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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18986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22-02-28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김멜라|저녁놀
[작품 해설] ‘무쓸모’와 ‘쓸모’ 사이, 예술의 슬픈 연대기_ 조연정
김병운|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작품 해설] 11시부터 1시까지, 두 번째 언어를 연습하는 시간_ 김건형
박서련|그 소설
[작품 해설] 자기 위장술에 대한 단상_ 김찬기
박솔뫼|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작품 해설] ‘그림자 개’가 찾아오면 돌봄 산책을_ 오창은
서이제|두개골의 안과 밖
[작품 해설] 새로 말하기_ 김보경
위수정|풍경과 사랑
[작품 해설] 영원한 혼잣말_ 인아영
이서수|미조의 시대
[작품 해설] ‘미조의 시대’는 언제 찾아올 것인가?: 2020년대식 구로동발 엘레지_ 최혜림
이선진|부나, 나
[작품 해설] 가위바위보가 만드는 세계_ 김미정
이주란|위해
[작품 해설]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을 표현하기_ 문예지
이주혜|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작품 해설] 어떤 몸의 역사와 나아가는 몸_ 노태훈
최은영|답신
[작품 해설] 독자의 답신을 기다리는 여성 서사_ 노대원
한정현|쿄코와 쿄지
[작품 해설] 너의 기록이 나의 기억이 될 때_ 강도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또 함께 읽는 일은 문학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매해 국내에서 발표된 단편소설 중 ‘문제적’인 작품을 선정해온 『올해의 문제소설』을 2022년에도 발간하게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현실이 달라진 만큼 문학의 모습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그 변화들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어서 문학의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하게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가치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여러 매체와 콘텐츠들이 이야기로서의 소설을 위협하고 있지만 ‘언어’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도구를 통해 무궁한 세계를 각자 다르게 그려낼 수 있는 소설의 매력은 분명하다.
『올해의 문제소설』은 2021년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검토해왔다. 서울대 국문과 ‘현장문학 읽기’ 세미나 팀이 약 400여 편에 이르는 소설들을 그때그때 따라 읽으며 정리한 결과를 토대로 복수의 한국현대소설학회 심사를 거쳐 대상작을 선정하였다. (중략)
2021년은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쓴 해로 기억될 것이고 한국 문학의 현장에서 발표되는 소설들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문학은 상대적으로 그 창작과 발표 등 활동에 있어 제약이 덜 했지만 현실을 반영하면서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인물을 그려내야 했을 때 작가들의 고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적·계급적 양극화는 심각해졌고 차별과 혐오는 노골적으로 거세졌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 분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을 견디는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결코 낙관적이라고만은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한국의 작가들이 재현하는 풍경들이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지독하고도 참혹한 세계에서 독자들이 미약하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책의 역할이 충분할 듯하다.
『올해의 문제소설』은 ‘문학상’이 아니기 때문에 추천작의 숫자도 정해져 있지 않고 굳이 한 작품을 ‘대상’으로 뽑지도 않는다. 모쪼록 많은 독자들이 한국 소설의 현장을 다채롭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책 머리에 중에서
미조야, 내가 가발 공장을 다녔더라면 내 정수리가 이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정수리가 이랬어도 가발을 직원 할인가에 살 수 있었겠지. 그런데 미조야, 내가 지금 레종이랑 도림천에 버려져 있는데, 여기 온통 중국말만 들린다. 미조야, 나는 내가 예쁘지 않고 날씬하지도 않은 건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게 너무 걱정이다. 아직도 나는 너무 잘 그리거든. 네가 이 얘기 싫어하는 거 알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할게. 내가 그린 웹툰 진짜 잘 팔려. 오늘은 팀장한테 불려가서 칭찬도 들었다. 잘 자라. 이게 돛대다.
(이서수, 「미조의 시대」)
저 아래 내 몸이 보였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수술대에 누운 53세 여성의 몸은 아침마다 욕실에서 비춰본 모습과는 달랐다. 나는 지금 영(靈)인가. 혼(魂)인가. 저 아래 내 몸이 따뜻한 걸 보면 나는 죽지 않았다. 이런저런 위험요소를 인지했다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던 일이나 마취제가 들어가기 전 의사가 숫자를 세어보라고 했던 것, 조금 어색한 느낌으로 하나, 둘, 셋까지 중얼거렸던 것도 다 기억한다. 그러곤 검은 망각 속으로 까무룩 가라앉았는데, 어느새 슷 혹은 븟 하고 수술실 천장에 떠올라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는데. 영화 포스터에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콜릿 바 하나의 무게라는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코웃음을 쳤더랬다. 사람마다 몸의 모양도 색깔도 무게도 길이도 부피도 다 제각각인데,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는 단일 수치로 설명하려 들다니. 그런데 지금 부유하는 내 영은 21그램일까. 터무니없는 호기심으로 혹시 수술실 안에 전자저울 같은 게 있나 둘러보기까지 했다.
(이주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