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31572757
· 쪽수 : 800쪽
· 출판일 : 2016-07-27
책 소개
목차
1. 호분(胡紛)
2. 약엽(?葉)
3. 산호(珊瑚)
4. 등(橙)
5. 양홍(洋紅)
6. 취람(翠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예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 주는 최고의 영역. 사람들은 동물처럼 생존에만 의존하다가도 소리의 흥겨운 자락에, 혹은 그림 한 장에 발길을 멈춘다. 밥을 먹지 못해 배는 곯더라도, 혹은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침침한 와중에도 쉬이 발을 움직이지 못한다. 예술은 때로 생존보다도 더 중해질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 예술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주는 존재이다.
그러니 역사 속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고 자라고, 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소설 봤냐? 아 선생님 얼굴 한번 뵈었으면~”
“하…… 이것이야말로 걸작이야. 내 아낌없이 뒤에서 받쳐 줄 테니 재능을 펼쳐 주시게, 선생.”
그네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가는 얼굴을 뵙지 않아도 절로 ‘선생님’ 소리가 나온다. 선생님이라는 명칭 안에는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예술가라는 족속은 중 특이한 인사들이 많은데, 이들은 돌연 자취를 감추고는 한다. 갑자기 산속으로 들어간다든가, 난데없이 하던 활동을 그만두는 것이다. 이럴 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나타나 주시겠지 하는 소망을 접지 못한다. ‘농사에 재미가 들리셔서 세책가에 책 대신 과일을 보낸다더라.’, ‘놀이에 빠지셔 가지곤 발가락에 붓 끼어서 그린다더라.’ 온갖 소문들은 피를 말리게 하고 때로는 욱한 마음을 들게 하여…….
‘확 가둬 놓고 돈 줄 테니 일하라고 채찍질하고 싶다.’
하는 생각까지 가능하게 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에서 그친다. 첫째로 가두는 건 범죄 행위이며, 둘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럴 만한 재력이 없다. 내가 돈 많은 사람이면 후원을 빵빵하게 하여 내 님들을 먹여 살릴 거라는 슬픈 농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남자가 있었다.
“예……. 예화를 끌고 오라고요?”
누군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빙긋 웃는다.
“선생.”
“……예?”
“예화 선생이라고 똑바로 말하세요. 그리고 끌고 오라는 게 아니라 모셔 오라는 겁니다.”
웃는 얼굴과 달리 목소리에서는 살얼음이 뚝뚝 떨어졌다. 질겁하여 고개를 숙인 사람을 보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비단 옷이 ‘스르륵’ 밑으로 흘러내렸다. 남자는 천천히 다가가며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일 년 전부터 산이 좋다며 자취를 감춘 사람입니다. 마지막 그림이 나온 지 벌써 삼백팔십구 일이 지났다 이겁니다.”
정확한 날짜에 고개 숙인 사람은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셔 오세요.”
남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것은 황제의 명입니다.”
황제 초하율. 그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권력과 강력한 재력을 가진 남자였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삼 개월이 되는 날, 하율은 당신이 수집하던 그림으로 모자라 화공을 끌고 오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황제가 사랑하는 예술가 한 명 데리고 오라는 것이 무엇이 힘들겠는가. 이 정도의 권력 정도는 응당 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신하가 물러난 뒤, 하율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러나 ‘후후’ 하고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드디어.”
“하율.”
뒤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율은 화사하게 웃으며 뒤를 돌았다. 병풍 뒤로 또래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 역시 하율처럼 키가 큰 무사였다.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하율을 응시했는데, 눈만큼은 황당하다는 걸 숨기지 못했다. 그걸 본 하율은 예쁜 눈웃음을 쳤다.
“왜 그런 눈이야?”
“예화를 찾기 위해…….”
“예화 선. 생.”
하율은 ‘선생이라고 불러야지~’ 하며 검지를 좌우로 흔들거린다. 진록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다시 말했다.
“예화 선생을 찾기 위해 전국으로 군대를 풀겠다고?”
“응.”
하율은 제 호위무사이자 친구를 보며 말했다.
“황제가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
호위무사 진록은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상대의 소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예화. 그는 황자 시절부터 하율이 좋아했던 화공이다. 어느 정도냐는 물음에 답하려면 끝도 없다. 차근차근 예화의 그림들을 사들여, 현재 그의 그림은 모두 하율이 갖고 있을 정도였다. 황제가 된 이후로는 아예 궁 한구석에 예화의 그림만이 전시된 방까지 만들었다. 참으로 지극한 사랑이다.
진록은 그림 볼 줄을 모르기 때문에 ‘잘 그렸나 보다’에서 그쳤지만, 이쪽은 아니었다. 하율은 이제 그림을 넘어 사람까지 납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하자.’
여기 황제님의 예화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거야 알았으니 더는 말하지 말기로 한다.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정도로 하율은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었다. 대신 진록은 다른 걸 물었다.
“데려오면 어쩌려고.”
“어쩌기는.”
하율이 활짝 웃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일단 모셔 와서 얼굴도 보고…….”
‘황제가 모셔 온다는 표현을…….’
친구의 기가 차다는 눈빛을 받으면서도 하율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림을 그리지 않나 물어봐야겠지?”
“끝이야?”
“그럴 리가.”
하율은 농담도 잘한다며 말했다. 그러다니 별안간 웃음이 싹 사라졌다. 지나칠 정도로 밝던 미소가 없어지자 삽시간에 인상이 바뀌었다. 하율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낮아져 있었다.
“평생 동안 모셔야지. 행복하게 잘 살게 해 줄 테니 나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라고 할 거야.”
그 말을 들은 진록은 벌써부터 얼굴도 보지 않은 화공이 불쌍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