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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22969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5-07-15
책 소개
목차
제1부
공중 식물 / 꿈속에서 꾸는 꿈 / 지팡이는 자꾸만 아버지를 껴입어 / 말말말 / 전상서 / 팔월 열나흘 밤 / 이택재 / 물 먹은 거울 / 몸을 만질 수 있나요 / 새가 태어나는 장소 / 자석 / 공의 길 / 아연하다 / 진흙의 성 / 메모리얼 파크
제2부
대가족의 거죽 / 지천명하다 / 하품하다 / 불량품 사용법 / 또는 그 이름 / 향유하다 / 분자 가열 / 콩나물국밥 / 칩거에 들다 / 윤슬 / 발광하다 / 쥐생뎐 / 부자의 그림자 / 닻을 올려라 / 메이드 인 이태리
제3부
꼬리연 / 그 성에 가면 / 신문고를 울려라 / 칠백 년의 약속 / 거기서는 입이 터졌능교 / 사량도 / 몽유도원도 / 금빛 은행잎 / 촛불 / 엽서 한 장 / 개명 명령어 3075 / 잔도 / 꽃들이 만발하는 / 고추잠자리 / 만성 두통
제4부
능소화 / 죽어도 놓자 바위 / 베개 든 남자 / 탈피 / 갈잎의 노래 / 죽음을 반죽하는 동안 / 세상에 망친 가면극은 없다 / 죽음 해부학 / 뒷골목 / 홀씨로 날다 / 씨감자 / 죽음의 모양 / 이명 / 말의 기포 / 덩이줄기
작품 해설 : 타자 삶의 핵심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자아-권영옥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팡이는 자꾸만 아버지를 껴입어
다리가 열릴 때마다 한 발이 삐끗 넘어지고
다리가 닫힐 때는 몸이 가만히 오므리지
울음이 넘쳐 출렁이는 출렁다리
차라리 바람 소리로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천둥번개라도 찾아왔으면 해
쇳소리만 입안 가득 한숨을 물고 가족들은 소리에 끌려다니지
아니 소리에 달라붙지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듯
주저앉아 살아온 날들을 모래알처럼 굴려
아버지를 껴입은 늙은 지팡이가 자국 한번 짚어내는데
눈자위가 움푹 파인다고
말린 눈물꽃 걸어두려 허공에 못을 박고 있지
중심에서 이탈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으며 사라지는 흔적들
그 소리도 삶이라고 쿵, 가는 주인의 다리를 위해
지팡이가 큰소리를 치네
신문고를 울려라
그랬나 끝까지 해삐라
느므 새끼 올라가 있다카믄 속상했것지만서도
내 아덜이 올라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제
이래 내치구 저래 내치구 오날날까지 짓밟기만 한 몸뚱이 아이가
근디 야야 그 까마득 높은 송전탑엔 우예 올라갔노
월매나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없으믄
죽을 둥 살 둥 거기까정 겨 올라갔겠노 말이다
말 못 하는 짐승매냥 억수로 들이박았는갑다
하늘도 피멍 들어 시퍼렇게 질리다
애꿎은 송전탑만 붙잡고 울고불고할지 내사마 몰라다카이
짓무른 눈가 마를 날 없는 에미를 생각해서라도
저 개가죽인지 소가죽인지 찢어질 때까지 받아삐라마
말의 기포
서로 말을 하자고 입만 벙긋대던 날들이 갔어
말의 길이 닫혀버린 입을 한일자로
여닫은 채 말 없는 모양을 찍어냈지
신화에 나오는 줄기를 따라 뭔가를 만들려고
쏜살같은 길을 만들며 기어갔지
제발 무어라도 되자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한 게 대물림은 아니겠지
전통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닐 거야
역사와 역사 사이에서 뭉개진 울음은 얼마나 강력한가,
말을 만들어내지 못한 후에도 여전히
말의 공복에 시달리는 걸 보면
차가운 얼굴은 조상인 아버지의 아버지 작품일 거야
말을 통하여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날들은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까 대신
세상을 뒤집으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
파손된 말은 주변을 파랗게 물들이면서 떨고 있는 무표정이지
외침 같은 고요한 시간이 지나가고
하루라도 말이 없으면 안 되는 절실함에 대해
이 세상 누구보다 간절해지지
손이 입의 망치가 되려고 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