 너무 감동을 받아 하는 거야. 막 결혼하자고 그러고 그러는 거 보니까 내 생각에는 걘 지금 사람의 정이 그리운 것 같…….”
낮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하느라 형의 표정이 변하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말을 끝마치면서 고개를 퍼뜩 드는데 형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결혼?”
“아니,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걘 지금 좀 외로운 거 같다는 뭐 그런 얘기였는데……. 호, 혼자 오래 살다보면 집 밥도 그립고, 사람도 그립고 뭐 그렇잖아. 우리 담임이 기러기 아빠였거든? 그래서 가끔 수업할 때 그런 얘기 해주고 그랬는데…….”
나는 힐끗 힐끗 눈치를 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데 형이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입을 열었다.
“병아리.”
“어, 어?”
“너 만약 누가 너한테 사귀자고 하면 어쩔 거야? 여자 말고 남자가.”
그 말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나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거시기를 분질러 버려야지!”
“…….”
내 단호한 말에 형이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아무튼 네 방에 결계 새로 칠 때까지 여기에 있어. 한 번만 더 네 방에 멋대로 쳐들어오면 거시기 분질러 버리고.”
“어?”
“불쌍한 새끼.”
형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혀를 쯧쯧쯧 찼다. 순간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형을 보고 있는데 형이 아 하고 덧붙였다.
“분지르지 말고 그냥 발로 차.”
-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