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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3769
· 쪽수 : 162쪽
· 출판일 : 2018-10-2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정면을 맞이한다
동굴 /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 / 당신이 온 자정 / 정면을 맞이한다 / 무창포 / 노랑 / 불가능을 검색한다 / 스크린도어 / 잊은, 혹은 익은 / 그는 돌아갔을까? / 숲에 꽂히다 / 계단 조심 / 동부분식 / 평상의 계획 / 오래된 서가
제2부 반구대 암각화
이웃 사람 / 꾸러기 수학 교실 / 섬으로 온다 / 온기가 있던 자리 / 겨우살이 / 측백나무 병동 / 제대로 된 금형 틀은 어디 있을까? / 처용 / 혁명의 배후 / 가시박 / 서해 건어물 / 반구대 암각화 / 언양읍성 / 청소 / 붉은바다거북 / 소금포
제3부 발의 대화
가을 / 답십리로 11길 / 양평동 랄랄라 / 풍향을 가늠한다 / 초콜릿 / 레고 / 고백 / 반지하 / 소멸엔 핑계가 없다 / 아버지는 왜 잠귀가 밝은가 / 빈집 / 발의 대화 / 애피타이저 낑깡 / 초식동물의 아침은 늑골부터 가렵다 / 봄
제4부 질문
제주 / 타라우마라족의 사슴 사냥 / 11월 / 등대에 걸린 아침 / 악수 / ?다리인다리 / 4호선 오이도행 / 통풍이 오는 오월 / 누가 고래를 숨겼을까 / 부고 / 겨울 / 장마 정거장 / 질문 / 거리
작품 해설:‘당신’의 시학 - 맹문재
저자소개
책속에서
불가능을 검색한다 ― 최종범
우리는 검색으로 만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지를 치는
자음과 모음을 적절히 섞어야 한다
한 글자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연관
막상 다가서면 점점 다른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길을 잃어버리면 네가 부른다
부르지 않아도 쓸모 있어지고 싶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아니라
자주 못 듣는다고 했다
검색은 못 들은 척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결과가 궁금하지 않아도 너를 검색하고
내 엄지는 너의 엄지와 다르지 않아서
물푸레나무가 서성이는 방법이
습기 때문이라고 쉽게 알아낸다
너를 보면 자꾸 손에 땀이 차는 것도
밑동이 허전해서라고
검색으로 검색되지 않는 이유를 대지만
아이를 두고 자살을 선택한,
선택을 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도무지 검색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이 이유였을지 모른다
난 네 앞에서 불가능을 검색하고
다시 검색한다
거기 있는 너와 여기 있는 내가
검색으로 만난 불가능한 이유와
자신을 타살한 불가능은
불가능에게 곁을 주지 않아
불가능으로 묻혀버린다고,
이곳 어딘가 불가능을 어림잡으며
가끔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아이의
마른 손을 잡고 함께 서성였을 네가
바로 보기 불가능한
환한 사진으로 웃어서
불가능하게 웃고 있어서
소금포 ― 흔적 8
바다를 메운 자리에 꽃이 피었다
살아가다보면 꽃보다 꽃이 핀 자리가 더 눈부심을
바람이 한결 가벼워서 함께 피어나던
한 생이 다른 생으로 이어지던 자리
길은 마치 물결처럼 반짝이고, 물결이 지나간 곳에
한 움큼씩 쏟아지던 굵은 소금들
자신의 모습을 덜어낼수록 더욱 단단해져
바라보는 것들이 무서워 담장이 올라갔다
시멘트벽에 갇힌 노동은 더 이상 경계를 넘지 못해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려다 말고
공장 밖을 서성이다 돌아선다
당신의 유일한 나머지를 짊어지면 어깨를 조여 오는
바다를 채우던 날의 갯내 가득한 기억
구름은 언제나 기억 너머를 향해 흘러간다
누군가는 구름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구름 위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한때는 거대한 크레인이 구름은 아닌지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구름보다 높은 크레인은 없어
구름 위에 서는 법은 구름보다 높이 올라가야만 할 뿐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의 이름을 알아야 할 뿐
그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바닥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얼굴은 푸르게 빛나고
함께 걷는 걸음만으로도
당신의 손길이 발목을 따스하게 하던
이제 그 길은 정말 사라지고 없는가
당신이 짊어진 것을 들여다볼 순간도 없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바닥의 이름을 불러볼 순간도 없이
하지만 그게 구름이 떠다니는 이유라는 걸
결국 길이란 것도 떠도는 것들을 위한 흔적이니
굳이 당신의 짐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어
다만, 우리가 딛고 있는 바닥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다
메아리처럼 둥둥 북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당신의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그저 흔적을 향해 눈길 한 번 주고
다시 가야 하는 것, 다시 걸어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