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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14629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9-10-0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리만의 기하학
초록 식탁과 빨간 의자와 고양이가 있는 정물화
승영(承影)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어
검선(劍仙)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야뇨
작품 해설:탈근대의 리얼리스트 _ 김주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리만의 기하학』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시간이 정지된다면 모를까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정지된다, 시간이…… 암전 상태의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시간을 현재 이 시점에 묶어두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이 허무맹랑한 상황이 더 부풀려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베레조프스키와 박영한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겪은 현실을 바탕으로 나의 이야기를 쓰되 지금 이 순간에서 이야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상황과 시간을 무한의 고리 안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 또한 영원히 이 순간에 멈춘 채 시간의 고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곧 김 실장의 소름 끼치는 전화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영원히 이 시간 안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며, 『리만의 기하학』의 비어있는 여백을 찾아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글을 다 쓴 다음에도 『리만의 기하학』 원본에 다른 이야기를 써 넣을 수 있는 여백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펜을 찾아 들었다. 남은 여백에 써 넣을 새로운 이야기는 박영한과 내가 시간의 무한 고리에서 빠져나가는 내용이 될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펜을 놀려 『리만의 기하학』 여백에 글을 써 넣기 시작했다.
허둥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논리적이면서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만약 김사강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고, 주랑과 나의 만남이 김사강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소설을 위한 구상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김사강의 소설은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이 논리에 의한다면 그녀에게 가는 길이 사라지고 주랑의 존재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됐다. 김사강은 나와 주랑이 등장하는 소설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생각들을 K 박사에게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소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를 새롭게 다시 쓰기로 작정했다. 소설을 씀으로써 내 앞에서 사라져간 것들이 되돌아오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하나둘 문장을 써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