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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0031958
· 쪽수 : 600쪽
· 출판일 : 2018-09-0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에필로그
외전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저기…….”
“네?”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사람이 군인이라 놀랐고, 그 군인이 전에 본 사람이라 더 놀랐다.
“청평 나가는 버스 지나갔습니까?”
“아, 아니요. 저도 기다리는 중인데…….”
말을 얼버무리며 효원은 괜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좁다 좁다 했더니 여기서 또 보는구나. 그게 신기하면서도 저쪽은 절 기억도 못 할 텐데 왜 혼자 의식하느냐 꾸짖듯 들뜨는 마음을 꼭꼭 눌렀다.
“며칠 전에…… 청평에서 버스 정류장에 계셨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네? 아…… 네.”
말 한 마디 한 것도 아닌데 어쩜 그걸 기억했을까. 역시 군인의 힘일까? 억지로 눌러둔 마음이 다시 간질간질 기지개를 켰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들어보는 군인아저씨의 목소리가 어쩐지 정겹고 낯설지가 않다.
“시간표에 잘 맞춰야지 아니면 놓치기 십상이거든요.”
“아,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여기는 버스도 빨리 끊겨서 놓치면 다른 방법도 없죠.”
“……잘 보고 다녀야겠어요.”
못 믿을 사람도 아니고 군복 입었으니 저랑 똑같이 나랏일 하는 동료일 텐데 대화 하나에 경계심을 가질 필요야 있겠나 싶어 마음을 느슨히 했다. 서울이면 이런 곳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어색했겠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저기, 그쪽도…… 청평에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시나 봐요.”
“네. 부대는 여기가 맞는데 나갈 일은 자주 없어요.”
“아아…… 그날도 정류장에 계시기에 혹시나 해서.”
“…….”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녀가 정류장 앞에 탑처럼 쌓아놓은 돌더미를 내려다보자 옆자리 남자도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렇다고 뭘 보는지 확인할 만한 사이도 아니라 살랑대는 봄바람에도 목이 탔다. 빨리 이 어색함을 떨쳐내고 싶어 얼른 버스가 왔으면, 애꿎은 시각만 연거푸 확인했다.
“그날은 누구 기다리다가요.”
“네?”
“누구 좀 기다리느라 정류장에 가 있었죠.”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잠시 숙이던 그녀가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가 다시 피했다. 정확히 현주의 타입이고 확실히 잘생겼다. 그런데 그날에 이어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 꽤나 심란했다. 만약 그날 정류장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분명 TV 어딘가에서 본 배우라 생각했을지도.
“아아, 마중 나가셨구나.”
“마중은 아니고 어머니가 하도 재촉에 재촉을 하셔서요. 꼭 전화 받아야 된대서 기다리다가 잠시 밖에 나왔는데, 혹시 제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잠깐. 일단 거기까지.
불길한 예감이 등을 타고 찌릿거렸다. 뭔가 맞물릴 듯 맞물리지 않는 상황에 기억을 더듬다 살짝 손을 세워 얼굴을 감췄다.
“휴대전화도 놔두고 나와서 전화도 못 해서요. 한참 쳐다봐도 못 알아채기에 일부러 모른 척하나 그랬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 아니겠죠.”
“내가 마중 안 나가면 곧 쓰러져 산골에서 미아 될 여자처럼 어머니가 하도 말씀하셔서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그, 그러셨구나.”
기다리던 사람이 ‘여자’라는 것까지 밝혀지자 효원은 이번에는 등을 돌려 몸까지 가리려 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자책감을 가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일하던 중이라 시간도 없어서 일단 확인하려고 길 건너는데 다른 차 타고 가는 거 보니 그 사람이 아닌가 보더라구요.”
“아아…….”
아니겠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봐도 어렴풋하던 누군가가 아니겠지.
“그래도 마지막으로 전화나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설마 여기 있으면서 연락 한 번 없을 만큼 매정하지야 않겠지요.”
툭툭, 그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눌러대는 번호의 신호음이 어딘지 익숙했다. 사색이 된 효원이 얼른 휴대전화를 끄려다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안 돼.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했지만 결국 그가 더 빨랐다. 흙바닥 위에서 벨소리가 처량히 울리자 효원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러나 다급하게 랩을 읊었다.
“어머, 오빠. 저 불당동 살던 안효원이에요.”
빙그레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남자의 표정이 조금 음산하고 즐거워 보였다.
『어머, 혹시 정석 오빠세요? 어쩐지 그랬구나. 긴가민가했거든요. 너무 오랜만에 봐서 몰랐네요. 번호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번호도 잘못 보내셨지 뭐예요. 웃기죠? 하하…… 기다릴 거라 생각도 못 했는데 이런 데서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분명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분명히 그러려고 입을 뗐는데!
‘나 바보야?’
이미 늦은 일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지금부터라도 자연스러워야 했다. 효원이 최대한 억지 미소를 짓자 남자의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 정색하듯 굳었다.
“안효원, 너 연기 많이 늘었다?”
“아하하…….”
“이제 코는 안 흘리네?”
음울한 미소와 까칠한 말투에 입을 떡 벌리자 그사이에 남자가 한층 더 가까이 붙었다.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확실히 기억났다, 이 오빠.
이만하면 다 됐나?
툭툭, 휑한 방을 둘러보던 효원은 손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