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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21474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4-05-2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십장생 금침衾枕
물고기 연적硯滴 / 십장생 금침衾枕 / 매화길 / 반딧불이의 쇼생크 탈출 / 하이바이, 19 / 바다가 되는 일 / 그대라는 한 뼘 / 내가 살고 있는 집 / 파란 나비 / 내 안에 / 세 사람 / 소리 오딧세이 / 그래, / 목련등불 / 인왕산 기슭 수성동 계곡을 벗삼다
제2부 비 오듯 바람 불듯
사월에 / 천년 사계 / 나비 핀 / 클래식 노트 / 비 오듯 바람 불듯 / 오라Aura 물리학 / 사랑 참, / 도로명주소 납 4구역 / 소소한 일상 / 염습 / 탄생 / 제법 비 오는 소리 굵다 / 미술관 사는 엄마 / 미인 / 지음知音 / 해찰
제3부 오래된다는 거
햇빛 알러지 / 돌이 된 물고기 / 지상열차분야지도 / 그대 / 홍랑, 홍랑, 홍랑 / 베리 연가 / 밥 / 해변의 카잔차키스 / 그랬습니다 / 오래된다는 거 / 붉은 원피스 사진 / 자코메티 / 너 / 발의 흔적 / 눈
제4부 동행이라서
겨울 동백 / 시간의 돌무덤 / 동행이라서 / 모란꽃 / 강치의 바다 / 기다림 / 섬 / 산길 버스킹 / 용서해요 / 새마을호 / 봄날 / 아시나요 / 프리즘 / 아모르 2012, 영화를 보다 / 아일랜드 / 선물
작품 해설:경(景)에서 경(經)을 읽어내는 특출한 안목과 식견_ 호병탁
저자소개
책속에서
10년 만에 내는 시집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 감회가 어떠한지 우선 「시인의 말」을 읽어본다. “시가 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모처럼의 “책 만들기는 지난”했다며, 자신의 시편들을 “그냥,/ 크고 붉은 나의 한생을/제목으로 눙쳤다”고 겸손하게 옷섶을 여미고 있다. ‘크고 붉은 나의 한생’이란 말이 눈길을 끈다. 시집 제목이 『홍녀』다. ‘홍’에는 크고(鴻), 붉다(紅)는 의미가 공유된다. 그렇다면 ‘홍녀’라는 말은 크고 붉은 생을 살고 있는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중략)
경험이란 우선 오관을 통한 외부 세계의 감각적 지각이다. 말은 인류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로 생긴 의미의 기호다. 그런데 말을 독특하게 사용함으로써 의미의 모체인 경험을 자극할 수도 있다. 문학 언어는 바로 이런 능력이 있고 또한 이를 추구한다. 「십장생 금침」의 언어들도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의미의 기호들이다. 그리고 대상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소위 심상(心象)이다. 심상은 글자 뜻 그대로 ‘마음에 떠오르는 모습’이다‘. 마음속의 그림’이란 말의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심상은 시각뿐 아니라 모든 감각을 망라한다.
작품의 언어들 중 ‘이불’은 사랑을 나누는 방 안의 풍경을, ‘밤’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 좋은 시간임을, ‘배’는 여인의 벗은 몸을 떠올리게 한다. 그 외의 어휘들도 서로 조합하며 강한 심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로 “열 개의 몸짓이 황금 폭포로 내 안에 쏟아지는 일” 또는 “기골찬 대숲 바람 소리”는 얼마나 시각과 청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심상이 되고 있는가.
시적 심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비유’다.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은 ‘수놓아진 십장생’의 참신한 비유다. 이 ‘열 개의 몸짓’은 작품 곳곳에서 ‘황금 폭포’, ‘대숲 바람’, ‘시퍼런 썰물’, ‘신비한 우주’와 같은 모습으로 화자인 ‘나’와 관계하며 그 의미의 힘을 뻗쳐가고 있다. 이 말들 역시 모두 비유에 해당한다. 그리고‘ 열 개의 몸짓’은 이 같은 동계열 의미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열 개의 모습’, 즉 ‘십장생’은 작품의 ‘상징’으로 뻗어가는 심상이 되는 것이다. ― 호병탁(시인·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십장생 금침衾枕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밤마다 내 배 위에 하늘이 내려오는 일
그 지체 높은 십장생이, 실밥으로 박혀 있던 열 개의 몸짓이
황금 폭포처럼 내 안으로 들기 시작했다
열락이다
기골찬 대숲 바람 소리 들린다
목이 긴 흰 새와 찔레순 닮은 관을 달고
오방색 구름톱 넘나드는 무구한 것들 온데간데없이
달이 부풀어 오르는
밤마다 내 배 위엔 새로운 땅이 솟는다
또 열락이다
밤새 대숲 바람 소리 세차다
아슴한 그곳 봉과 황의 몸이 닿는 순간
구름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내가 치솟는다
빈 곡신에 시퍼런 썰물이 들이치면
백 년 적송이 온몸으로 운다
열 개의 몸짓이 황금 폭포로 내 안에 쏟아지는 일
밤마다 내게로 하늘 내려오는 일
신비한 우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절로 십장생이 되는 일
두 눈 질끈 감은 채
밤마다 열리는 마법의, 그 영화로움에 빠져
나는 끊임없이 수만 번씩 바람 이는 대숲에 들고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난다
십장생 수 이불을 한 채 들여온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의 이 천 개의 열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