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3190463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25-12-12
책 소개
이런 불꽃을 만나는 건 드문 행운이라 기뻤다.”
_소설가 조예은
오랜 시간 떠도는 기억과 혼을 머금고 살아 있는 집
욕망이 떠도는 적산가옥(敵産家屋) 안에 깃든
엄혹한 시대와 강인한 사랑, 뜨거운 생의 기록
『파친코』. 『작은 땅의 야수들』의 계보를 잇는
시대와 욕망, 사랑과 구원의 장대한 대서사극
배명은의 『수상한 한의원』, 백승연의 『편지 가게 글월』, 정명섭의 『암행』 등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지평을 넓혀나가고 있는 출판사 텍스티(TXTY)가 2025년 12월, 야심 차게 준비한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2021년 단편 「꽃산담」으로 계간 《미스터리》 가을호 신인상을 수상하고 2023년 「해녀의 아들」로 제17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수상하며 미스터리·추리 장르에서 필력을 인정받은 박소해 작가. 그가 장고 끝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허즈번즈』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주체적인 의지와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혼란스럽고 비극적인 시대에서 ‘여성’은 가장 약자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주인공 ‘수향’은 자신을 옥죄이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삶의 방향키를 스스로 돌리며 원하는 곳을 향해 ‘눈물로 길을 내며’ 나아간다.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수향의 여정은 마치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를 연상시킨다.
『허즈번즈』라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수향은 자신의 여러 ‘남편들’을 거느리고, 지배하고, 때로는 자애롭게 아우르고 포용하며, 유구한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과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역사의 상흔에도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내면의 성장을 거듭하며 자신의 한계를 경신하는 수향과, 수향을 둘러싼 여러 명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남편들. 장엄하지만 음산하고 기이한 적산가옥이라는 배경이 만나 『허즈번즈』는 아슬아슬하면서도 관능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파친코』 『작은 땅의 야수들』의 계보를 잇는 시대와 욕망, 사랑과 구원의 장대한 대서사극이 펼쳐진다.
음산하고 불길한 적산가옥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욕망, 파멸과 구원의 대서사극
한국의 ‘셜리 잭슨’을 꿈꾸는 신예 박소해가
장고 끝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첫 단행본 『허즈번즈』를 통해 우리에게 첫인사를 건네는 박소해 작가는, 이미 미스터리·호러 장르에서는 필력을 인정받은 ‘준비된 신예’다. 박소해는 2021년 「꽃산담」으로 계간 《미스터리》 가을호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단편소설 「해녀의 아들」로 제17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수상했다. 『허즈번즈』는 집필 기간을 제하고도 자료 조사와 퇴고 과정에만 2년을 쏟아부은, 장고 끝에 내놓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상흔 속에서 탄생한 ‘수향’은 일견 평범한 듯 보이는 소녀지만, 단단한 내면으로 삶을 일으켜 세우며 시대의 비극 위에 자신의 욕망과 주체성을 선명하게 새겨넣는 인물이다. 『허즈번즈』의 첫 문장에서 수향은 “해방은 남자의 것이었다.”라고 선언한다. 1945년, 36년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찾아온 조국의 해방 속에서도 억압받는 여성의 삶은 이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체감하며 “해방은 단지 일본인의 자리를 조선인 남자가 차지한 것에 불과했다”라고 통찰한다. 수향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진정한 자신의 해방을 꿈꾸고 있다.
수향은 제주에 살던 어린 시절, 원인 모를 무병을 앓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며칠간 신들린 듯이 ‘추는굿’을 치러내며 영적 존재(영감신)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영계와의 접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심방(무당)이 된다. 외할머니를 여의고 낯선 경성으로 오게 된 수향은 자신의 영적 능력을 바탕으로 망령이 떠도는 나가스 저택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비밀에 싸인 적산가옥이 자아내는 오컬트적인 요소가 일제강점기와 조국 해방, 뒤이은 6·25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와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 『허즈번즈』의 장르적·서사적 쾌감은 극대화된다.
수향은 분명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삶과 의식은 지극히 능동적이고 현대적이며, 그는 자신이 품은 욕망에 대단히 충실하고 거침없이 파격적이다. 수향은 부모님이 주도한 사기극에 속아 한꺼번에 세쌍둥이와 결혼하게 되지만, 오히려 “새끼 개 세 마리를 한꺼번에 품는 어미 개처럼” 세 남자를 동시에 점령하고 거느리며 공평한 사랑을 베푼다. 세쌍둥이는 아버지인 쌀가게 노인의 압제 속에서 전쟁 징집을 피해 숨어 살며 제때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들이다. 그런 세쌍둥이가 수향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 괴롭혔던 압제자들을 죽이되, 누구의 손으로 죽였는지는 우리조차 모르게 하자.”라고 다짐하고 마침내 존속살해의 비밀을 공유하며 공범이 된 순간, 이들은 한 차원 더 성장하며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연인‘들’이자 가족으로 재탄생한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원가족으로 상징되는 구시대의 틀을 산산이 깨부수고 새로운 애정과 관계의 형태로 만들어진 가족, 그리하여 수향과 ‘남편들’은 “이제 해방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재차 선언하며 역사적 해방뿐만 아니라 삶의 해방, 자신의 온전한 해방에까지 나아간다.
“맹심허라. 진짜 용헌 심방은 따로 신당이 필요 어신다.
세상천지가 다 느 신당이라.”
독자를 신들린 굿판의 한가운데로 소환하는
‘준비된 신예’ 박소해 작가의 탄탄한 필력
박소해 작가는 ‘수향’이라는 인물과 『허즈번즈』의 배경을 더욱 선명하게 구축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자료 조사와 철저한 고증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소설 초반부에 등장하는 제주도의 전통 굿인 ‘추는굿’과 ‘서우제소리’의 묘사와 재현은 마치 독자를 굿판으로 직접 소환하는 것처럼 압도적으로 생생하며, 인물들이 구사하는 구성진 제주 방언은 섬세한 말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소설의 주무대인 경성 나가스가(家)의 대저택 묘사 역시 박소해 작가의 탄탄한 필력이 돋보인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적산가옥, 장엄하면서도 기괴하고, 음습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지닌 나가스 저택은 마치 저택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제3의 등장인물처럼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가스 저택’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속에서 인물들 간의 은밀한 욕망은 더욱 극대화된다. 부록으로 수록된 연표와 나가스 저택 배치도는 독서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이제는…… 네가 나의 나라야.”
역사가 다 기록하지 못한 사그라진 청춘들
지나간 시대의 뒷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편지
세쌍둥이 남편들과 수향이 가부장제 하의 원가족이라는 구습을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냈다면, 또 다른 ‘남편들’ 중 하나인 마사키는 수향과 역사도, 시대도 침범할 수 없는 관능적이고 격렬한 관계를 맺는다. 처음에는 목적을 가지고 나가스 저택에 들어오기 위해 수향 곁을 맴돌던 마사키는 우연히 세쌍둥이와의 정사를 치르는 수향을 목격한 이후 그동안의 금욕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욕망에 눈뜬다. 수향 역시 그런 마사키를 일부러 저택 안으로 들이며 그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의사인 마사키는 수향이 세쌍둥이의 아이를 임신하자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본다. 수향 역시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 마사키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마사키였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한편 6·25 참전 중 소련의 전투기에 격추당해 나가스 저택으로 피신 온 미 공군 대위 월터의 등장으로 ‘남편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감돈다. 그러나 세쌍둥이와 마사키, 월터는 나름의 우정과 연대감을 쌓으며 수향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남편들’의 공동체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갈 즈음, 수향은 자신이 마사키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수향은 마사키와 함께 정착하는 삶 대신,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삶을 택한다. 전에 없던 애정의 형태를 발견하고, 그 애정으로 이뤄진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생을 불태우는 격렬한 사랑의 힘으로 살아온 수향이지만 그 강렬한 사랑조차 수향을 이길 수 없다. 누구보다 강인한 사랑을 한, 그러나 사랑보다 더 강인한 여성인 수향은 아무도 내딛지 않은 길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그 길에 눈물이 함께할지라도, 눈물이 흐르면 길이 되기에.
목차
등장인물 소개 - 004p
나가스 저택 배치도 - 006p
Prologue 1990년, 봄 - 013p
1부 1945~1950년, 수향 - 027p
2부 1945~1950년, 마사키 - 187p
3부 1950~1951년, 남편들 - 339p
Epilogue 1990년, 봄 - 493p
허즈번즈 연표 - 516p
작가의 말 - 520p
저자소개
책속에서

“눈물도 물이주게. 물이 흐르멍 길이 나주게.”
수향은 그제야 울음이 가라앉았다.
제주도는 마른 하천이 많았다. 평소에는 하천인지 맨땅인지 구별이 안 갔다. 하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하천에 물이 거침없이 흘러 물길을 이루었다. 굉음을 울리며 거세게 흘러가는 물길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물이 길을 낸다는 말에 수향은 위로를 받았다. 아무리 슬퍼도 그 슬픔을 견디면 반드시 길이 생긴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조선 사람들에게 삶과 영혼이 찢겨나간 시간이었다.
1945년, 조선 사회는 일본군과 헌병 경찰이 총검과 채찍을 들고 사람들을 탄압하는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언어와 문화 말살, 잔혹한 폭압, 토지 수탈, 강제징용, 정신대 동원, 창씨개명. 조선의 어린아이들은 “순사 온다”는 한마디에 울음을 뚝 그쳤다.
많은 조선 사람들이 해방에 감격했다. 온 골목과 대로마다 환희의 만세 물결이 끝없이 이어졌다. 일제는 한일합병 전부터 애국가가 한민족의 단결과 독립 정신을 고취한다며 애국가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것을 금지했다. 수향은 국민학교에서 기미가요를 불렀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해방일이 왔건만 그 누구도 오랜 시간 금지된 애국가 가사를 정확하게 외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기억을 더듬으며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맞춰 서툴게 애국가를 불렀다. 3·1 만세 운동 이후로 태극기를 소지하는 것도 금지된 탓에 사람들은 일장기 위에 검은 먹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흔들었다.
하지만 해방된 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수향은 해방을 실감하지 못했다.
수향은 여전히 해방되지 않았으니까.
양손에 든, 생선과 채소가 미어터질 것 같은 바구니가 그 증거다. 경성 아버지 집에서 지낸 몇 년은 감옥같이 답답하기만 했다. 언젠가는 해방될 수 있을까?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바람처럼.
제주의 바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