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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04921131
· 쪽수 : 314쪽
· 출판일 : 2020-01-03
책 소개
목차
제2장 아사다 류타로
제3장 급행열차
제4장 심실 재건술
제5장 도수의 신념
제6장 의국 회의
제7장 뜻밖의 소식
제8장 오프 날 저녁
제9장 서쪽에서 발행한 사고
제10장 위험한 비행
제11장 의인들
제12장 의사에서 의사로
제13장 배 안에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안타깝지만 이 환자는 가망이 없다. 다른 환자부터…….”
“살릴 겁니다.”
도수가 말을 잘랐다.
엄마, 아빠를 잃었던 그날처럼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땐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한 속내를 모르는 김광석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파편이 박힌 환자가 생존한 케이스는 없다.”
단정 지은 그가 모르핀 주사를 꺼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그 순간.
턱.
도수가 손목을 잡았다.
김광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리 무어 장군처럼 생존율이 희박한 게 아니라, 인력으론 불가능한 영역이란 말이다. 고통을 덜어주고 다른 환자를 보는 게 맞다.”
지금 환자는 쇼크 상태.
하지만 곧 깨어날 터였다.
도수 또한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김광석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건물 안으로 옮겨서 수술하겠습니다.”
도수는 아직도 손목을 잡고 있었다.
김광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놔.”
“쓸데없는 짓 마세요.”
“뭐? 쓸데없는 짓?”
참다못한 김광석이 쌍심지를 켰다.
“그렇게 아무 때나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네 욕심만 생각하나? 가망이 없는 환자한테 피 주머니 몇 개씩 들이부을 바엔 다른 가망 있는 환자부터 치료하는 게……!”
“책임은 제가 집니다.”
도수는 투시력을 끌어올렸다.
샤아아아아아.
동시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환자들을 보았다. 그러자 피부 위로 반투명하게 빛나는 혈관들과, 그 안을 돌고 있는 혈류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응급처치 시 수혈해야 할 양이 대략적으로 파악되었다.
“피 주머니는 넉넉해요. 이송이 가능한 환자들은 지혈한 후 이송하면 되고, 출혈이 심한 환자들도 수액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걸 어떻게 판단하나? 충분하게 챙겨 왔다곤 해도, 아직 환자들 상태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도수의 능력을 모르는 김광석으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더 정확하려면 일일이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수혈할 수 있는 피 주머니 개수를 따져서 생존 확률이 높은 환자부터 수혈해야겠지만.
그 시간이면 눈앞의 이 환자는 백 퍼센트 사망이다.
도수는 김광석의 손을 놓고 지혈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 낭비할 여유 없습니다. 이 환자도, 다른 환자들도 빨리 손써야 돼요.”
김광석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 한 번쯤은…….’
어차피 경험해야 하는 일이었다.
환자의 죽음.
만약 그 죽음에 익숙해지지 못한 의사라면 아직 환자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쉽게 포기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턴이나 레지던트들도 겪는 과정.
어쩌면 아무리 비범하다 해도 아직 열아홉 살에 불과한 소년에게 너무 노련한 의사의 기준을 뒤집어씌우려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김광석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그게 환자에 대한 예의니까.”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매디 보웬 기자의 입장은 달랐다.
“잠깐만요! 지금 모험을 하겠다는 거예요? 닥터 킴은 이걸 그냥 내버려 두겠다는 거고요? 만약 환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럼 우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요! 도수, 넌 아예 추방되거나 다시 투옥될 거야.”
“그딴 게 중요해요?”
도수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는 군인들을 향해 벼락같이 외쳤다.
“실내로 옮겨요! 당장!”
군인들이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자, 도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말고도 환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질 분이 또 계십니까?”
“……!”
그제야 군인들이 움직였다.
환자를 이송하는 그들을 보며 매디 보웬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네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모두를 살릴 순 없어.”
“닥쳐요, 매디.”
냉정하게 말한 도수는 혈액을 챙긴 뒤 군인들의 뒤를 쫓아갔다.
뒤에 남겨진 매디 보웬은 김광석을 쏘아보며 말했다.
“방금 들었어요? 지금 나보고 닥치라고…….”
“닥치고 쫓아가요, 미스 보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거요.”
그 말을 남긴 김광석은 혈액 가방을 메고 다른 환자를 보러 떠났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매디 보웬이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