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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30651194
· 쪽수 : 280쪽
책 소개
목차
조선 사람 히라야마 히데오
제3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심사평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예열을 위해 시동을 걸어둔 프로펠러가 맹렬히 돌아간다.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부속품들은 일사불란하다. 동체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격렬한 진동에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난다. 혈관을 도는 피의 흐름이 빨라진다. 도색이 벗겨진 부분이 손바닥에 이질감을 남긴다. 날개를 딛고 올라가 조종석에 앉는다. 계기반의 바늘들은 정상 위치에 있다. 조종석 덮개를 닫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얼굴을 비쳤으니 내 도리는 한 셈이다. 집을 비운 히라야마 상이 고맙기만 하다. 헛걸음을 했는데도 콧노래가 나온다. 신의주나 경성에서 전보를 칠까 잠깐 망설였다. 양부모에게 애틋한 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말았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숨 막힐 듯했던 집에서 그나마 좋은 기억은 바나나뿐이다. 그림으로만 보던 그 열대과일을 먹었을 때의 황홀함이란. 잠자던 혓바닥의 미각세포들이 일제히 깨어나 아우성을 쳤다. 미끈거리고 부드러운 식감은 생경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낙하지점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추락했을 때를 대비해 지정해 둔 집결지는 개나 주라지. 비상식량이 든 휴행낭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오게 사선으로 멘다. 달리면서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찡그린다. 햇빛이 강렬하다. 손바닥을 이마에 붙여 차양을 만든다. 근접전을 벌이는 전투기들이 쫓고 쫓긴다. 지상에서 보니 생존을 위한 사투인데도 꼬리잡기 놀이처럼 한갓지고 여유롭다. 이제 저들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