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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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남부의 네카강 변에 있는 마르바흐에서 1759년 11월 10일 태어났다. 루트비히스부르크의 라틴어학교를 졸업하고, 카를 오이겐 뷔르템베르크 대공이 설립한 사관학교에 법학 전공 학생으로 1773년에 입학했으나, 3년 후 의학으로 전과하여 1780년에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대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러다 1782년에 쓴 〈도적떼〉의 원고를 들고 군주의 허락 없이 한밤중에 군영을 이탈하고, 만하임 극장의 무대에서 상연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절대군주 카를 오이겐 대공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그의 체포 명령을 피해 의사직을 포기하고 작가로서의 길에 들어선다. 1782년 9월 22일 밤,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 만하임으로 도주하고, 이후 만하임 극장에서 전속 극작가로 첫출발을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자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바이마르를 떠돈다. 그러다가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초빙되어 1789년에 예나로 이주한다. 여기서 역사와 미학 강의를 하지만 학생 수의 감소와 신병으로 얼마 후 사직한다. 실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괴테와의 만남이었다. 1794년부터 괴테와 실러의 본격적인 친교가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자주 만나서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많은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1802년에는 실러가 예나에서 바이마르로 이사를 해 그들의 친교와 공동 작업은 더욱 강화됐다. 이해에 작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추천으로 귀족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프리드리히 폰 실러’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805년 5월 9일 오랫동안 앓던 지병으로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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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양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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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독일 괴테인스티투트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 대학교 연극학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독일어 기초과정≫(1995), ≪우리 시대의 독일연극≫(1997), ≪독일 연극사≫(2002), ≪만나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2006), ≪이원양 연극에세이≫(2010)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2005), ≪베르톨트 브레히트≫(2007)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서푼짜리 오페라>(2006),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2008),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1987), <수족관>(1988),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1997),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2007), 실러의 <간계와 사랑>(2008), <빌헬름 텔>(2009), <발렌슈타인>(2012), <메리 스튜어트>(2015), 폰 호르바트의 <빈 숲 속의 이야기>(2009),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2011), 폰 마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공역, 2011), 롤란트 시멜페니히의 <황금 용/과거의 여인>(2012) 등이 있다. 2010년 7월 밀양연극촌에서 <햄릿> 공연 사진전 <햄릿과 마주보다>, 2013년 3월 12일부터 24일까지 주오사카 독일문화원 및 오사카 시 에노코지마 문화센터에서 공연 사진전 <한국 무대에 오른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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