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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30818894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2-01-25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_ 김재원, 이숭희
I 서문 _ 히로아키 구로미야
1. 한국, 중국, 미국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삶
2. 신념의 변화
3. 죽음, 생존 그리고 귀환
4. 실종
II 김건후의 생애 _ 이숭희
1. 김건후의 성장 과정과 아버지의 영향
2. 칭치엔허의 중국 생활
3. 허버트 김의 미국 생활
4. 시련의 소련 생활
5. 석방, 귀국, 그리고 납북
6. 무혐의 종결과 복권
III 시베리아의 유형수, 게르베르트 김의 악몽 _ 김건후
1. 체포, 재판, 사형수 감방의 9일
2. 알마아타 임시수용소, 즐라토우스트 정치범 수용소, 솔로베츠키 수용소
3. 쿠루폴다 수용소, 아르한겔스크 임시수용소
4. 보르쿠타로 이동, 보르쿠타의 초기 생활, 제2지구
5. 보르쿠타 수용소의 일상, 북극지역의 겨울, 제4지구, 제3지구
6. 갑작스런 호출, 보르쿠타 출발, 모스크바로 이동, 모스크바의 첫 폭격, 모스크바 감옥
7. 모스크바 출발, 오렌부르그를 거쳐 사마라(쿠이비셰프)로 이동, 소련 비밀경찰(NKVD)의 심문
8. 모스크바 재이송, NKVD 요원 면담, 쿠이비셰프 이송, 석방
IV 허버트 김 이야기 _ 레너드 버치
V 폴린의 기록 _ 폴린 김
1. 폴린이 루스벨트 영부인에게 보낸 탄원서
2. 폴린이 허버트에게 보낸 편지
VI 에필로그:안개 속 여정 _ 김재원
1. CSM 캠퍼스에서
2. 정정식과 결혼,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3.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 김건후 연보
∎ 사진 및 문서자료
책속에서
20세기 초, 전 세계를 뒤흔든 격동과 마주하며 살았으나, 잊혀진 역사에 묻혀버린 김건후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한국에서 김건후(金鍵厚)로 태어난 그는 중국 국적을 획득하면서 칭치엔허가 되었고, 미국에 도착하여 청년 허버트 김(Herbert Kim)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미국 대공황은 학업을 마친 그를 소련으로 내몰았고, 소련에서는 게르베르트 김(Герберт Ким)으로 불렸다. 이 여러 이름은 그가 겪은 역경을 반영한다. 결국 그는 소련에서는 스탈린 대숙청에,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에 희생당했다. 그는 파란 많은, 기구한 삶을 살았던 한국인 인텔리겐차이며 광산 엔지니어였다.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 곳에서 여러 해를 거쳐 언급되었으나, 한국의 가족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딸 김재원이 이 모든 기록들을 파헤치기 전까지는 단지 그의 부인이었던 정정식 교수에 의해 단편적으로 그의 딸에게 전해졌을 뿐이다.
김건후의 삶의 궤적은 그의 개인적 선택이기보다 한국이 처했던 국내외적 격변의 결과였다.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떠난 망명, 상해 독립운동가 가족의 궁핍한 삶, 일본의 대륙 침략과 동북아의 세력 변화, 미·소 간의 협력과 대립, 그리고 세계 최초의 이념적 대립이었던 한국전쟁. 이 모든 것들이 김건후가 겪어야 했던 고난이었고, 그의 고난은 곧, 돌아갈 곳 잃는 디아스포라의 모진 운명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처음 의도는 김건후의 이동 궤적(한국, 중국, 미국, 러시아)을 따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그의 개인적 삶의 상관관계에 천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초자료들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생애의 일부 시점에 관하여는 밝혀지지 못하고 있고, 또한 일부 문서는 기밀이 해제되지 않아 학문적 접근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우선 그의 친필 수기를 중심으로 그의 행적을 정리하였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04년(혹은 1905년) 평양 남쪽, 강서에서 태어난 허버트 김은 그의 가족을 따라 1916년에 중국으로 망명했는데, 이는 그의 부친 김홍서(1886~1959)가 감리교 지도자였으며, 교육자였고, 평양의 주요 신문사의 편집인으로서 일제의 한국 점령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친은 1919년 상해에 세워진 망명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 시민권을 얻은 허버트 김은 상해의 YMCA에서 활동했고, 결국 미국 유학을 결정했으며, 그의 부친도 이 결정을 지원했다.
1923년 허버트 김은 미국으로 들어와서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휴론대학에서 수학했다. 그가 중국, 일본 등지에서 활약한 사회주의적 기독교 선교사인 조지 셔우드 에디(George Sherwood Eddy, 1871~1963)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그는 “젊은 한국인으로서 나는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느꼈고 (…) 그래서 광산학의 미래 실용성에 주목했다”고 하였다. 휴론대학에서 수학한 이후 1924년에 그는 콜로라도의 광산대학(CSM)으로 옮겨갔고, 여름방학마다 사우스다코타 리드에 있는 홈스테이크 금광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928년 CSM에서 광산학 학위를 받은 후,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2년 동안 수학하였고, 광산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30년 그는 미국인, 폴린 립만(Pauline Liebman)과 결혼하였다.
그의 상세한 기억은 이 책(III. 시베리아의 유형수, 게르베르트 김의 악몽 참조)에 재현되어 있으며, 스탈린 테러와 소련 강제수용소에 관한 가장 감동적이고 강력한, 그리고 방대한 개인적 기록의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