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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5482236
· 쪽수 : 432쪽
책 소개
목차
#1장. 사람을 함부로 돕지 마라
#2장. 기울어진 세계
#3장. 집이 망했다
#4장. 손수건의 행방
#5장. 내 인생을 망치러 온
#6장. 멋진 신세계
#7장. 사랑의 형태 Ⅰ
#8장. 사랑의 형태 Ⅱ(1)
저자소개
책속에서
“많이 먹어요, 이리나.”
젊은 남녀는 마주 보고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여자에게 말을 거는 백작은 무척이나 미형의 남자였는데, 그의 낮은 목소리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따금씩 그에게서는 감출 수 없는 열망이 흘러나왔다.
그의 시선은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과 마른 어깨, 구불거리는 머리칼에 차례로 머물렀으며 부인할 수 없이 어둡고 진득거렸다.
“오늘은 무엇을 하십니까.”
일레노아가 그런 기색을 감추고 다시 정중하게 묻자 이리나는 흐음, 하며 고민에 빠졌다. 잠시 뒤 마음을 정했는지 그녀가 대답했다.
“정원 일 하는 걸 배워 볼까 해. 빨래도 하고 뭐, 시간이 되면 다른 일도 좀 하고.”
이리나 노디악.
그녀는 쇠락한 귀족 집안의 장녀로 현재는 눈앞의 남자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었다.
한때는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던 그녀의 집안이 몰락한 것은 전적으로 노디악 전 후작 때문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새 시대를 맞이하여 도진 그의 사업병 때문이었다.
노디악 전 후작은 가진 능력에 비해 이루 말할 수 없이 과감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연이은 투자 실패로 그가 진 빚은 너무나 엄청난 액수여서 일가는 작위와 영지를 팔고도 오랜 시간 빚에 허덕여야만 했다.
그 채무와 함께 후작가의 남은 권리를 고스란히 인수한 것은 일레노아 슈베르크 백작이었다.
그는 키센 내 막강한 부를 자랑하는 슈베르크 상단의 주인이었으며, 이리나의 아카데미 동기였다.
“이리나.”
“응?”
일레노아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연인을 대하듯 감미로운 음성이었으나 고개를 들고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시큰둥해 보였다. 사실은 조금 불편한 기색인 것 같기도 했다.
그 영롱하고 깨끗한 금안을 응시하며 일레노아가 상냥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낮에는 햇빛이 강합니다. 무리하다가 몸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하녀장에게 말해 챙이 넓은 모자도 꼭 쓰시고요.”
“그래, 알겠어.”
이리나는 백작가에 몸을 의탁한 뒤, 하녀 정도의 급료를 받으며 틈틈이 빚을 갚아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둘의 관계를 적당히 정상적인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집안에서 일하는 하녀를 저렇게 세심하게 챙기는 가주는 없을 터였다. 이토록 따사로운 채무 관계도 없을 터였다.
또한 그녀가 제아무리 평생을 바쳐 일을 한다 하더라도 적은 급료로 그 큰 액수를 다 변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레노아가 채무와 함께 인수한 가장 큰 권리는 바로 이리나 노디악이었다.
그는 그 권리를 폭군처럼 함부로 휘두르려 들지는 않았으나 가끔은 그 사실에 어두운 희열과 깊은 충족감을 느끼곤 했다.
그게 일레노아 슈베르크라는 인간의 본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