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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20053658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5-08-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부. 주권 회복을 위한 헌신
올리버 R. 에이비슨 (어비신 魚丕信)
1. 조선의 자립 기반을 위해 의학교육 제도를 만든 의사
사건파일 의병 봉기
로버트 D. 스토리
2. 외교 주권 침탈을 폭로해 전 세계에 알린 기자
사건파일 ‘을사조약’
프레더릭 A. 매켄지
3.《대한제국의 비극》으로 주권 침해를 증언한 저널리스트
사건파일 의병전쟁
호머 B. 헐버트 (허흘법 許訖法)
4. 외교 주권 되찾으려 헤이그로 달려간 ‘자발적 외교관’
사건파일 만국평화회의 특사단
2부. 조선을 지키기 위한 용기
프랭크 W. 스코필드 (석호필 石虎弼)
5. 일본군의 탄압을 사진으로 기록해 조선을 지킨 수의사
사건파일 제암리 학살
황줴
6. 한·중·일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한 출판인
사건파일 신한청년당
로버트 G. 그리어슨 (구례선 具禮善)
7. 일제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조선인을 구해낸 선교사
사건파일 ‘105인 사건’
루이 마랭
8. 유럽에서 진행된 독립운도을 지원한 정치인
사건파일 구미위원회
추푸청
9.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혁명가
사건파일 김구 피난처
조지 S. 맥큔 (윤산온 尹山溫)
10. 신사참배 거부로 민족적 자존심 고수하게 한 교육자
사건파일 숭실학교 폐교
3부. 제국주의에 저항한 정의로운 연대
조지 L. 쇼
11. 체포와 구속, 외교 분쟁에도 굴하지 않고 임시정부 도운 사업가
사건파일 안동교통사무국
후세 다쓰지
12. 일본 법정에서 조선인과 함께 재판 투쟁을 펼친 변호사
사건파일 2.8 독립선언
가네코 후미코 (박문자 朴文子)
13. 식민과 인간 억압에 모두 맞선 아나키스트
사건파일 관동대지진
조지 A. 피치 (비오생 費吾生)
14. 아버지에 이어 조선인과 함께 고통을 감당한 목회가
사건파일 윤봉길 의거
두쥔훼이
15. 조선 독립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실천한 해방 운동가
사건파일 중한문화협회
책속에서

프레더릭 A. 매켄지_ 2. 《대한제국의 비극》으로 주권 침해를 증언한 저널리스트
바짓가랑이 속에 숨겨 전달된 편지
1월, 스토리는 일본 고베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트리뷴》의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이다. 《트리뷴》은 1906년 1월 15일, 런던에서 창간된 신문으로, 볼턴 지방 방직업자의 상속자이자 자유당 소속의 젊은 국회의원 프랭클린 토머슨(Franklin Thomasson)이 소유주였다. 이 신문은 고급지를 지향하며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08년 2월 8일, 창간 2년 만에 폐간되고 만다.
대한제국에 온 스토리는 고종과 접촉할 수 있는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 마침내 고종과 연락이 닿았다. 스토리는, 당시 궁궐 안팎은 일본의 감시가 심했고 첩자가 득실거렸기 때문에 고종은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신하들조차 일본 병사들에게 대궐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고 회고했다.
스토리가 처음 고종 측으로부터 받은 교서(敎書)의 내용은, 일본의 위협 아래 고종 본인이 암살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교서를 접한 뒤, 스토리는 자신이 기존에 의존하던 정보 통로 대신, 오로지고종의 교서만을 믿기로 했다. 대한제국 상황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비밀리에 전달되는 고종의 편지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스토리는 밤마다 숙소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궁중에서 고종의 신임을 받는 인물들은, 바짓가랑이 속에 편지를 숨겨 몰래 전달하곤 했다. 이런 극도의 경계와 긴장감 속에서, 1월 어느 날 새벽 4시, 고종의 붉은 옥새가 찍힌 밀서가 스토리에게 전달되었다.
고종이 그를 어떻게 믿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스토리가 긴 여정 끝에 결국 고종과 직접 소통하는 경로를 확보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스토리는 직접 고종의 밀서를 받아, 일본의 감시망을 뚫고 대한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고종 황제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밀서는 총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을사조약’을 부정하는 고종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밀서를 받은 밤, 스토리는 미국 총영사와 함께 무사히 서울을 탈출했다.
황줴_ 6. 한·중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한 항일운동가
조소앙·김상옥과도 교류
황줴는 구국단 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조직했던 신아동맹당을 중국에서도 이어나갔다. 1920년 1월 신아동맹당을 개조하여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했다. 대동당은 민족평등, 국가평등, 인류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삼평주의(三平主義)를 채택했다. 대동당에는 장멍주(張夢九)·쉬더헝(許德珩)·저우핑칭(周平卿) 등 중국인을 비롯하여 조선인, 인도인, 일본인, 러시아인 등 3,00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박진순(朴鎭淳)을 매개로 한인사회당(상하이파)의 지도자인 이동휘, 김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김규식, 여운형, 윤현진, 김철 등 상하이의 조선인 유력자들도대동당에 참여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동당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사업으로 여겼다. 이처럼 황줴는 꾸준히 동아시아 연대에 기반한 혁명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이처럼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황줴의 관심과 지지는 꾸준했다. 특히 상하이서 열린 3·1운동 기념식에 자주 참석했다. 확인된 참석만도 1925년, 1928년, 1930년
으로 세 번인데, 주로 한·중 연대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또한 조소앙과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소앙이 종로경찰서투탄의거를 거행한 의열단원 김상옥의 평전을 1925년 상하이에서 출판할 때, 황줴는 김상옥의 뜻을 기리는 중국인들의 조사(弔詞)와 만사(輓詞) 부분의 서문을 썼다. 김상옥의 의거 전에 조소앙이 김상옥을 황줴에게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처럼 황줴는 다양한 계열의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