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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6722
· 쪽수 : 162쪽
· 출판일 : 2020-05-2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먼 곳
국밥집 가서 밥 한 숟가락 얻어 와라 / 장미의 곁에 있는 두 얼굴 / 1980년 / 먼 곳 1 / 먼 곳 2 / 한순간만이라도 이미지를 / 아픈 수업 / 아버지 / 그 술집 / 푸른 하늘 푸른 옷 / 어머니 / 일상 1-1 / 먼 곳 3 / 먼 곳 4
제2부 생의 프리즈
슬픈 방 1 / 초대 / 슬픈 방 2 / 그 애의 수첩과 선생님, 길 / 4월 그 가슴 위로 / 속보, 나의 길 / 7·9대회 / 단식 수업 그리고 철야 농성 / 바람에 종이 한 장 / 꽃 / 생의 프리즈-절규 / 볼펜을 팔면서 / 여행자와 천 원 / 장밋빛 인생
제3부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별이 빛나던 밤이 흐르는 병 속의 시간 / 침묵 수업 / 유동 뷰티 / 시간의 색깔, 길 /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 가난한 남자의 파란 춤 / 노란 티셔츠 / 카페, 가난한 비 밖 / 레인, 감청색 그 청년 / 빈집 / 7월의 아침 / 그리워할 사람, 그리워하는 사람
작품 해설:남민전의 계승 - 맹문재
저자소개
책속에서
속보, 나의 길
― 존재함을 위하여
가지 않으면 길이 생기지 않는다.
5월 14일, 16명이 먼 곳에서 전남대까지 왔는데,
장학사와 교장과 교감이 정문 봉쇄로 길을 막았다.
나는 기어이 광주·전남 지역 노조 발기인 대회장으로 갔다.
5월 28일, 아침 7시경 대절 버스가 목포에서 떠났다.
오후 1시에 전교조 결성대회가 개최될 한양대를 향해서.
결성대회를 원천 봉쇄할 거라는 뉴스를 들었기에,
더욱 한양대로 가야 한다는 심정이 절실해서.
일로에서 전경이 10시를 넘길 때까지 길을 막아
광주 진입로에서도 길을 막아 12시를 훨씬 넘겨버렸다.
전남대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결성대회를 가졌다.
가야 하는데, “만세! 결성됐어!” 소리가 났다.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뇌리에 ‘속보’라는 말을 새겨냈다.
6월 9일 김성진 등 전날 식당에 모였던 선생들은 모두
8시가 아직 안 된 이른 시각에 현관 앞에 도착했다.
결의를 굳히기 위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곧 윤보현 선생이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직원노조 먼 곳 분회를 결성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점심시간이 되자 한 사람씩 조용히 4층 강당으로 갔다.
1시 20분경, 4층에서 교원노조가가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흐르는 전주에 감흥이 일어나 나는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왼쪽으로 가, 팔을 흔들며 솟구치는 희열에 젖어
“살아 숨 쉬는 교육 교육민주화 위해 가자, …….”
대중에게 처음으로 노래를 선동하며 목소리를 쏟아냈다.
“교장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교직원노조
먼 곳 분회가 발전되기 바라는 바입니다만…….”이라고
아리송한 발언으로 우리들의 일에 끼어들어 왔는데……,
하루 뒤인 6월 10일에 전교조 전남지부가 결성되었다.
6월 17일 토요일, 학교 앞 삼거리에서 나왔을 때에,
1시 20분경에, 건너편 인도에 모여드는 선생들을,
그 20미터쯤 아래 전문대 쪽엔 차도의 전경을 보았다.
전문대가 목포지회 결성대회장인데.
밀고 밀리고, 어느 결엔지 내가 제1열에 서 있었다.
막기만 하던 전경이 교사들의 턱밑에 방패를 들이대고
뒤에서는 공권력을 무너뜨리려고 밀어붙이고,
견디다 못한 1열의 4인 스크럼이 풀어졌는데,
나는 방패에 오른쪽 손등을 찍혀버렸다.
피가 나고 등 뒤가 허전한데, 돌연 전경들이 내려갔다.
집회 예정 시간인 2시를 20분이나 지났는데.
교사들이 삼삼오오 흩어져서 집회장으로 가고 있었다.
전문대 정문 앞에서 ‘더불어’와 ‘자고협’ 소속
낯익은 학생들의 “전교조 사수!” 하는 외침이 흘렀다.
6월 19일 월요일 오전 휴게실에 있는 나에게
“지회 결성 상황으로 미루어보니까 단위 학교에도 탄압이
올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가”
하고 가야 할 길을 김성진 선생이 물었다.
“일단 미술실로 거점을 잡읍시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김 선생에게 설명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1층 교장실 다음다음 교실에서
일이 진행된다고 선생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그 얼굴 아래 한 거리에서, 빛을 그리워하는 마흔두 살,
요즘 나는 그저 아무렇게나 내버려지고 싶었을까
나에겐 해야 할 말과, 삶의 흔적이 많아져만 간다고
나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있었건만.
시간의 색깔은 자신이 지향하는 빛깔로 간다
문득 어느 날에 시간은 내게 이런 사연을 새겨
나를 청춘이 발하는 것으로 가 있게 했었는데.
그리하여 21세기에도 살아갈
빨간 장미를 품은 집시
나를 ‘삶’이라는 굴레로 스쳐갔었는데
요즘 나는 남아버린 창백한 얼굴
갈라진 나뭇가지 같은 다리를
내 삶의 흔적처럼 끄집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