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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대의 역사

러시아 군대의 역사

(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로저 리스 (지은이), 류한수 (옮긴이)
너머북스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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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대의 역사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러시아 군대의 역사 (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러시아사
· ISBN : 9791124105092
· 쪽수 : 448쪽
· 출판일 : 2026-06-05

책 소개

나폴레옹전쟁부터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제정 러시아군·소련군·러시아연방군 200여 년의 역사를 아우른 군사사 연구서다. 로저 리스는 러시아 군사 전통의 연속성을 추적하며 방어와 팽창 전략, 대규모 상비군 체제, 민·군 관계의 특징을 통해 러시아 군대의 본질을 분석한다.
제정 러시아, 소련 그리고 현대 러시아까지
세 시기의 단절을 가로지르며
러시아 군사적 전통의 연속성을 밝힌 최초의 책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볼 때,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정복과 팽창이라는 제국 시대로 회귀한 듯하다. 하지만 로저 리스(미 텍사스A&M대학교 역사학과) 교수가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러시아의 전쟁 방식은 한 세기가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차르의 군대에서 오늘날의 군대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 군대의 역사_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는 제정 러시아군과 그 후신인 소련군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연방군이 어떻게 국가의 대외정책 과제 -국력 투사와 제국 방어-와 민족주의, 상충하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 정치적 불만이 야기한 내부 불안 진압이라는 국내 과제에 맞서왔는지를 밝힌다. 러시아 군사사의 특정 시기만을 다루는 대부분의 저작들과 달리, 리스의 이 책은 제정 러시아, 소련 그리고 현대 러시아까지 200여 년에 걸친 세 시기의 단절을 가로지르며, 러시아 군사적 전통의 연속성을 밝힌 최초의 책이다.
19세기 초부터 러시아 군대의 발전은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세력 균형 변화와 세계적 외교,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에 의해 주도되었다.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국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군대가 국가 주권을 수호하는 핵심 기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러시아 군대의 정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한 저자는, 러시아 군사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제시한다. 첫째, 서부에서는 방어적 자세를, 발칸반도와 캅카스에서는 공세적 전략을, 중앙아시아와 극동에서는 팽창주의 정책을 채택하는 지역별 전략 차이, 둘째는 대규모 상비군의 무리한 유지, 셋째가 군대와 비러시아계 소수민족의 충성심에 관한 지도부의 불안감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평화와 전쟁 시기를 막론하고, 국가 통치자들이 민·군 관계를 관리하면서 작전 및 전략적 군사 결정을 하는 관행이다. 이는 짜르 시대부터 소련의 붕괴 시기 그리고 푸틴이 권위주의 통치와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패권을 회복하려 한 현재까지 이어진다.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세 가지 뚜렷한 시대를 아우르며 군사사를 연결하고 구체적인 작전, 병력 충원 및 유지, 군대와 사회의 관계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쉽고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KBS의 「이슈 Pick, 샘과 함께」, 「역사저널 그날」,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등에 출연하는 류한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가 옮겼다.

서부에서는 방어를, 발칸과 캅카스에서는 공세를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극동에서는 팽창을

『러시아 군대의 역사』가 19세기 초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세 번에 걸친 폴란드 분할로 인해 1800년경 러시아의 서부 국경이 오스트리아 및 프로이센(나중에는 독일)과 맞닿아 그어졌기 때문이다. 서부 국경이 고착됨에 따라 러시아는 발칸반도에서 오스만제국을 밀어내고, 남쪽으로는 캅카스, 남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극동에서는 태평양과 만주 접경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정복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이 제국으로 편입되었고, 이들을 통제해야 했으며, 방어해야 할 국경선이 역사상 유례없이 길어짐에 따라 군대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1801년부터 2022년까지 러시아는 유럽, 유럽 러시아, 발칸반도, 캅카스, 중앙아시아, 극동지역에서 무수한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의 연대기는 러시아 군사사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국가 주권 수호자’ 신화가 탄생한 나폴레옹전쟁(1801~1815)에서 시작한다. 1806년~1812년에는 오스만제국과, 1808년에는 핀란드를 침공하며 스웨덴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1829년에 다시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을 시작하며 동시에 캅카스 정복에 나섰고, 오스만에 영국과 프랑스가 가세한 크림전쟁(1853~1856)까지 30여년 동안 전쟁을 지속했다. 군대 전체가 한데 모여 싸울 수는 없었다. 다른 곳에서 방어가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농노나 정복된 비(非)러시아계 소수민족들의 불만과 반란을 억제하기 위한 싸움도 계속되었다. 1831년과 1863년에 폴란드봉기를 잠재웠으며, 발칸반도에서 패권을 확립하기 위해 1877년 오스만제국에 전쟁을 걸었다. 1904~1905년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극동에서 싸우면서도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맞닿은 긴 국경을 지키는 동시에 발트 3국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억눌렀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군은 유럽 접경에서, 발칸반도에서, 캅카스에서 동시에 싸웠고,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란도 진압했다. 내전(1918~1921)과 폴란드와의 전쟁(1920)을 치른 군대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그리고 훗날 1980년대에) 캅카스의 반소련 분리주의 운동 진압에 투입되었다. 스탈린은 1939년 폴란드 및 핀란드와 전쟁을 했고, 이듬해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베사라비아, 부코비나를 무력으로 점령해서 모조리 흡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처참한 전쟁을 벌인 소비에트 군대의 마지막 싸움은 1979년~1989년의 아프가니스탄 군사 개입이었다. 옐친과 푸틴의 집권기에는 러시아 패권을 복원하려는 열망이 군사 공격을 밀어붙이는 동력이었다. 이 공격은 에스토니아에 가한 사이버 공격부터 체치냐, 조지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1세부터 이후 20세기까지 한결같이 드러나는 러시아 전쟁사의 핵심 주제의 하나로, 서부 국경은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여 방어 태세를 취했다는 것, 이와 대조적으로, 발칸반도부터 캅카스, 중앙아시아, 극동지역에 이르는 자국의 나머지 주변부에서 하는 전쟁에는 노골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제기한다. 그곳에서 러시아는 막대한 인적, 물적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길 때까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으레 싸움을 걸고 적의 영토 안으로 먼저 치고들어갔다. 로저 리스는 이 모든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는 비효율적인 지휘 체계와 막대한 사상자를 내는 등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이 문제는 지금의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장에서도 드러난다고 꼬집는다. 전쟁에서 패했을 때는 물론이고 승리하거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더라도 그 결함을 메우는 새로운 병력을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거대한 상비군과 동원 시스템을 유지했다는 구조적 특징을 반복해왔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상비군의 무리한 유지와 러시아 군대의 이정표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러시아의 군사사를 단순히 전략과 전술, 전투 중심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군대의 병력 충원 방식, 군대의 유지 비용 그리고 군대와 사회와의 관계에 비중을 두어 서술한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군대를 유지했다. 2022년에 1백만 명이 넘은 러시아 군대는 인구에 견주어 여전히 크다. 강대국이고 싶은 열망, 역사의 타성, 겉보기와 달리 기반이 허약한 지배층으로 말미암아 군대는 국민의 경제적 복지를 희생해서 지나치게 큰 규모와 비용으로 유지되었다. 저자가 제기하는 두 번째 핵심 주제는 ‘대규모 상비군의 무리한 유지’이다.
농노제는 대규모 상비군을 낳았는데, 이는 알렉산드르 1세나 니콜라이 1세가 원했던 바보다 더 큰 규모였다. 1860년대 농노해방이 되기 전까지 남자는 징집되면 더는 사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젊은 병사가 풀려나 민간인으로 살게 되면 생존 기술이 없이 말썽꾼이 되기 십상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만약 징집되기 전에 결혼이라도 했다면 그의 처자식도 마을을 떠나야 했다. 농노제가 만든 사회의 풍경이었다. 표트르 1세 때 종신이었던 군 복무 기간은 후에 25년으로 줄기는 했지만, 이는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큰 규모의 상비군이 유지되었던 이유가 되었다. 건강이 거의 망가질 때까지 병사를 군대에 붙잡아 둠으로써 러시아는 더 작은 규모의 상비군을 뒷받침해줄 훈련된 대규모 예비군을 가질 수 없었다. 문제는 더 꼬였다. 예비군이 모자라니, 조련에 시간이 드는 풋내기 신병을 징집해야 상비군을 증원할 수 있었고 따라서 상비군 규모가 평시에도 지나치게 커야 했던 것이다.
1850년대 크림전쟁의 패배로,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비해 농노제 기반의 러시아군이 얼마나 취약한지가 드러났을 때, 알렉산드르 2세는 결국 군대 개혁을 위해 지주 귀족을 제어하여 농노해방(1861)을 단행했다. 농노해방은 큰 예비군을 확보할 능력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서 군대의 인력 충당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25년이던 복무 기간을 6년으로 줄였고, 복무를 마친 병사는 40세까지 재소집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상비군의 크기가 줄었으며, 온갖 우발적 동원 사태를 다룰 전쟁 및 동원 계획이 작성되었다. 이 밀류틴 개혁은 러시아의 전쟁 준비 방식을 바꾼 첫 이정표였다.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이후, 볼세비키 혁명과 붉은 군대, 스탈린의 제병협동전 그리고 1950년대 핵무기까지 러시아 군대 발전의 주요 이정표를 추적한다.

군대의 충성심에 대한 수반들의 불안감, 장교와 병사의 사회사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2세기에 걸쳐 러시아 군대가 공유해 온 군사 전략, 교리 그리고 구조적 특징을 추적한다. 그 군사사 중에서도 장교와 병사의 부대 생활까지 러시아 군대의 내부 작동을 샅샅이 살펴본다. 정복당한 비러시아계 민족의 반란과 함께 군대 장교들의 충성심에 대한 지도부의 불안감은 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세 번째 주제다.
‘붉은 군대’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로저 리스는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2월 혁명이 장교단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병사들의 반란을 촉발했다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반란과 붕괴의 뿌리는 농노해방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밀류틴 개혁 이후에도 장교단이 사회적 변화와 변화된 전문적 요구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장교들은 보편적 징집이라는 새로운 모델의 군대 앞에 지도력의 기준과 관행을 향상시키기보다는, 고귀한 신분과 특권에 집착했다. 장교는 부하를 군복 입은 농노로 보았고 그렇게 다루었다. ‘가르친다’는 말과 ‘때린다’는 말은 같은 말로 쓰였다. 장교와 병사의 관계에서 장교는 언제나 ‘바린(지주)’으로 남아 있었고, 병사는 언제나 ‘무지크(농민)’였던 것으로, 병사는 시민이 아니라 기계적인 복종을 요구받는 존재였다. 그 대가가 1917년에 찾아왔다고 본다.
소비에트 군대에서 장교는 귀족 출신을 배제하고 모든 계급에게 장교단의 일원이 될 자격을 열어놓았다. 장교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지만 충원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짜르 시대나 소비에트 시대 지도부는 장교들의 충성심을 우려했고 그만큼 숙청도 잦았다. 장교단이 스스로를 제도적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지닌 단체로 여기는 인식을 키워 가는 만큼 국가에 대한 장교들의 충성도 위태로워졌던 것이다. 한편 보리스 엘친과 블라디미르 푸틴은 부패를 눈감아 줌으로써 고위 장성을 부자로 만들어 군부의 충성을 확보했다. 스탈린처럼 푸틴도 보안 부대와 밀착해서 군부를 틀어쥐었다.

국가수반이 최고 사령관으로 실질적인 통수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이유와 관행이 모여 1801년부터 2022년대까지 러시아의 수반들은 전근대 시기 군주가 야전에 나가는 오랜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작전의 기획과 감독을 비롯한 군사 문제에 개입함으로써 총사령관의 통수권 행사를 고집했다.
예를 들면,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에 블라디미르 푸틴이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공장을 철저히 봉쇄해서 공장 안에서 버티는 우크라이나군의 최정예 아조우 부대를 제압하라고 명령한 것이 그 예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들어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1915년에 군통수권을 주장하며 근대를 지휘했고 스탑카(전선의 사령부)에 자신이 함께 있다면 병사들과 후방의 사기를 북돋아 더 큰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전기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따금 군사 자문관과 야전 사령관의 말을 듣지 않고 인력을 배정하고 전장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스탈린은 권력을 행사해서 장교단을 1927~1928년, 1930년, 1937~1938년에 세 차례 숙청했고,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합리적 충분성’이라는 자신의 방위 교리를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러시아는 최고 권력자가 구체적인 군사 작전의 수립과 실행에 깊숙이 개입하는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리스의 분석에서 나오는 결론이다.
나폴레옹전쟁에서 시작한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러시아의 패권을 서쪽으로 확장하고 러시아에서 자신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굳히려 블라디미르 푸틴이 선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러시아 군사사의 중요한 추세를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목차

서문·7

도입·19

제1장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의 통치기, 1801~1855년·37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 통치기의 군대·42|장교·47
알렉산드르 1세의 전쟁·52|1812년 조국전쟁·56
데카브리스트봉기·67|둔전촌·70
니콜라이 1세의 전쟁·73
러시아-튀르크전쟁, 1828~1829년·74
1830년 폴란드봉기·81|인원 문제와 개혁, 1831~1849년·85
헝가리 독립전쟁·87|크림전쟁·91
다뉴브 전역·95|크림 전역·97

제2장 알렉산드르 2세와 알렉산드르 3세 통치기의 러시아 군대, 1856~1894년·105
미래전에 관한 생각·109|밀류틴 개혁, 1861~1874년·111
조련된 예비군의 창설·116|장교 충원·119
장교의 교육과 훈련·121|밀류틴 재임기의 다른 변화·125
1863년 폴란드봉기·127|전쟁 계획·130
러시아-튀르크전쟁, 1877~1878년·132
대공주의와 전쟁·145|전후의 군사사상·149
군대와 사회·154

제3장 니콜라이 2세 통치기의 러시아 군대, 1894~1917년·161
전쟁 계획·165|러시아-일본전쟁, 1904~1905년·168
1905년 혁명·179|새로운 전쟁 계획·184|개혁 실패·189
교리 재론·193|전문화 열망·197
전쟁 발발, 1914년·202|제1차 세계대전의 경과·206
1915년·209|1916년·212
1917년·215|2월 혁명·216

제4장 붉은 군대 형성기, 1917~1945년·221
볼셰비키의 군대 개념·224
붉은 군대의 창설과 러시아 내전·227
폴란드와의 전쟁·236|전간기 초기, 1921~1928년·239
군대와 사회·248|군대의 팽창, 1928~1941년·250
프룬제 이후의 전간기 군사사상·253
위협의 평가, 1928~1939년·257|대숙청과 군대의 팽창·258
폴란드 및 핀란드와의 전쟁, 1939~1940년·260
전쟁 계획, 1939~1941년·264
변화의 촉매 노릇을 한 독일의 침공·269
초기의 재앙, 1941년·271|1942~1945년·276
전쟁이 군대에 미친 영향·284

제5장 냉전, 1946~1991년·287
전후의 스탈린 통치기·292
흐루쇼프 집권기의 군대, 1956~1964년·294
브레즈네프 시대, 1965~1982년·303
중국의 위협·312|아프가니스탄전쟁·314
고르바초프 시대, 1985~1991년·321
고르바초프의 교리 개혁·324
“합리적 충분성” 실행하기·328|군대와 사회·332
군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변화·336|8월 쿠데타·341

제6장 소비에트 이후 시대, 1992~2022년 8월·345
새로운 주제와 도전·351|군대와 사회·359
러시아연방의 전쟁·363
제1차 체치냐전쟁·364|제2차 체치냐전쟁·367
러시아-조지아전쟁·36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2014~2021년·370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2월~8월)·370

맺음말·393

미주·401
참고문헌·424
옮긴이의 말·433
찾아보기·440

저자소개

로저 리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 텍사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은 텍사스 A&M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사의 시각에서 러시아제국 및 소비에트연방군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 미국 제1차 세계대전 역사협회의 톰린슨 저작상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 『소비에트 군사 경험: 소비에트 군대의 역사, 1917~1991년』(The Soviet Military Experience: A History of the Soviet Army, 1917–1991)(2000), 『붉은 지휘관들: 소비에트 군대 장교단의 사회사, 1918~1991년』(Red Commanders: A Social History of the Soviet Army Officer Corps, 1918–1991)(2005), 『스탈린의 군인들은 왜 싸웠는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붉은 군대의 군사적 효율』(Why Stalin’s Soldiers Fought: The Red Army’s Military Effectiveness in World War II)(2011), 『평화기, 전쟁기, 혁명기의 러시아 제국 군대, 1856~1917년』(The Imperial Russian Army in Peace, War, and Revolution, 1856–1917)(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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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수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에식스대학교 역사학과에서 러시아 혁명 및 내전기 페트로그라드의 산업체에서 일어난 변화를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럽 현대사, 특히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KBS의 「이슈 Pick, 샘과 함께」, 「역사저널 그날」,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등에 출연했으며, 국방tv의 「역전다방」에 출연하고 있다. 공저로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2017), 『서양사 강좌』(2022)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이콘과 도끼: 해석 위주의 러시아 문화사』(2015),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2020), 『유럽 1914-1949: 죽다 겨우 살아나다』(2020), 『러시아의 전쟁』(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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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군부대가 자리 잡은 도시의 밖에 있는 병사는 겨울철과 — 한 해에 일곱 달에 이르는 — 우기 동안에는 농민과 함께 지내곤 했다. 그때에는 장교가 도시에 있는 숙소에서 지내면서 부하들을 거의 살피지 않았으므로 삶은 더 편했다. 근무 시간이 아닐 때 병사는 농민의 옷을 입었다. 마을이나 그 지역의 번성함 정도가 병사의 겨울철 삶의 질을 결정했다.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마을에서는 병사들 사이에서 질병률과 사망률이 높았다. 1825~1850년에 90만 명(한 해에 3만 6,000여 명)이 전투와 무관한 원인으로 죽어서, 전투에 관여하지 않은 병사들 사이의 공식 사망률이 1,000명 당 37.4명이었다. 이 기간에 다른 유럽 국가 군대에서는 사망률이 대개는 1,000명당 20명이었다.


이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군에서 탈영해 반란군에 가담했던 수십 명의 폴란드 장교들이 처형되었다. 그 뒤로 폴란드인은 총참모부학교 입학이 금지되었으며 대령 계급 이상의 진급을 기대할 수 없었다. 폴란드인은 유소년 사관학교 입학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군대는 폴란드인을 소수 집단으로 묶어 두려고 부대별 배정 인원에 비밀리에 할당량을 정해 놓았다. 또한 자유주의 성향의 러시아인 소수가 봉기에 가담했는데, 그 결과 30명이 처형되고 107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폴란드인을 가혹하게 다루고 알렉산드르 2세가 자유주의화 개혁을 저버린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항의하여 러시아인 장교 수십 명이 군대에서 사임했고, 이는 육군부와 겨울궁전에서 얼마간 불안감을 자아냈다.


1904년 5~6월에, 즉 뤼순항 포위가 진행되는 동안에 일본군이 북쪽으로 철로를 따라 3개 야전군을 하얼빈으로 보냈다. 네댓 번의 산병전에서 일본군은 기동이 우세한 데다가 러시아군의 공조와 소통이 부족했으므로 러시아군을 뒤로 밀어부쳤다. 뤼순항과 하얼빈을 잇는 철도를 따라 북쪽으로 치고 나아가는 일본군의 첫 주요 전투는 1904년 7월의 랴오양전투였다. 15만 8,000명 대 12만 5,000명으로 쿠로파트킨의 병력이 수에서 일본군을 앞섰지만, 첩보가 틀리고 미비한 탓에 쿠로파트킨은 일본군이 우세하다고 가정했다. 자기가 수에서 밀린다는 생각에 그의 계획이 비틀린 나머지 수세적 마음가짐과 측방 우회 공격을 당한다는 두려움이 도드라졌다. 러시아군이 일본군과 아주 잘 싸워서 답보 상태에 이르렀는데, 전사상자 1만 6,000명의 피해를 입으면서 일본군에게 전사상자 2만 3,000명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쿠로파트킨은 일본군의 손실을 실제보다 더 적게 평가했고 기병 정찰이 형편없는 탓에 일본군이 보급품을 다 써 버렸다는 것을 몰랐으며, 그래서 북쪽의 펑톈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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