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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원서발췌 삼봉집](/img_thumb2/9791143009562.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91143009562
· 쪽수 : 249쪽
· 출판일 : 2025-08-20
목차
권1
부(賦)
묵죽부(墨竹賦)
오언고시(五言古詩)
뜰 앞의 국화[庭前菊]
병을 앓는 가운데 삼봉의 옛집을 생각하며(病中懷三峯舊居)
칠언고시(七言古詩)
서적포를 두는 데 대한 시(置書籍鋪詩)
육언절구(六言絶句)
기전산하(畿甸山河)
도성궁원(都城宮苑)
열서성공(列署星拱)
제방기포(諸坊碁布)
동문교장(東門敎場)
서강조박(西江漕泊)
남도행인(南渡行人)
북교목마(北郊牧馬)
권2
칠언절구(七言絶句)
단옷날의 감회[端午日有感]
한식(寒食)
오언율시(五言律詩)
촌거즉사(村居?事)
산중(山中)
산중(山中) 두 번째
가을장마[秋霖]
집을 옮김[移家]
악장(樂章)
문덕곡(文德曲)
권3
전(箋)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올리는 전(箋)
서(書)
나주(羅州)의 동쪽 누각에 올라 노인들에게 드리는 글
서(序)
과거 시험 보러 가는 조생(趙生)을 전송하는 서
권4
기(記) ?
석정기(石亭記)
소재동기(消災洞記)
군자정기(君子亭記)
경복궁(景福宮)
사정전(思政殿)
근정전(勤政殿)·근정문(勤政門)
설(說)
농부에게 답함[答田父]
가난
전(傳)
정침전(鄭沈傳)
제문(祭文)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謝?魅文]
권5
경제문감(經濟文鑑) 상(上)
재상(宰相)
권6
경제문감(經濟文鑑) 하(下)
대관(臺官)
권7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상(上)
보위(寶位)를 바르게 함
나라의 명칭[國號]
치전(治典)
부전(賦典)
예전(禮典)
권8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하(下)
정전(政典)
헌전(憲典)
공전(工典)
권9
불씨잡변(佛氏雜辨)
불교 윤회(輪廻)의 변
불교가 인륜(人倫)을 버린 데 대한 변
불교의 자비(慈悲)에 대한 변
불교의 화(禍 : 재앙)와 복(福)에 대한 변
권10
심기리편(心氣理篇)
이(理)가 마음[心]과 기(氣)를 타이름
권13
진법(陣法)
총술(總述)
정진(正陣)
장수를 논함
사졸을 어루만지는 다섯 가지 은혜
군사를 쓰는 여덟 가지
적을 헤아려 승리를 거두는 네 가지 계책
열한 가지 반드시 싸워야 할 때
여섯 가지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
공격하고 수비하는 세 가지 방법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땅에 사는 백성들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써 위협할 수 없으며,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떠나갑니다. 떠나가거나 쫓아오는 간격은 털끝만큼의 차이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서 구차하게 얻는다는 것이 아니며, 도리를 어기고 명예를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역시 “오직 어짊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至愚也 不可以智欺之也 得其心則服之 不得其心則去之 去就之間 不容毫髮焉 然所謂得其心者 非以私意苟且而爲之也 非以違道干譽而致之也 亦曰仁而已矣
사직(社稷)
사(社)라는 것은 토지의 신이고, 직(稷)이라는 것은 곡식의 신입니다. 대체로 사람이란 땅이 없으면 존립할 수가 없고, 곡식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부터 제후에 이르기까지 인민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사직(社稷)을 설치하는 것이니, 대체로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겨울에 가죽옷 한 벌, 여름에 갈옷 한 벌로 일찍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며 기거함에 구애됨이 없었고 음식도 마음대로 했다. 두세 명의 학자와 강론하는 틈틈이 계곡의 시냇물을 따라 바위 골짜기를 오르내리는데, 피로하면 쉬고 흥이 나면 걷고, 아름다운 곳을 만나면 노닐며 살펴보고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느라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또는 농사꾼이나 시골 노인을 만나 나뭇조각을 나누어 앉고서 옛 친구처럼 서로 위로했다. 하루는 뒷산 등성이에 올라 바라보았는데, 그 서쪽 편이 조금 평편하고 아래쪽으로 넓은 들에 접해 있는 것이 좋아 드디어 종에게 말라죽은 나무들을 베어버리게 하고 두 칸짜리 집을 지었다. 띠를 가지런히 자르지도 않고 나무를 다듬지도 않은 채 흙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갈대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었으므로 일이 간단하고 힘이 적게 들었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와서 도와주어 며칠이 못 되어 완성했다. 현판을 ‘초사(草舍 : 풀집)’라 하고 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