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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30627847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0-01-20
목차
서설 국사를 보는 눈
1장 선사시대와 우리 민족의 형성
1. 선사시대의 전개
1) 인류의 기원과 구석기인
*빙하기
2)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탄생
2. 우리나라의 선사시대
1) 구석기시대
2)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
3.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1) 홍산문화와 민족 귀속성
2) 요하문명의 내용
*민족의 기원
*동이문화와 삼첩층
*중국은 왜 역사공정을 계속할까?
*고대인들의 치아 수술 흔적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에 대한 시각
2장 고조선과 열국시대
1. 고조선
1) 단군조선의 건국과 강역
*고조선의 거수국들
*고조선
2) 기자조선과 기자동래설
*중국의 다른 기자 유적
3)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갈등
*패수의 흐름
4) 조한전쟁
*고조선 항신들의 운명
5) 낙랑군과 한사군의 위치
6) 고조선의 사회와 문화
*고대 중국인의 지리 개념
*갈석산과 난하
*낙랑군은 313년에 멸망했나?
*낙랑군 위치에 대한 세 학설
*고조선 중심지에 대한 세 학설
*신의 손, 세키노 다다시
*낙랑군 호구부
2. 열국시대
1) 열국사의 시간과 강역
*중국과 한국의 역사 서술
2) 부여
*부여의 건국 사화
*부여
3) 고구려
*고구려의 건국연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4) 옥저
*개마대산은 개마고원인가?
5) 읍루
6) 예
7) 삼한
*신채호의 전후 삼한론
8) 최씨낙랑국
9) 신라
*난생사화
*신라는 대륙에도 있었는가?
10) 백제
*비류백제의 수도 미추홀
*요동태수 공손도 일가와 대방군의 위치
*생각하는 한국사3 백제의 건국연대
*백제라는 국호의 의미
3장. 열국시대에서 사국·삼국시대로
1. 가야
1) 가야 건국
2) 가야와 왜
2. 임나일본부설 비판, 가야는 임나인가?
1) 《일본서기》 추종하는 강단사학
*주갑제라는 요술 방망이
2) 북한학계의 분국설
3) 분국설을 비판하는 남한 강단사학
4) 가야 멸망
3. 고구려의 성장
1) 고구려와 선비족의 각축
2) 요동 정세의 혼미와 백제와 공세
*낙랑군 교치설 비판
3) 고구려의 흥기
4) 광개토대왕과 비류백제
*덕흥리 고구려 벽화무덤
5)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4. 백제의 시련과 흥기
1) 고구려의 남하와 개로왕의 전사
*구이신왕과 일본의 소아씨
2) 해양백제와 후국 왜
*왜 5왕은 누구인가?
3) 대륙백제의 요서 지역 장악
5. 신라의 흥기
1) 마립간에서 왕으로
*신라 김씨 시조는 성한왕?
2) 삼국의 격돌
*진지왕의 사망 원인
*신라 임금에게 내린 낙랑군공
*무왕은 진평왕의 사위인가?
6. 동아시아 대전
1) 고수 대전
2) 고당대전
*경관
7. 삼국통일 전쟁
1) 전쟁의 발단과 백제의 멸망
*일본 열도의 조선식 산성
2) 대제국 고구려의 종언
*당나라 안동도호부는 지금의 평양이었나?
3) 신라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통일신라의 강역은?
*한국어와 일본어의 계통
*백제 유민 흑치상지와 고구려 유민 이정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북한 역사학은 그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를 떠나서 서술이 일관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남북한 역사학계가 걸었던 사학사史學史가 있다. 이기백이 유물사관으로 분류한 학파는 사회경제사학이라고 불렀다.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로서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함께 일제 식민통치에 맞서 싸운 학자들이었다. 북한은 분단 직후부터 역사학을 체제경쟁의 주요한 수단으로 삼았는데, 그 일환으로 1946년 7월 말경 북한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역사학자들을 대거 초청했다... 북한학자 홍기문은 1949년 『력사제문제』에 북한 역사학계의 과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력사학자들은 조선력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 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 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 『력사제문제』, 1949)”... 1949년에 북한 역사학계는 ‘낙랑군=평양설’과 ‘임나=가야설’을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그 극복에 나섰다.
_<서설 : 국가를 보는 눈> 중에서
1983년에는 요녕성 건평建平현 대릉하 상류의 우하량牛河梁에서 거대한 제사유적과 적석총積石? 무덤군 등이 발견되었다. 우하량 유적의 구릉에서는 제사 유적과 신전神殿 및 소조塑造 신상神像 등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동이족의 신성神性 숭배 성향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단壇:제단·묘廟:신전·총塚:무덤이 완비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강력한 고대국가가 등장했음을 말해준다. 흥륭와 문화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은 한족漢族들의 문명인 황하문명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베리아 남단→몽골초원→만주→한반도→일본열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계통 문화와 연결되는 동이족 문화이다. 이는 또한 이 지역의 우리 선조들이 자신들을 하늘의 자손, 즉 천손天孫으로 보았음을 말해준다... 홍산문화에서는 곰, 새, 돼지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의 옥기가 출토되어 곰, 새, 돼지 토템족들의 공존을 암시한다. 특히 곰과 새는 고조선과 동이족 국가 은殷나라의 주요 토템이다. 옥기는 계급의 발생과 제정일치 시대를 말해주는데 이 역시 초기 고조선 사회의 모습과 같다.
_<1장-3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중에서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해서도 세 학설이 있다. 남한 강단사학은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대동강 유역으로 보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만주에서 비파형 동검 같은 고조선 유물이 쏟아지자 고조선이 아니라 산융山戎·동호東胡 유물이라는 중국 동북공정 논리를 추종하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고조선이 평안남도에 있던 작은 소국이라고 주장하다가 현재는 요녕성 요하까지 확대시켰다. 그러나 고조선 중심지는 현재의 요동에서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을 내놓았다...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자 다수가 추종하는 이동설의 약점은 관련 사료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북한은 고조선의 중심지인 ‘왕검성을 현재의 료하(과거의 렬수) 류역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서기전 5~4세기 때까지는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하북성 난하였으나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일부 강역을 상실한 서기전 3~2세기 이후에는 요녕성 대릉하였다고 보고 있다. 남한 민족사학계는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하북성 난하까지 고조선의 강역이었다고 보고 있다.
_<2장-1 고조선. *고조선 중심지에 대한 세 학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