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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앤 온리

원 앤 온리

(One and Only)

최예준 (지은이)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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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앤 온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원 앤 온리 (One and Only)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07944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6-05-30

책 소개

최예준 장편소설. 사랑하는 연인과 믿었던 친한 언니, 두 사람이 자신을 배신했음을 알게 된 소연. 제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밀회를 즐기는 두 사람의 뻔뻔함에 소연은 치를 떨며 그들을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하는 남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2년 간 그녀를 지켜봤다고 말하는 준혁이었다.

목차

1. 저무는 시간
2. 소원
3. 따뜻한 조언
4. 뜻밖의 시간, 시작을 말하다
5. 모험을 하듯
6. 사랑한다는 말
7. 사랑 그리고 사랑
8. 그대를 확신하다
9. 가슴으로 하는 말
10. 너무나도 치명적인
11. 어두운 그림자
12. 꿈을 꾸듯 그렇게
13. 바다로 간 소금인형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최예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무명의 들풀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 어떤 아침에도 희망을 기대하는 사람. 출간작 : 캐스트온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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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 해가 저문다.
지나치게 바쁘게 살아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종무식을 끝낸 직원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해같이 환하다. 물론 그들의 얼굴 어디에서도 한 해가 저무는 데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정오가 되기 전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일이 휴일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될 뿐이다.
준혁은 유리벽 위에 드리워져 있던 블라인드를 활짝 걷었다. 전면이 통유리로 된 그의 방에선 기획 전략실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을 한 기획 전략실의 모습이 준혁의 눈엔 낯설기만 했다.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로 인해 활기를 잃지 않던 공간이다.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몇몇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끄러미 기획 전략실 안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책상 의자에 앉아 있던 소연과 마주쳤다.
소연이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백소연.
소연을 알게 된 건 2년 전 그녀가 기획 전략실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였다. 회사 내 통합부서인 기획 전략실이 신설되지 않았다면 지금껏도 그녀를 알지 못한 채 지냈을 것이다.
준혁은 납작한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띤 소연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퇴근 안 하세요?”
미소만큼이나 차분하고 다감한 목소리이다.
“해야죠.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어떻게 보낼 거예요?”
“동해에 가요.”
“아!”
준혁은 그제야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리석긴!’
소연과 그녀의 남자친구는 몇 안 되는 사내 커플 중 하나이다.
“실장님은 서울에 계실 건가요?”
“아쉽게도 내일 오전에 가족 모임이 있어요.”
“부러워요.”
“부러워요? 해돋이를 보러 동해까지 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닐 테고, 지금 날 놀리는 거죠?”
“아니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고생길 떠나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십 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된 기획 전략실 직원 중에서 소연은 첫인상이 특별하거나 강렬한 인물은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희박했던 그녀를 새로이 보게 된 건 2월에 있었던 체육대회를 겸한 MT에서였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신설부서인 데다 적잖은 인원이 근무하는 곳이다 보니 친밀함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2박 3일 간의 행사였다.
단체복으로 입은 아이보리 컬러의 맨투맨 티셔츠. 모두가 똑같이 입은 티셔츠는 기획 전략실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소연의 배꽃 같은 미소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줄다리기를 하며 환하게 미소 짓던 소연을 넋을 잃고 쳐다봤던 일을 준혁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느낌이 마치 맨발로 푸른 잔디밭을 걷고 있는 것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2박 3일 동안 서너 번의 프로그램에서 소연과 파트너가 됐고, 그렇게 그녀는 갑작스럽게 준혁에게 친근하고도 가까운 존재처럼 돼버렸다.
“돋는 해를 보면서 무슨 소원을 빌 거예요?”
“차 안에서 생각해 보려고요.”
“생각나면 내 소원도 빌어줄래요?”
준혁은 실없는 소리를 해대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소원을 빌어드리면 좋을까요?”
“흠…….”
“차에서 생각해 보겠다는 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 아시겠죠?”
“후후…….”
“새해엔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라고 빌어드릴게요.”
“모호한데요.”
“좋아요, 그럼 새해엔 올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늘어나고, 실장님 옆에 아름다운 분이 함께하길 빌어드릴게요. 이 정도면 후하죠?”
그는 소연의 말이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와요.”
“실장님도 가족 모임 잘 하시고, 기쁜 새해 맞이하세요.”
“소연 씨도요.”
“내년에 뵙겠네요. 먼저 들어갈게요.”
“여행 잘 다녀와요.”
준혁은 미소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소연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었던 것처럼 또 다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원하느냐는 말을 물어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소연을 떠올리게 됐다는 사실을.
(중략)
돋는 해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동해에까지 가서 그 광경을 봐야 하는지, 그녀는 지금까지도 회의적이었다. 더욱이 오늘 같은 날, 고속도로가 어떨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점심은?”
회사 건물을 빠져나온 뒤 그가 소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소연은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가다가 간단하게 먹지.”
대답하는 대신 소연은 납작한 가방 안에서 두툼한 여행 에세이를 한 권 꺼냈다. 성진이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찡그렸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책장을 넘기며 소연이 물었다.
“이장(移葬)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월요일이라고 했잖아.”
귀찮은 목소리로 성진이 대답하는가 싶더니 짜증을 담아 그녀에게 되물었다.
“너는 왜 같은 질문을 그렇게 여러 번씩 하는 거야?”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가물가물해서 그랬어. 금요일에 내려간다고 했지?”
“후우!”
같은 말을 여러 번 물어보는 건 분명 짜증나는 일이다. 하지만 소연은 그가 짜증을 낼 정도로 자신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진이 짜증스러운 건 자신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을 사귄 남자친구는 소연이 어릴 적 친구만큼이나 가깝게 지낸 회사 선배 희정과 밀회를 즐기는 중이다. 최소한 여덟 달 이상이다. 그들의 밀애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5박 6일 일정으로 보라카이 여행을 간다는 희정과 조부모의 묘지의 이장과 선산의 대대적인 정비를 위해 닷새 동안이나 연차를 낸 성진에게 소연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여행 책은 왜 봐?”
“호기심의 충족쯤이라고 해둘게.”
“어디 여행기야?”
“호주, 캐다나, 뉴질랜드.”
성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를 생각해야지, 백소연.”
“서른이 많은 나이는 아니야.”
“해 바뀌면 서른한 살이야. 곧 있으면 노산 소리 들을 나이지.”
“그야 생각하기 나름이지.”
“하긴 유학생들 경험담이라도 읽으면서 상상을 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대리만족 말이야.”
소연은 그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쁜 놈.’
그의 배신을 알게 된 순간 소연이 경험한 건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수치심이었다.
하필 그 대상이 친언니처럼 가깝게 지내던 희정이라니.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소연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롯이 홀로 참담한 고통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숱하게 쏟은 끝에 말라 버린 눈물처럼 성진을 향해 퍼붓던 저주의 독설과 욕설도 한계에 다다랐다.
간사한 뱀처럼 꼬리를 감추는 성진을 그녀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아주 깨끗하게.
정확하게 입사 6주년이 되는 3월. 그녀는 사직서를 낼 생각이었다.
불만 없이 다닐 수 있던 직장을 그만두는 건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소름끼치는 두 마리의 뱀을 매일처럼 쳐다보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음흉하게 꼬리를 감추는 성진도 소름이 끼치지만 간교한 혀 놀림을 쉬지 않는 희정의 미소는 정말이지 섬뜩했다.
해가 바뀌면 서른한 살이 된다. 성진의 말처럼 적은 나이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리한 소연에겐 새 출발을 하기에 결코 늦지 않은 나이였다.
호주를 시작으로 캐나다와 뉴질랜드까지, 언니가 추천해 준 나라를 천천히 여행할 생각이었다. 6개월 정도면 나쁜 기억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정화가 될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취직을 하게 될지, 아니면 무모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될지는 그때 가서 결정을 내리면 됐다.
마음을 정리했지만 이따금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여전히 친한 언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 희정을 볼 때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배신감과는 별개의 회의가 밀려들었다. 인생을 이렇게밖에는 못 살았나 싶은 회의였다.
해돋이 여행을 제안한 사람은 성진이었다.

“31일에 동해에 가지 않을래?”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소연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왜?’
조부모님 묘지의 이장과 선산의 대대적인 정비라는 대담한 거짓말까지 동원해 가며 희정과의 여행을 계획한 성진이 자신에게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여덟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소연은 그에게 숱한 기회를 주었다.
지난 시간의 사랑에 대한 언급 따위는 없어도 됐다. 다만 현재가 이렇게 변했으니 그만 헤어지자는, 예의를 갖춘 말 한마디면 됐다. 소연의 마지막 기대는 그 한 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언니의 얼굴을 한 채 자신을 자극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은 희정처럼, 성진은 여전히 남자친구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변심(變心)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비참하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농락당하는 건 그 슬픔조차도 잊게 만들 만큼의 분노를 낳았다.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귀에 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에 눈 온대.”
“들었어.”
“사람이 얘기를 할 땐 얼굴을 쳐다봐야지.”
“책 읽고 있잖아.”
“모처럼 여행 가면서까지…….”
“설교는 됐어. 책 읽으면서 대답해 줄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소연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른한 살의 퇴직. 그리고 그 이후의 삶.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생각들을 하는 것만으로 그녀의 머릿속은 포화상태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반나절만의 퇴근.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 생각 중이던 준혁에게 누나 준희의 전화는 첫눈처럼 반가웠다.
“오랜만이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삼 남매의 약속 장소가 되어주던 레스토랑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무척 한가했다.
“빨리 왔네?”
선명한 비비드 컬러의 스웨터를 입은 준희가 동생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살이 더 빠진 거야?”
코트를 벗은 준혁이 나무라듯 누나에게 물었다.
“보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야. 애석하게도 살은 2킬로그램이나 더 쪘는데 말이지. 준혁아, 우리 자주 먹던 걸로 주문했는데 괜찮지?”
누나는 결혼을 한 지 1년이 되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지 누나는 결혼을 하고 난 뒤 줄곧 지금처럼 안쓰러운 얼굴이다. 얄미울 정도로 매형을 사랑하는 누나와 그에 못지않은 매형을 알기에 망정이지,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나야 좋지. 별일은 없어?”
“준혁아!”
깍지를 낀 손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준희가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의아한 눈으로 준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불행해 보이니?”
“그런 건 아닌데 얼굴이 늘 초조해 보이긴 해.”
“후후…….”
“왜 웃어?”
“엄마가 나더러 그러는 거야. 네 매형이 속 썩이면 언제든 집으로 오라고.”
“어머니가?”
“엄마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인 거지. 너도 엄마 성격 알지? 그런 얘기하기 전에 속병 끙끙 앓는 분이라는 거.”
“걱정이 돼서 그러셨겠지.”
“엄마가 나한테 안 가르쳐준 게 있어.”
“무슨 말이야?”
준혁은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세팅해 준 브로콜리 스프에 허브 솔트를 뿌려 누나의 앞에 놓아주었다.
“결혼을 하면 이런 아내가 돼야 한다, 이런 며느리가 돼야 하고, 이런 엄마가 돼야 한다, 정말 많은 얘길 해줬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작 진짜 중요한 얘길 안 해준 거야.”
“중요한 얘기?”
“결혼을 하고 나야 비로소 사랑이 두 사람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
“무슨 말이야?”
“결혼 전에는 뭘 해도 같이 했어.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차를 마셔도 같이 마시고. 내가 사귀던 남자는 그런 남자였어.”
“그런데?”
“나하고 결혼을 한 남자는 그렇지 않아. 내가 체해도 밥을 먹어.”
“뭐?”
준혁이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반대로 네 매형이 아파서 못 일어날 때 난 몰래 주방에서 가서 내가 먹을 점심 식사를 차리고 있어.”
“갑자기 서글퍼지는걸.”
“비단 그뿐이겠니? 전엔 내 표정이 조금만 이상해도 어디 아프냐고 묻던 사람이야. 그런데 지금은 오른쪽 어깨가 가려운데 왼쪽 어깨를 긁어줘.”
“하하……. 묻지도 않고?”
“피차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우릴 외롭게 하는 거야. 나만 외롭겠니? 난 네 매형 정말 사랑하거든. 네 매형도 그렇고. 그런데도 결혼은 별개야. 꼭 빈방 안에서 혼자 어른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기분이야.”
“매형하고 얘기해 봤어?”
“우리, 이런 얘기 자주 해.”
“다행이네.”
“선배들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거의 모두가 겪는 과정이래.”
“걱정하는 대신 누나가 하루 빨리 결혼 생활에 적응하길 바라야겠군.”
하나 둘 보기 좋게 장식된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송아지 스테이크 옆에 놓인 얄팍한 허브 잎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연을 떠올렸다. 회식을 겸해 직원들과 함께 이곳 레스토랑을 찾았던 날이었다.
찌든 피곤함을 시원하게 날려줄 것 같은 미소를 띠며 그녀가 말했었다.

“먹으라고 준 걸까요, 보라고 준 걸까요?”

소녀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보며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 미소는 널 위해 죽은 송아지에 대한 애도니?”
“먹을 걸 앞에 두고 애도하는 짓은 애당초 안 하지.”
그는 나이프로 스테이크의 귀퉁이를 잘랐다.
“올케 언니 얘기, 너도 알고 있지?”
올케라면 사촌인 준일 형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슨 얘기?”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 그러기야?”
준희는 동생이 자신에게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서도 다른 데다 층도 달라. 일주일에 한두 번 마주치기도 힘들어.”
그제야 준희가 그에게 물었다.
“남자 생겼다며?”
“남자?”
준혁이 입맛이 달아난 듯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놨다.
“사내 연애인 것 같다고 하던데, 정말 감감무소식인 거야?”
“사내 연애를 한다고?”
그가 대번 미간을 구겼다.
“죽은 사람만 안됐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봐.”
“어디서 들었어?”
“큰어머니가 엄마한테 물어보시더래.”
“……!”
큰어머니도 어머니도 괜한 입소문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눌 만한 분들이 아니다. 더욱이 5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촌 형 준일과 관계된 일이 아닌가. 신중함을 넘어 조심스럽기까지 한 얘기이다.
“자세히 얘기해 봐, 누나.”
그 못지않게 준희 역시 무척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남매였다. 어느 남매보다 우애가 돈독한.
“느낌이 이상하더래, 줄곧. 그래서 큰어머니가 준혜 언니를 시켜서 올케 언니한테 물어보라고 했나 봐. 넌지시.”
“그랬더니?”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그렇게 대답하더래.”
“누가, 형수가?”
“준혜 언니가 배신감이 너무 커서 대답도 안 나오더래.”
“한솔이는?”
“올케가 언제 애 키웠나, 큰어머니가 다 키우셨지. 독립해서 나간 건 알아?”
“뭐라고?”
처음 듣는 얘기에 준혁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넌 도대체 아는 게 뭐니? 올케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는 건 맞니? 니들, 대학 때부터 친구였잖아. 어떻게 아무 것도 모를 수가 있어?”
아들 한솔이의 두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사촌 형 준일은 하늘나라로 갔다.
새해 첫날 보름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서해대교 위에서 일어난 다중 추돌 사고가 원인이었다.
“사내 연애라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인지 안 물어봤대?”
“준혜 언니가 어떤 사람이야? 재빠르게 알아봤대.”
“어떤 남자야?”
“올케보다 두 살 아래인데 PB 지원팀에 근무하는 남자라고 하더라.”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PB 지원팀의 남자 직원 가운데 사촌 형수인 희정보다 두 살이 적은 남자는 한 사람뿐이었다.
정성진.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내려놨던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 팀에 그런 남자 없어.”
“정성진이라는 남자 없어?”
“……!”
정색을 하는 준희를 보며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정성진 씨라고 했어?”
“여자친구하고 사내 커플이었다며?”
소연은 남자친구인 성진과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누나 준희는 그 두 사람이 헤어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알고 있는 말투였다.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했대?”
준혁이 침착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1년 가까이 됐나 봐. 언니 말로는 지금 한참 불이 붙은 것 같대. 남자가 올케 오피스텔에 들락거리는가 보더라고.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리 누나이지만 소연과 성진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서울에 남는다는 자신에게 부럽다고 말하던 소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목소리가 진심처럼 들렸다.

“고생길 떠나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요.”

하늘은 뿌옇고 흐린데 눈은 내리지 않는다.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싶은 날씨이다.
성진이 숙소인 호텔에 차를 세우는 순간 소연은 새삼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안 내리고 뭐 해?”
소연은 나무람 섞인 그의 말에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릴 거야.”
회전문을 지나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가는 사이 성진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이제 도착했어요.”
알고 듣는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거짓말 같은 것이 있다.
억지스러운 존댓말과 그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표정 따위 말이다.
소연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희정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할 수 있었다.
“날씨가 썩 좋은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죠. 후후……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잖아요.”
데스크 직원 앞에 선 소연은 통화 중인 성진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다. 여전히 통화 중인 성진이 체크인 사인을 하려는 순간 소연이 직원에게 말했다.
“혹 트윈 베드로 변경 가능할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왜 그러냐는 듯 눈썹 끝을 치켜드는 성진을 그녀는 못 본 체했다.
얼마 되지 않아 자판을 두드리며 모니터를 확인하던 직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다행히 트윈 룸이 한 곳 있습니다. 다만 복도 끝인데 건물의 원형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룸이라 뷰(view)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별관 건물의 외벽입니다.”
“상관없어요. 그 방으로 할게요.”
그녀는 성진 대신 체크인 서류에 대략적인 기입을 하고 사인을 했다.
“서울에 가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애써 공적인 냄새를 풍기며 통화를 끝낸 성진이 룸 키를 받아드는 그녀에게 못마땅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몸이 좀 안 좋아.”
그녀는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무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부서 선배가 해돋이 잘 보고 오라고 전화한 거야.”
소연은 그의 변명을 담담한 말로 일축했다.
“따뜻한 부서네.”
엘리베이터가 17층에 도착하는 동안 두 사람은 더 이상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룸 안으로 들어선 소연은 납작한 백을 소파 위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스파에 다녀올 거야. 몸살 기운이 있어서.”
“소연아!”
소연은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성진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야, 뭐든 홀가분하게 훌훌 털어버리는 날이라고. 그렇게 무거운 얼굴 하지 말고 성진 씨도 스파에 가서 개운하게 땀 빼고 와.”
소연은 주춤거리는 그에게 일말의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상처?
미련?
그런 것들은 더는 소연의 가슴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배신을 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 가운데 하나는 소연 자신이 생각보다 강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슬픔이니 상처니 하는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소연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 주고 싶었다. 고작 그것밖에는 안 되는 두 인간들로 인해 힘겨워하는 데 시간을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싫다.
보드라운 일인용 마사지 베드에 누워 관리사에게 등을 맡긴 채 소연은 줄곧 같은 생각을 했다.
함께 해돋이를 볼 생각을 한 성진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희정과 밀애를 즐기면서 여전히 자신에게 한 손을 뻗고 있는 거라면 그는 정말 나쁜 놈이었다. 아니 천하에 둘도 없이 어리석은 놈이었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지나 겨우겨우 동해에 도착을 하고 난 뒤 함께 저녁을 먹고 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겠거니 생각했다. 시간이 남는다면 찜질방 비슷한 곳에서 해가 뜰 때까지 시간을 허비하겠거니 했다.
그런 예상을 깨고 성진이 예약을 해둔 호텔로 들어서는 순간 소연이 느낀 감정은 진한 배신감이었다.
성진의 편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여자인 것이다. 그 바보 같은 여자를 기롱하기 위해 호텔까지 예약한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등줄기를 어루만지는 관리사의 시원한 손길을 느끼며 소연은 베드 끝에 걸쳐진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 조차도 마음과 함께 움직인다는 걸 배신을 당하고 나서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우연하게라도 성진과 어깨가 부딪치는 일이 꺼려질 만큼 소연의 마음은 단호했다.
새로운 한 해의 다이어리에 계획 비슷한 것을 끼적이고 싶은 생각이 들자 성진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다.
그깟 해돋이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도움이 안 되는 짓만 골라서 하네.’
50분으로 정해진 마사지를 받고 난 뒤 소연은 라커박스를 열고 옷가지와 휴대폰을 꺼냈다. 푸른빛을 띠는 스파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를 살펴보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원이 변경됐어요.>

준혁이 보내온 메시지였다.
통합된 부서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2박 3일간의 팀 내 행사가 있던 무렵, 몇 차례 준혁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는 묻는, 태워다 줘서 고맙다고 대답하는 지극히 짧은 메시지였다.
소연은 자신을 향한 준혁의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다가온다거나 들이댄다거나 하는 일 없이 말 그대로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준혁에게 불쾌함 대신 고마움을 느끼곤 했다.
소연은 기억을 더듬었다. 준혁이 메시지를 보내온 건 근 1년 반 만의 일이다.
소연은 퇴근을 하기 전 사무실에서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1년 반 만에 보내온 사적인 메시지가 생뚱맞긴 하지만 퇴근 직전에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휴게실을 찾은 그녀는 준혁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바꾼 소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통화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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