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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사/불교철학
· ISBN : 9788998742607
· 쪽수 : 438쪽
· 출판일 : 2016-03-1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장 붓다프로젝트의 시작
인생반조와 세계반조
부부는 소울 메이트다-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의 전생
2장 이 사람을 보라!
싯다르타의 탄생-보디삿따의 하강
잠부나무 아래서 고뇌하는 소년
남을 해치지 말라-싯다르타의 눈뜸
열반은 허무주의인가, 현실로 체험하는 경지인가?
싯다르타는 어떻게 선정에 들었는가?-호흡 알아차리기 수행
암탉은 달걀이 또 다른 달걀을 만드는 수단이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살 길을 찾아라!
싯다르타가 설국열차를 타면 어떻게 될까?
행복한 몸에 행복한 정신이 깃드는 법-수자따의 공양
싯다르타의 마지막 유혹
오, 집짓는 자여, 그대가 보였다-싯다르타의 깨달음
성도 후 49일-연기게송
법을 설하옵소서!-하느님의 부탁
3장 세상이 불타고 있다
싯다르타는 매트릭스를 어떻게 해체할까?
귀 있는 자 들어라-초전법륜경과 무아상경
야사여, 잔치는 끝났다-길을 찾아라!
쾌락을 완전히 만족시킨다는 것이 가능한가?
가라, 세상 속으로-전도선언
세상이 불타고 있다-산상설법
4장 고통의 세계에서 함께 벗어나자
최초의 절 죽림정사
오라, 비구여!-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귀의
고결한 출가자여, 은처승은 부처님 몸을 파먹는 벌레다!
마하깟사빠의 출가인연
영웅의 귀환-야소다라와의 재회
호수로 돌아온 백조-양들의 침묵을 깨우다
난다의 출가-제 이마의 화장이 마르기 전에 돌아오세요
고락등가苦樂等價 법칙-괴로운 만큼 즐겁고, 즐거운 만큼 괴롭다
부처님의 유산상속-라훌라의 출가
내 법은 바다와 같다-우빨리의 출가
잠자지 않은 눈-아누룻다
아누룻다의 50년 장좌불와
영원한 보시-수닷따 장자
기원정사의 건립
5장 진리가 그대를 치유하리라
왕에게 주는 조언-꼬살라 국왕에게
바른 식사正飮에 대한 가르침
진리대로 되라고 기도하라
꽃잎은 찬란해도 지고야 마는 것-숫도다나왕의 임종
비구니 승가의 탄생
미모로 한몫 보려 하지 말라-케마왕비
악기를 연주하듯 수행하라-소나꼴리위사 비구
부부는 서로에게 무문관이다-노부부의 인연
몸은 아파도 마음은 아프지 않다
6장 이웃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니
로히니 강의 물싸움
싯다르타와 체게바라는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을까?
부처님의 반전시위-사꺄족의 멸망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꼬삼비 승가의 불화
승가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법
깨달은 사람은 가르침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복 짓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행복과 파멸의 문-천신에게 하신 설법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끼사고따미의 경우
7장 절대반지를 거부하라
아난다의 갸륵한 섬김
진리의 어머니 위사카-우먼파워의 보시
고요한 사자후-아란야행자 사리뿟따
살인자도 깨달을 수 있다-앙굴리말라
제자야,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니디와 쭐라빤타까
데와닷따의 반역
절대권력자의 참회-아자따삿뚜의 경우
붓다는 왜 반지의 제왕이 되기를 거부했는가?
8장 붓다의 마지막 여로
피안을 향하여 마지막 빚을 갚다-사리뿟따의 죽음
좋은 정치는 어떤 것인가?-왓지연맹의 경우
무상한 세월의 힘에도 파괴되지 않는 보물은?-암바빨리의 진심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웨살리성
자신의 전부를 다 주시고 가신 임-쭌다의 공양
두 그루 살라 나무 아래서-법을 보는 것이 진정한 공양이다
아난다여, 너와 함께 하여 행복했노라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마지막 제자 수밧다
무엇이든 물어라-붓다의 마지막 말씀
부처님, 불 들어갑니다!
9장 세계해탈을 향해
승가의 반석을 놓다-칠엽굴 결집
아난다 존자의 경행
여시아문-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세계불교의 소통과 실용주의적 접근-일미법을 향하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설국열차Snowpiercer’는 윤회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고정된 무한궤도를 끝없이 맴도는 열차를 타고 있는 우리들. 열차를 움직이는 엔진은 무엇인가? 윤회를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맹목적 생존의지와 보호본능, 군집본능과 권력의지이다. 설국열차의 설계자이며 기관사인 윌포드Wilford도 철판으로 밀폐된 직육면체의 ‘설국열차’란 공간에 갇힌 한낱 승객에 지나지 않는다. 꼬리 칸Tail Section에 탄 사람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도 열차란 좁은 공간에 갇힌 죄수일 뿐. 열차를 타고 있는 그 누구도 열차를 세울 수 없고 진로를 통제할 수 없다.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반란과 권력투쟁, 교육과 문화, 진보와 복지조차도 ‘열차’란 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일 뿐이다. 열차 안에서 생존하는 일상인의 차원을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자에겐 열차의 엔진을 장악하여 권력을 탈취하는 일과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일, 이 두 가지의 선택 앞에 놓인다. (……) ‘출세하라, 높은 자리에 오르라. 을乙을 짓밟는 갑甲이 되라. 성공해라. 경쟁에서 이겨라’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당신은 권력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조심하라. 당신은 윌포드의 하수인으로 전락해서 양심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열차를 움직이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당신은 가슴 속의 다섯 살 동심을 희생시키고 말 것이다. 양심을 저버린 당신은 윌포드가 준 구두를 신게 된다. 윌포드의 하수인 총리 역을 맡은 메이슨Mason은 이렇게 말한다.
“구두가 발에 있지 않고 머리에 있으면 정상일까? 당연히 아니다. 자기의 위치, 역할을 지키는 게 여러분의 사명이다.”
(……) 과연 누가 윤회가 고통이라는 통찰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에는 보안장치 설계 담당자인 ‘남궁민수’가 등장한다. 그는 열차 밖으로 나가는 방법과 열차 밖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는 붓다의 지혜의 등불法燈을 계승받은 전법자임이 틀림이 없다. 왜냐? 세계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모두 열차 안의 일이요, 열차 안에서 안주하라고 가르치는 메시지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모든 철학,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의 천국이나 힌두이즘의 삼매경과 도교의 우화등선羽化登仙 무위자연無爲自然도 모두 열차 안의 경지요, 윌포드와 길리엄Gilliam의 변형이다. 열차 밖으로 나간다는 상상은 위험하다. 그것은 기존 체제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체제 유지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남궁민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깐 이젠 벽Wall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은 저것도 문Gate이란 말이야!’
(……) 윤회가 끝난 경지를 열반이라 한다. 그것은 생명이 죽어버린 빙하기가 아니다. 지극한 평화, 최고의 행복summum bonum, 청정한 기쁨santi sukha, 온화함soracca, 속박으로부터 안온함yoga-khema, 모든 슬픔의 화살을 뽑아버린 곳이다.
자, 불자들이여. 설국열차를 폭파시키자. (……) 윤회하는 세계를 벗어나자. 찬란한 소멸이여, 지극한 행복이어라. <싯다르타가 설국열차를 타면 어떻게 될까?>
‘아, 세간의 모든 중생이 생존경쟁을 하면서 서로를 해하고 다투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서 이러한 모든 괴로움을 해결할 방도를 생각해야겠다.’
열세 살 소년 싯다르타는 이런 고민에 빠진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타고난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으리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궁을 벗어나 농민들이 일하는 현장을 목격한 그는 왕족 신분으로 누리는 자기의 모든 안락과 편의가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서 나오는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내가 누리는 안락과 편안함이 타인의 수고와 희생에 의존하고 있었구나!
안락한 내 삶이 내가 잘나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타인의 수고와 희생에 의존하는 왕궁의 호사와 행복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백성의 노동과 희생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내가 힘들면 힘들었지, 내가 죽으면 죽었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나의 생존을 구하지 않으리라.’ (……) 시대가 바뀌고 체제가 변하여도 인간 사회는 부의 불평등,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한다. 사회 물정에 눈뜨는 청소년기는 사회 부조리와 정치경제 체제의 모순이 가슴을 찌르듯이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때는 반성적 자각이 눈뜨는 시기며, 부정과 반항이 싹트는 시기다. 이 시기는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이행하는 성장 과정이기에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겹친다. 싯다르타는 사회의 실상을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연을 관찰하는 예리한 눈이 깨어났다.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관했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잡아먹히는 자연의 질서에 가슴 애린 고통을 느꼈다. 이는 범상하지 않은 징조다. 보통 사람은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보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게 자연인 걸, 동물들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할 텐데 싯다르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
‘왜 생명들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가? 왜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어야만 하는가? 약한 놈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강자의 말로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하는가? 왜 ‘내’가 꼭 살아남아야 한단 말인가? ‘나’말고 다른 것, 다른 사람이 살아남으면 안 되는가? 먹거나 먹히거나, 살아남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하는 이런 긴장과 불안, 공포와 강박감을 넘어선 평화와 안심의 길은 없는가? 왜 약육강식으로만 생존이 가능하단 말인가? 생명이 서로 해하지 않고 공존하는 길은 없단 말인가?’
싯다르타는 냉혹하고 비정해 보이는 자연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잠부나무 아래서 고뇌하는 소년>
싯다르타는 열세 살 나이에 사회적 부조리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리고 약육강식이란 생명일반의 실존적 부조리를 자각한다. 싯다르타가 농경제 행사에 참관했을 때 농부가 뙤약볕 아래 힘겹게 쟁기질을 하는 광경을 보고, 자신이 누리는 안락과 호사가 백성의 노고와 희생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싯다르타는 너무나 미안하여 온몸이 떨려온다. (……) 먹이 사슬에 얽매인 삶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몫을 뺏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인간의 고통은 ‘먹은 죄’에서 온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다른 생명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슬픈 운명이다. 이런 세계를 일러 ‘욕계欲界kama-loka(욕망의 세계)’라 한다.
싯다르타는 약한 자, 낮은 자, 가난한 자의 처지에 서서 세상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생명 일반의 고통에 대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훗날 이 진실을 ‘고성제苦聖諦’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는 개인의 실존적인 고통이면서도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다. 이는 지상에 생존하는 생명 일반의 보편적인 고통이다. 욕계에 얽매인 중생은 고통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움직일수록 더 빠져든다.
싯다르타는 권력자로 태어났고, 권력을 사용하는 법을 다 배웠기 때문에 권력이 잘못 사용되면 어떤 고통을 가져오는지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을 해치지 말라. 남을 다치게 하지 말라. 남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 너의 몸짓 하나, 너의 말 한 마디, 너의 한 생각으로도 남을 해치지 말라. 생명을 죽이지 말라.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해치지 말고 죽이지 말라.’ 이것이 바로 ‘남을 해하지 말라,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상처를 주지 말라’는 불상해不傷害법이다. 나아가 남에게 두려움을 주는 몸짓이나 말이나 생각조차도 일으키지 말라. 남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면 차라리 네 생명을 던져라. 네가 죽어 타인을 살릴 수 있다면 네 생명을 내려놓으라. 나아가 모든 생명을 살려주어라(방생放生). 죽게 된 상황에 빠진 생명을 구해주어라. 사람을 널리 이익 되게 하라. 생명에게 이익을 베풀어라. <남을 해치지 말라-싯다르타의 눈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