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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24401194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6-06-04
책 소개
성북동 산동네 골목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공간 감각이 정림이라는 한 우물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사람이 보이는 건축'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방명세 대표가 걸어온 길은 직선적인 성공의 궤적이라기보다 한 가지 질문을 묵묵히 붙들고 걸어온 길고 단단한 여정이다. 저자는 이 여정을 Root(건축가의 뿌리), Field(현장의 기록), Essence(사유의 기준), Legacy(시간의 유산), Sketch(펜끝의 풍경)라는 다섯 개의 결로 풀어내며, 한 사람의 건축 인생이 어떻게 '사람'이라는 본질에 가닿게 되는지를 자신의 언어와 손끝의 스케치로 증언한다.
저자의 여정은 '건축가 없는 건축'이었던 성북동 산동네 골목에서 시작된다. 도면도 설계자도 없이 땅의 생김에 맞춰 한 칸 두 칸 올린 집들이 자생적으로 엮여 만들어진 그 골목길이, 저자에게는 교과서가 아닌 발바닥으로 배운 첫 번째 건축이었다. 정림건축 입사 후 그는 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건축의 안과 밖을 두루 경험했다. 한때 회사 안에서 잊혀진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지워진 듯 보였던 그 시간들이 실은 지워지지 않고 켜켜이 쌓여 그를 오늘의 자리로 데려왔다.
진짜 전환은 코이카(KOICA) 사업을 통해 해외 ODA 현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광양 해비타트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집을 지으며 처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그는, 아이티·볼리비아·콩고·콜롬비아·과테말라·에티오피아 등 10여 개국의 현장을 다니면서 건축이란 결국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 현장들에서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는 비로소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의 인사 “I see you”의 의미를 건축의 언어로 이해하게 된다. 그 시선은 곧 출장수첩 위 필드스케치가 되어, 마침내 이 책의 뼈대를 이루었다.
저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은, 건축이 단지 도면 위의 일이 아니라 '기준을 다루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수평과 수직, 비용과 일정 같은 숫자의 기준만이 아니라 무엇을 지킬지, 어디까지 책임질지, 왜 그 일을 하는지 같은 판단의 기준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신중진 명예교수가 “역량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성품이고, 왜 그 일을 하는가를 붙드는 것은 소명이다”라고 남긴 추천의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IMF의 혹독한 겨울을 함께 건넌 정림이라는 '밭'에서, 시드볼트·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삼일빌딩까지 시간의 결을 잇는 작업들을 거치며 저자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정상보다 다시 일어선 자리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봄보리는 빨리 자라지만 알이 가볍고, 겨울보리는 찬바람을 맞으며 느리게 자라지만 알이 단단하고 꽉 차 있다'라는 에필로그의 비유는, 자신을 봄보리인 줄 알고 살아온 한 건축가가 결국 겨울의 시간을 통과하며 단단해졌음을 담담히 고백하는 이 책 전체의 정수다. 출장수첩에 펜으로 눌러쓴 20여 권의 필드스케치 속에는 화려한 건물 대신 아이티에서 '쓸 수 있는 건축'을 선택한 결정의 순간, 볼리비아 해발 4,150미터의 약속, 팬데믹에도 파라과이 현장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살아 있다. 사람이 보이는 건축은 결국 사람이 보이는 삶에서 나온다는 명제 위에서, 저자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자신이 해온 일을 묵묵히 이어간다.
목차
006 추천의 글
014 프롤로그 —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건축
Root; 건축가의 뿌리
023 산동네에서 배운 공간 감각
028 그리는 것이 곧 정리하는 것
032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받쳐준 시간
040 야전삽에서 시작된 36년
048 거절 못 하는 성격이 만든 길
052 설계실 밖으로 나가니 보인 것들
Field; 현장의 기록
059 광양, 처음으로 사람이 보이다
064 아산, 집을 짓고 함께 울다
069 아이티, 쓸 수 있는 건축을 선택하다
078 볼리비아, 해발 4,150미터의 약속
086 콩고민주공화국, 박물관을 먼저 원한 나라
093 파라과이, 팬데믹에도 떠나지 않은 사람
100 콜롬비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106 과테말라, 다음 세대를 위한 일
110 에티오피아, 70년 전 은혜를 돌려주다
Essence; 사유의 기준
119 겨울을 견딘 사람만 아는 것
122 설계에서 기획으로, 기획에서 현장으로
128 나는 왜 건축을 하는가
132 네 명의 건축가, 하나의 소명
149 정림이라는 밭
158 쓰이지 않은 경험은 없었다
162 CM, 건축의 프로듀서
165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
Legacy; 시간의 유산
173 목양교회, 영혼을 위로하는 건축
180 시드볼트, 다음 세대에 건네는 건축
186 평창 개폐회식장, 짓고 쓰고 돌려주는 건축
190 망상오토캠핑장, 기억을 복원하는 건축
194 삼일빌딩, 오래된 건물에 내일을 잇는 건축
Sketch; 펜끝의 풍경
201 필드스케치를 시작하며
217 출장수첩에서 꺼낸 현장
276 에필로그 — 겨울을 난 보리
280 감사의 글
282 이해를 돕는 말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건축 책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의 건축은 사람이 없는 상태로 소개된다. 준공 직후, 아직 입주하지 않았을 때 찍은 사진들이다. 건축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구도를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 건축이 가장 잘 보인다는 말도 흔하다. 그런 사진들을 오래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겼다. 건축은 사람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정작 사람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건축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_프롤로그
좁고 반듯하지 않은 땅에 사람들은 각자 집을 지었다. 누가 설계한 것도 아니고, 도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땅의 생김에 맞춰 한 칸, 두 칸 올린 집들이었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산동네는 건축가 없는 건축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골목이 내가 처음 만난 건축이었다. 어떻게 공간을 만드는지, 사람과 길과 집이 어떻게 엮이는지, 교과서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배운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