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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이은상 사집

[큰글씨책] 이은상 사집

이은상 (지은이), 김지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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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이은상 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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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씨책] 이은상 사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시가
· ISBN : 9791128837623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19-07-17

책 소개

조선 중기 문신 이은상의 사 전편 38수를 담았다. 이은상은 앞선 사인들이 중국 명승지를 상상해 읊거나 여성 화자를 내세워 감상적인 사를 읊은 것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본 금강산의 경치를 읊고 실제 경험한 지인과의 작별의 수심을 읊어 낯선 중국의 사 문학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28수의 금강산 기행사는 눈에 보일 듯 실감 나는 묘사로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목차

1. 장상사(長相思)
2. 유초청(柳梢靑)
3. 여몽령(如夢令)
4. 장상사(長相思)
5. 점강순(點絳唇)
6. 청평악(淸平樂)
7. 억진아(憶秦娥)
8. 보살만(菩薩蠻)
9. 서강월(西江月)
10. 임강선(臨江仙)
11. 취도원(醉桃源)
12. 화당춘(畫堂春)
13. 금당춘(錦堂春)
14. 알금문(謁金門)
15. 학충천(鶴沖天)
16. 호사근(好事近)
17. 낭도사(浪淘沙)
18. 도원억고인(桃源憶故人)
19. 일락삭(一絡索)
20. 억강남(憶江南)
21. 망강동(望江東)
22.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23. 답사행(踏莎行)
24. 방초도(芳草渡)
25. 강남춘(江南春)
26. 자고천(鷓鴣天)
27. 유초청(柳梢靑)
28. 감자목란화(減字木蘭花)
29. 접련화(蝶戀花)
30. 석분비(惜分飛)
31. 억진아(憶秦娥)
32. 서강월(西江月)
33. 서강월(西江月)
34. 유초청(柳梢靑)
35. 서강월(西江月)
36. 유초청(柳梢靑)
37. 유초청(柳梢靑)
38. 유초청(柳梢靑)

해설
부록−조선 문인 이은상 사(詞)의 특징 고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소개

이은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황해도 연안(延安)을 본관으로 하며, 자는 열경(說卿), 호는 동리(東里)다. 1617년에 부친 이소한(李昭漢, 1598∼1645)과 모친 여주(驪州)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던 조부 이정구(李廷龜, 1564∼1635)는 조선 중기 한문학 4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외조부 이상의(李尙毅, 1560∼1624)는 1613년 위성공신(衛聖功臣) 3등에 녹훈된 바 있다. 또한 이은상을 포함한 집안 형제 대다수가 과거 급제 후 관계 요직으로 진출하는 등, 집안 전체가 학문에 힘쓰는 가풍으로 명망이 높았다. 연안 이씨 가문은 고려 말까지 안변(安邊)에서 가세를 키우다가 조선 건국 이후 오늘날의 서울로 옮겨 왔다. 본가 터전은 성균관의 서남쪽, 오늘날의 서울대학교 병원 자리로, 당시 지명으로는 관동(館洞)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신중한 성품이었다고 전하는 이은상은 한문학에 조예가 뛰어난 조부 이정구로부터 글을 배웠다. 16세경부터 수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많은 이들이 애석해했다. 하지만 그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해 1651년(효종 2)에 34세의 나이로 문과 을과에 급제했다. 설서(說書)로 있다가 1656년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했고, 1659년에 월과제에 세 차례 장원한 실력을 인정받아 1660년 교리(校理)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1663년에 승지, 1666년에 대사간, 1668년에 도승지, 1674년에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그 외에도 호조참판, 예조참판, 병조참판, 공조참판 등 제조(諸曹)를 두루 거쳤다. 또한 호남과 관서의 시험관을 담당했고, 외직으로 안변부사(安邊府使)와 여주목사(驪州牧師)에 제수되었으나 신도비 기록에 따르면 부임하지 않았다. 1674년에 현종(顯宗)이 세상을 뜨자 애책문(哀冊文)을 찬진하는 중요 임무를 맡았다. 이는 이은상이 문신으로서 가진 뛰어난 필력을 관계에서 인정받았음을 보여 준다. 이은상은 또한 시사(詩詞)에도 능해 다수의 작품을 지었다. 현재 총 1059수가 그의 문집인 ≪동리집(東里集)≫에 전한다. 문신으로서의 뛰어난 실력과 소탈한 성품을 바탕으로 이은상은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했다. 특히 효종(1649∼1659 재위)과 현종(1659∼1674 재위)에게 측근으로 인정받으며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은상은 평소 소탈한 성품이면서 임금에게도 할 말은 하는 강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1674년 제2차 예송 논쟁의 후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이해에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가 별세하자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 문제가 재차 불거지면서 남인이 득세하고 당시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실각했다. 남인 세력에 패배한 송시열이 결국 덕원, 거제 등지로 유배를 떠나자, 이은상은 이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병을 핑계로 조회에 불참하다가 휴가를 청해 관동으로 들어갔고, 결국 관직에 정식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1678년에 생을 마치게 되었다. 이은상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신도비에 몇 가지 전한다. 이은상은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을 항상 애통해했으며 그들에 대해 말할 때면 반드시 목이 메어 울었다. 제사는 풍족하고 깨끗하게 하도록 힘썼고 나이가 들어서도 친히 직접 모셨다. 또한 먼저 죽은 사촌 아우 둘의 장성한 딸들이 혼인하지 못하자 적극적으로 나서 혼사를 성취시켰다. 병자호란 때 고아가 된 어린 조카딸은 데려다 애지중지 키웠는데, 남들은 그녀가 친자식이 아님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누이가 나병으로 고통 받자 당시 이은상은 60세의 고령임에도 몸소 약을 구해 누이를 돌보았으며 훗날 친히 염습했다. 정이 많고 따뜻한 인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은상의 처 밀양 박씨는 동부승지 박안제(朴安悌, 1590∼1663)의 딸로, 부부는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이윤조(李潤朝)는 과거 급제 후 사관(史館)에 들어가 검열(檢閱)이 되었고, 딸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에게 출가했다. 김만중은 예조판서, 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학자이자, 많은 시문과 잡록,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을 남긴 한국 문학사의 주요 인물이다. 이은상은 일찍이 사위 김만중의 문학적 소양을 알아보고 임종 시 다른 가족들은 물러나게 하고 유문(遺文)을 그에게 맡겼다. 김만중은 이은상의 유고를 산정(刪定)한 뒤 아들 김진화(金鎭華)에게 전했다. 1702년, 이은상의 외손 김진화는 ≪동리집≫을 간행했다. 이은상은 5년 전 사별한 아내 박씨 묘 우측에 합장되었다. 현재의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리 150-7로, 이곳에 조성된 부친 이소한과 이은상, 이유상 형제의 묘역에는 이 세 사람의 신도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은상의 신도비는 그 아내 박씨의 생전 부탁대로 종질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연보와 행록을 편술하자, 이를 토대로 이이명(李?命, 1658∼1722)이 비문을 짓고 민진후(閔鎭厚, 1659∼1720)가 글씨를 썼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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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장염사학 이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송사삼백수≫(을유, 2013), ≪협주명현십초시≫(공역, 학고방, 2014), ≪이제현 사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학술 논문으로 <조선 문인 이은상 사의 특징 고찰>(2017), <이청조 관련 논사절구의 기술 관점 연구>(2018) 등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옛 시가를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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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8. 보살만(菩薩蠻)

다시 50리를 가 온정에 이르렀다. 고성 태수인 이종사촌 형님 이차산 사군이 목욕하는 곳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4년간 떨어져 있다가 먼 외지에서 만났으니 그 즐거움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에 온정에서 목욕을 했는데, 사촌 형이 본 도의 관찰사가 곧 경내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돌아갔다. 이에 목욕한 곳에서 숙박했다. 12일에 식후에 온정을 출발해서 15리를 가 발연에 도착했다. 폭포가 암석 사이로 몇 리를 날듯이 흐르는데, 소리가 숲과 계곡을 뒤흔든다. 이곳이 바로 스님들이 빠르게 흐르는 물살을 타고 부딪치며 내려왔던 곳으로, 역시 한 폭의 뛰어난 장관이었다. <보살만>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조렸다.
又行十五里抵溫井. 高城太守表兄李使君次山氏出待于浴所. 離四年, 會合於天涯, 喜可知也. 仍浴溫井, 表兄聞本道方伯將到境先還, 仍宿浴所. 十二日食後發溫井, 行十五里抵鉢淵, 瀑布飛流巖石間數里, 聲震林壑, 使僧徒坐馳水激處衝突而下, 亦一奇觀. 口占菩薩蠻.


짙은 구름 말끔히 걷히니 하늘은 마치 닦아 낸 듯하고
봉래산은 천 겹의 옥을 드러내었다.
가을 해가 선방을 비추고
산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닦아 준다.

우렁찬 우레가 만 골짜기에 울리고
폭포가 천 척 높이에 흩날린다.
먼 길 온 나그네는 되레 피로를 잊고
자리를 여러 번 옮겨 가며 누워 바라본다.

濃雲捲盡天如拭,
蓬萊露出千層玉.
秋日照禪房,
山風拂面?.

殷雷喧萬壑,
瀑布飛千尺.
遠客却忘疲,
耽看席屢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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