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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안아줘

따뜻하게 안아줘

김선민(하니로) (지은이)
  |  
청어람
2016-08-24
  |  
9,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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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안아줘

책 정보

· 제목 : 따뜻하게 안아줘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09030
· 쪽수 : 416쪽

책 소개

김선민 장편소설.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결혼해야만 하는 여자, 결혼에는 생각 없지만 여자를 다시 만나고 관심이 생긴 남자. 결혼을 약속한 후 연애를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

목차

프롤로그
1화. 맞선 / 2화. 두 번째 맞선
3화. 그들의 사정 / 4화. 세 번째 만남
5화. 잘해주지 마요 / 6화. 그 밤
7화. 결혼식 / 8화. 데이트
9화. 선물 / 10화. 고백
11화. 꿈 / 12화. 따뜻하게 안아줘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김선민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하니로 [출간작] 따뜻하게 안아줘. 내가 그토록 너를. 내가 나빴다. 동화 스며들다. eternity. 요조신사. 연애시대. 하이라이트. 다시 결혼할까요? 재채기. 그녀가 나를 보고 웃네요. 한 걸음씩. 그대와 사랑을 거닐다. 따끔. 마음이 말랑말랑. 더러운 정 원장과 시월의 크리스마스. e-book 연애의 감격. 우리의 연애. 비로소 너와 나이기를. 밤의 멜로디. 손끝에 연애. 출간작 요조신사/연애시대/하이라이트/다시 결혼할까요/재채기/그녀가 나를 보고 웃네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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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기승언.
어젯밤, 오늘 맞선을 보게 될 상대방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게 된 마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기승언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기승언이 맞는 건가? 그 남자가 맞선을 본다고?
덕희를 통해 얻은 정보라곤 맞선 상대의 이름 석 자와 맞선 장소뿐이었다.
그렇다면,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그 기승언이 내가 생각하는 그 기승언인지 아닌지.
마리는 약속 시각보다 10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서두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두른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실은 30분 전에 도착해서 20분 동안 주차장에서 버티다가 나온 참이다.
토요일 오후 H호텔 커피숍 안은 맞선의 메카답게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은 마리는 같은 공간을 가득 메운 맞선 남녀들을 살펴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미 조건을 맞춰 보고 자리에 나온 남녀들.
좋은 느낌을 주고받는다면 머지않아 저들은 결혼식을 올릴 것이고, 조건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미련 없이 헤어질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결혼을 꿈꾼다. 결혼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유마리.”
테이블 가까이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던 찰나,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중저음 톤에 나긋나긋한 음성.
마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이야.”
기승언이었다. 마리가 생각했던 그 기승언이 맞았다.
“앉을게.”
그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십 년 전.
그사이 그는 완전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언제 봐도 참 잘생긴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전보다 이목구비가 한층 더 또렷해져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흔적처럼 남아 있던 쌍꺼풀은 그대로였고, 눈은 한층 더 깊어진 듯했다. 씨익 웃을 때 생기던 눈 밑 아래 인디언 보조개도 여전했고, 콧날과 턱선 역시 예나 지금이나 유려했다. 잘나고 잘난 그중에서도, 어딘가 개구져 보이는 살짝 올라간 입매와 얇은 입술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더해진 그 사람의 향기.
성숙한 어른의 향기라고 해야 하나. 섹시하고 관능적인 짙은 머스크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생글거리며 미소 짓고 있는 얼굴과는 무척이나 상반된 향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눈빛과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좀 쑥스러운데.”
능글거리는 것도 여전하네.
마리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랜만이에요.”
십 년 전, 승언은 스물한 살이었고 마리는 열아홉 살이었다. 승언의 막냇동생인 정언이 마리와 동네 친구 사이라서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눴던 사이.
그렇게 친구의 형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맞선 자리에서 마주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상대가 너라는 얘기 듣고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어. 넌 이런 거에 관심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마리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서로가 ‘이런 자리에 나올 줄 몰랐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많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 수 있다. 서로가 이런 자리에 나올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과,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말이다. 두 사람의 사이에 그의 동생이자 마리의 친구인 정언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접했던 서로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추측 가능한 것이었다.
마리의 입장에서 승언은 결혼 상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였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생판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 덜 부담되고, 덕희를 통해 들은 바로는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아니라 생활도 자유로운 편에 속했고, 형제간의 재산 전쟁도 없을 거라 했으니 속 썩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끼워 맞추기라도 한 듯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조건이 마리의 구미를 당겼다.
“차부터 주문할까?”
“전 애플티로 할게요.”
마리가 메뉴를 정하자 그가 살짝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애플티랑 아메리카노 주세요.”
직원이 자리를 떠나자, 그는 다시 마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 표정.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내재된 눈빛이 마리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봐요?”
“신기하잖아. 너랑 내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거.”
“그렇긴 하죠.”
마음이 급한 마리와는 다르게, 그는 어쩐지 여유 있어 보이기도 했다. 한 걸음쯤 뒤에 서서 그저 이 자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제삼자 같다고나 할까.
마리는 그런 그에게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갈 것이 있었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이 자리가 어떤 자린지는…… 알고 나온 거죠?”
승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마리는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나온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사이, 두 사람 앞에 차가 놓였다. 그는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며 빙긋 웃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어서 마리는 조바심이 났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마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언이 허리를 곧게 세웠다.
“자의 반 타의 반이야. 그렇다고 등 떠밀려 나온 건 아니고, 이 자리에서 널 만나보기로 결정한 건 오직 내 선택이었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 맞선 상대가 너라기에 일단 나오긴 했는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난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그 말은…….”
“이 자리에서 당장 결혼을 결정하고 싶진 않아.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잖아?”
그는 아주 다정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넌 이 자리의 목적이 무조건 결혼인 건가?”
그는 다시 한 번 확인하듯이 마리에게 되물었고 마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리는 새어 나오는 한숨을 간신히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솔직한 대답에,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혹시나 했던 기대감……. 기승언이라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혼자만의 생각이었단 것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물론 그도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의 망설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맞선 상대 조건을 좁히고 좁혀서 고른 건데, 결국 헛걸음을 한 게 되어버리니 허탈함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마리는 헝클어진 마음을 차곡차곡 접으며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마리의 말에 승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결정은 빠를수록 고맙죠. 제겐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여자 나이 스물아홉.
앞길 창창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에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는 오직 하나, 엄마.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이미 9개월째 멀쩡하게 버텨내고 계신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마리는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까먹은 시간이 너무나 길었기에 더는 지체할 수가 없다. 무엇이 되었든 빠른 결정을 내리고 그다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마리에겐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에 젖어 허비할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없었다.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두르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
“말해주면, 결혼해 줄 거예요?”
농담처럼 꺼낸 단도직입적인 마리의 말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가 많이 편찮으세요.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해야 해요.”
“결혼했으면 해요도 아니고, 결혼하고 싶어요도 아니고, 무조건 그 전에 결혼해야만 한다는 거야?”
“네. 꼭 그래야만 해요.
“내가 거절한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죠.”
마리의 간결한 대답에 찻잔을 입술로 가져간 그의 눈매가 슬며시 가늘어졌다. 마리는 시큰해진 코끝을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고 다시 승언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거절하셔도 돼요. 부담 갖지 마세요.”
“네 대답이 너무 시원해서 너한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인데 마리의 말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모양이다. 이마를 문지르고 있던 손끝이 어느새 턱으로 내려와 있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 그가 자신에게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저 가장 예의 바르고 상냥한 거절의 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단 말인가?”
“상관없어요. 최소 3년 동안만 결혼을 유지해 준다면.”
주치의가 길어야 1년이라고 했고, 그가 맨 처음 선고했던 1년이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심 여사는 강한 여자니까 분명 더 건강하게 살 거다. 그래서 결혼 3년 유지 조건을 내밀었다.
적어도 3년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결혼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 심 여사에게 안기는 그 순간까지는 꼭 선물하고 싶은 욕심. 마리는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하게 될 결혼. 세상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보는 게 꿈이었던 우리 심 여사를 위해, 그런 그녀의 자랑이고 싶었던 마리는 그녀로부터 평생 받기만 해온 사랑에 이렇게라도 작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승언이 손끝으로 찻잔을 가볍게 두들기며 마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고민 중인 건가 하는 헛된 희망을 갖게 만드는 그의 아스라한 눈빛에 마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그가 테이블에서 멀어지더니 소파 깊숙이 등을 묻었다. 여전히 시선은 마리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마리는 이제 침을 삼킬 수도 없을 만큼 가슴이 뛰고 손끝이 저릿했다. 허공에 묶인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휘둘렸다.
“미안하다, 마리야. 난 당장 결정할 수 없어. 고민과 생각이 필요해.”
그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거절했다. 어쩌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고 혼자서 착각해 놓고, 그의 미소에 속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그는 분명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자신의 제안을 덥석 물고 머릿속으로는 다른 셈을 하며 기만하던 남자들과 그를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는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도,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였다면 좋았을 텐데.
따뜻한 눈으로 날 바라봐 주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역시나 욕심이었어.
그동안 마리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남자에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곤 했다. 하지만, 그에겐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조금 더 설득해 볼까? 하는 구차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절박하긴 하지만 그에게 부담을 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값싼 동정심에 기대어 어떻게 해보는 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그건 정말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니까.
“이따 같이 저녁…….”
“저 먼저 일어날게요.”
마리는 자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일어나기로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승언이 놀란 눈으로 마리를 바라보았다. 마리는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승언은 마리와 마리가 내민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선이, 어쩐지 조금은 차가워진 것도 같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봐 주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훈훈한 마무리까지 바란다면 그건 정말 욕심이잖아.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는 끝내 마리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고, 마리는 손을 거둔 후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이대로 가겠다고?”
“계속 이렇게 있으면 괜한 희망 갖게 될까 봐……. 좀 더 애원하면 내 제안을 받아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게 될까 봐,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자신이 없어요.”
마리의 솔직한 대답에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순간 뺨이 뜨겁게 달아올라 마리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많이 절박하긴 한데…… 그래도 자존심 조금만 챙겨갈게요.”
모든 부탁에는 거절과 승낙이 같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거절할 자격과 승낙할 자격 모두를 갖춘 사람이니까,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했다.
“죄송해요. 무례하게 굴어서. 오늘 나와줘서 고마워요. 다음엔 좀 더 좋은 자리에서 뵐 수 있음 좋겠네요.”
승언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커피숍을 나섰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쿵쿵 심장이 발밑으로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탈함에 가슴이 휑했다.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상황인데 오늘 유독 왜 이럴까.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다른 사람 찾아보면 되잖아.
마리는 승언을 보며 잠시나마 설렜던 순간들을 털어내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혼.
언젠가 하게 되겠지, 라고 생각해 본 것이 전부였다.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도 없이 나이 서른이 넘어가고, 동생이 먼저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온 후로는 가족들의 은밀한 압박이 들어와도 승언은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종종 맞선 제안이 오긴 했지만 잘 응하지 않다가 이번엔 정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나와본 자리였다. 집안 어른들께 한 번쯤은 ‘나도 결혼을 위해 맞선을 보긴 봅니다’라는 선전용이었는데, 상대가 유마리였던 것이다.
그쪽은 무척 결혼이 급한 입장이라고 했다. 막냇동생인 정언과 같은 나이면 이제 스물아홉인데 뭐 얼마나 급하겠나 싶기도 하고, 마리라면 적당히 자리 정리하고 상황을 마무리 짓기도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얕은수를 굴리다가, 이 자리에 임하는 마리의 진지한 태도에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맞선’이란 자리의 무게.
마리는 진지했다. 간절해 보이던 마리의 모습에 승언은 몹시 후회했다. 마리에게 좀 더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승언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리가 커피숍을 나서고도, 승언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맞은편 빈자리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단 말인가?”
“상관없어요. 최소 3년 동안만 결혼을 유지해 준다면.”

차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삼킨 승언의 이마가 구겨졌다. 마리의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돌았고 어느 순간부턴 낯선 남자 앞에 앉아 있을 마리를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상상만으로도 대체 왜 불쾌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미안하단 말에 미련 하나 없는 얼굴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팔짱을 끼고 있던 승언은 뻣뻣해진 목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방금까지 눈앞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있는 힘껏 미소 짓고 있던 마리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구 디자이너인 승언은 5년 전 독립을 했는데, 평범한 2층 주택을 얻어 1층은 작업실로, 2층은 집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다. 30년 이상 된 오래된 주택이지만 외형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내부만 직접 손을 보았다.
2층에서 1층으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을 통해 작업실로 내려가던 승언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정언도 승언을 발견하곤 달려 들어왔다.
“형!”
“왜 왔어.”
맞선 본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속셈을 잘 알 것 같아서 승언은 퉁명스럽게 물으며 도면 작업 중인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언은 주로 원목 가구를 만들었다. 주로 만드는 가구는 다이닝 테이블, 1인용 소파, 벤치, 침대, 장롱 등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가구들이었다. 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디자인과 도장까지 직접 주문자가 관여하는 백 퍼센트 주문 제작도 하고 있지만 가로수길에 자리한 쇼룸의 월세 마련을 위해 틈이 날 때면 작은 나무접시도 깎아서 팔았다.
승언이 만드는 가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용성과 기능성이다. 장식적인 요소는 과감히 배제하고 가장 가구다운 가구, 기본에 충실한 가구를 만들고 있다.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소신껏 가고 있지만 그것이 곧 트렌드가 되고 있었다. 핸드메이드를 향한 지나친 숭배가 또한 한몫 단단히 거들기도 했다.
부자들이 대저택에 고가의 명화를 걸듯, 어느새부턴가 유행처럼 승언의 가구를 들이고 있었다. P건설 회장인 아버지와 S대 미대 조소과 교수 어머니를 둔 가구 디자이너라는 후광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승언은 가구장이를 꿈꿨다. 가구를 작품으로 만드는 가구 예술가가 아닌, 진짜 실생활에 쓰이는 가구를 만드는 가구장이.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승언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가구들은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오직 하나의 가구를 위해 그 긴 시간 정성을 쏟아붓는다. 디자인을 하고, 도면을 그리고, 나무를 고르고, 재단, 연마, 도장, 조립 그 모든 과정을 대부분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하고 가. 형 오늘 바빠.”
승언이 먼저 선수를 치자, 정언이 피식 웃으며 승언의 표정을 살폈다.
“할아버지께서 이번 팔순 잔치 때 손주 며느리 얼굴 볼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뭐라고 답해 드릴까?”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그게 궁금해서 쫓아왔을 것 같더라니.
정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승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손은 아직이고, 둘째 손주 며느릿감은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전해드려.”
“아! 이 말을 빼먹었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형 두고 아우가 먼저 장가드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형 생각은 어때?”
네가 기어이 매를 버는구나.
호들갑을 떨며 약 올리듯 이죽거리는 게 얄미워서, 승언은 결국 정언의 이마에 꿀밤 한 대를 놓았다.
승언의 연년생 동생인 둘째 태언이 5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며 일찌감치 집에 공표를 해둔 참이다. 반대까진 아니지만, 할아버지께서 그래도 형이 먼저 결혼하는 게 보기 좋지 않겠냐고 하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중간에 끼인 승언의 입장이 난처했다.
집안 자체가 대놓고 결혼을 재촉하진 않았지만 무언의 압박만으로도 승언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태언의 결혼 진행이 늦어지는 것만은 분명하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결혼을 결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리랑 얘기 잘 안 된 거야?”
정언의 질문에 승언은 말을 아끼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눈치 빠른 정언은 역시 단번에 이해한 듯 피식 웃었다.
“하긴. 결혼을 전제로 누군갈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형이 그 자리에 나간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본다. 할아버지랑 작은형도 내심 놀란 것 같았거든. 노력하는 모습 아주 보기 좋아! 훌륭한 작전이었어!”
정언이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시도했지만 승언은 그런 정언을 노려보았다.
“넌 마리랑 연락 자주 하고 지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럼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구나?”
“친한 사이지!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내가 유일할걸? 유마리는 친구가 많이 없어. 나나 되니까 걔 옆에 남아 있는 거야.”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래?”
“왜? 유마리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가 봐?”
느물거리며 장난을 거는 정언에게 또 한 번 손이 나갔지만, 이내 정언이 자세를 바로 고쳐 잡았다.
“성격 탓도 있긴 한데, 어렸을 때부터 원치 않는 관심을 워낙 많이 받고 자라서 그래. 아이들 사이에서도 늘 이슈의 중심이었거든. 형도 알지? 마리 어머니 친모 아니고 계모인 거? 마리가 예쁘장하고 똑똑해서 가뜩이나 시기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딱 물어뜯기 좋은 약점을 발견했으니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있나.”
마리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세한 부분은 최근에 맞선을 보게 되면서 모친인 주연을 통해 설명을 듣긴 했지만 세간에 알려진 소문들은 부풀리거나 각색된 부분이 많은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똑같아. 그 어린아이한테 별소릴 다 해댔지. 아닌 척했지만 마리 그때 상처 많이 받았을 거야. 자존감도 높고 자존심도 강한 애라 겉으로 내색하는 법이 없어서 사실 나도 그땐 잘 몰랐어. 그냥 쟤 독하다, 라고만 생각했고.”
승언의 기억 속에도 마리는 항상 흐트러짐이 없었다. 기죽어 다니는 건 본 적 없고, 늘 반듯하고 꼿꼿한 모습이었다.
“계모나 세컨드라고 놀리면 사정없이 머리채부터 잡고 흔들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 사춘기 지나면서 논리를 갖추게 된 후로 몸싸움은 안 하더라. 대신 말로 조져놨지. 그 후론 아무도 못 덤벼. 마리는 다들 어려워하는 존재였어.”
정언이 묘사한 마리와 맞선 날 보았던 마리는 잘 매칭이 되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유마리라니. 승언은 그 모습을 상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참고로 걔 성질머리 보통 아니야. 한번 돌면 미친년이 따로 없다니까?”
“야, 기정언.”
“말이 너무 심하다고 그러려는 거지? 근데 진짜야. 그렇다고 내가 형한테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마리는 친구라는 자식이 자길 미친년이라고 하고 다닌다는 걸 알아?”
“절대 말하지 마. 걘 정말로 날 죽일 거야.”
그 와중에 두렵긴 한가 보다.
승언은 마리를 대신해서 정언의 팔뚝을 주먹으로 툭 쳤다.
“근데 마리 좋은 애야. 착하…… 다고는 차마 양심에 찔려서 말 못 하겠다.”
이 자식이 끝까지.
승언이 또 한 번 주먹을 꽉 말아 쥐자 정언이 손사래를 치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결혼을 서두른단 얘길 듣긴 했는데, 형이랑 맞선을 보게 될 줄은 진짜 몰랐어.”
“마리가 어머니랑 사이가 좋은가 봐?”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남다르지. 마리 어머니는 마리를 낳지만 않으셨지, 친자식보다 더 귀하게 길러주셨다고 하더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애틋함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마리가 어머니 얘기할 땐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어머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 계모, 세컨드 소리 했다가 머리채 잡힌 애들도 있다니까?”
각별한 관계라. 효심이 지극하다고 해야 하나?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대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혼을 어머니를 위해 서두를 만큼이라니. 승언의 입장에선 쉽게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의 마음이었다.
“마리 조건만 보고 달려들었던 남자들 꽤 됐어. 최근에는 결혼 직전까지 가서 엎어지기도 했고. 얘기 들을 때마다 안타깝더라. 마리가 조급해하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사실은 불안해. 유마리는 진짜 좋은 남자 만나야 되는데…….”
정언에게서 마리에 관해 듣게 될수록, 머릿속의 생각들이 하나둘 가지치기가 되어가며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렵고 복잡하기만 했던 것들이 점점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는 생각.
난 지금 유마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고, 다른 남자에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분명해진 그 두 마음만으로도 승언은 내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더 궁금한 거 있어?”
“아니.”
승언이 고개를 젓자, 정언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머진 마리한테 직접 들으면 될 것 같아.”
“뭐? 그럼 마리를 다시 만나보겠단 소리야?”
대답을 대신한 승언의 미소에 정언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승언을 바라보았다.
“유마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면 그만둬. 결혼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마리 고민 많이 했고, 자기가 선택한 길 곧 죽어도 갈 애야. 어설픈 동정이나 훈수 두려는 거면 미리 양쪽 뺨 내놓는 게 좋을 거다.”
“그런 거 아냐.”
“그런 게 아니면?”
“궁금해. 유마리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왜 결혼을 선택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아니다. 오직, 유마리가 궁금할 뿐. 그녀가 어떨 때 웃고, 어떨 때 행복해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같은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이 궁금했다. 그것들이 알고 싶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만나보고 싶어.”
한 번 더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만 같은 기분.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유는 그녀를 만나야만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이 지금 마리를 만나보겠다는 말 하는 게…… 결혼을 전제로 한 그 만남인 거지? 형, 괜찮겠어?”
“안 괜찮을 건 뭐야. 이렇게 고민만 하고 있으면 답 안 나와.”
더 이상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머리 굴리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미안함이나 후회 같은 거 남지 않도록 진지하게 다시 한 번 그녀와 만나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 2시 H호텔 커피숍.
마리는 커피숍 유리문에 비친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2주 전 이곳에서 만났던 기승언이 떠올랐고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래도 참 반가웠는데…….
그래서 그의 거절이 유난히 더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고, 욕심이 나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마음을 바로잡고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젠 제법 낯이 익어 눈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기는데, 낯익은 한 남자가 마리의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마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더욱더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기승언. 그 남자였다. 그는 입매를 부드럽게 휘며 말갛게 웃었고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뭐지? 여기에 그가 왜 또 있는 거지?
마리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어깨에 멘 핸드백 끈을 손에 꼭 쥐었다.
설마, 날 만나러 온 걸까?
아니겠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있다거나, 혹은 다른 맞선이 약속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마리와는 정반대로 그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내 그가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마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때, 마리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마리는 발신자에 적힌 그의 이름 석 자를 확인하곤 그와 자신의 휴대폰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승언이 어서 받으라는 듯 턱짓을 하자, 마리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한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늘은 내가 먼저 왔어. 다시 보니까 반갑지?]
그의 말에, 마리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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