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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2441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4-09-23
책 소개
목차
서장
1. 해와 달
2. 선월당(禪月堂)
3. 호월(護月)
4. 눈물 비
5. 깨어진 꿈
6. 만월의 월령
7. 전장의 사자(死者)
8. 홍접의 날갯짓
9. 이어진 진심
10. 이별
11. 새로운 인연의 등장
12. 뜻하지 않은 도움
13. 달이 차오른다
14. 참백
15. 마음으로 이어지는 길
16. 전쟁을 팔다
17. 선택
18. 마지막 싸움
종장
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까만 밤이 물러나고 세상이 다시 빛을 찾을 무렵 호는 잠에서 깼다. 꼬박 삼 일을 죽은 듯 잠만 잤다는 사실을 호는 알지 못했다. 기분은 상쾌했고,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긴 옷 아래로 보이는 팔뚝과 손에 붉은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면 이곳이 선월당인 것도, 자신이 호월의 의식을 치렀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깨셨습니까?”
호가 침상에서 내려서는 순간 마치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문이 열리고 일월이 들어왔다. 자신의 피붙이처럼 키운 령과는 달리 호는 호월이 되었다. 아무리 일월이라도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이가 된 것이다. 일월의 뒤엔 령과 비슷한 또래의 여아가 제 몸보다 더 큰 비단을 들고 있었다. 호월이 인사를 하려는데 일월이 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호월님을 뵈옵니다.”
일월은 진심을 담아 공손히 절을 했다. 령에게도 예를 갖추지 않던 일월이었다. 그런 일월의 행동에 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황한 호가 할 말을 찾는 사이 일월은 같이 온 아이가 들고 있던 비단을 받아 호의 앞에 내려놓았다.
“참멸도(斬滅刀)입니다. 호월님의 것이지요.”
일월이 비단을 걷어내자 오동나무로 만든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로로 긴 모양을 보니 저 안에 참멸도가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호의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 상자만 보았을 뿐인데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일월이 말해주지 않아도 저 검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신이 저것을 제 것이라 외치고 있었다.
“왜 이것을 주시는 겁니까?”
호는 상자로 가려는 손에 힘을 주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눈을 뜨자마자 찾아와 다짜고짜 칼을 주는 일월의 행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제 이곳을 나가주십시오.”
호의 예상이 맞았다.
참멸도 모든 것을 없애는 칼. 선월당은 물론 세상에 있는 모든 귀들이 가장 무서워할 것이 바로 이 칼일 것이다. 그런 칼을 이곳 선월당에서 주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 칼은 호월이 나타난 지금, 더 이상 선월당에 있을 수 없습니다. 참멸도는 말 그대로 귀를 멸하는 칼입니다. 호월이 나타나기 전엔 월령의 힘이 이것의 힘을 묶어두었지만, 호월이 나타난 지금은 여태까지처럼 계속 이 힘을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가지고 도도산으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신도란 분을 찾으십시오. 그분이 호월님의 앞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일월은 호를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상자를 보는 순간 예상한 일이었다. 호를 살피던 일월은 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한 번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이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일월의 말을 듣고 있던 호가 입을 열었다.
“령은…… 령은 괜찮으십니까?”
듣도 보도 못 한 도도산(桃都山)으로 가야 하는 것도,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는 연신 미안하다 죄송하다 울던 령이 걱정될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일월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호는 제 몸만 한 상자를 안아 들고 망설임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식사는 물론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쫓겨나듯 나가는 호의 뒷모습을 보는 일월의 눈에 참았던 눈물이 고였다.
“부디, 부디 강한 호월이 되어 돌아와 주십시오. 그래서 령이, 그 아이의 옆에서 오래도록 지켜주십시오.”
호월의 존재는 의식만 치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강인한 전사인 호월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훈련이 필요했다. 제대로 훈련을 받고 온전한 호월이 되고 난 뒤 령의 옆을 지키게 되는 것이었다. 그 훈련이 어떤 것인지 일월은 알지 못했다. 그저 선대의 호월이 그리 했기에 그리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더 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령은 아직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닫힌 창으로 걸었다. 들끓는 신열을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무릎에서 자꾸만 힘이 빠졌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고 선 령은 창문을 열었다.
“아!”
방황하던 눈이 한곳에 멈춰 섰다. 막 선월당을 나서는 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삼 일 내내 한 번도 깨지 않고 잠만 자 혹 의식이 잘못되었나 걱정된 령은 삼 일 꼬박 호의 옆을 지켰다. 들끓던 기혈이 잦아들고 열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호의 방을 나왔다.
“일어났구나.”
호에게 갔던 일월이 돌아왔다.
“괜찮으신 거죠?”
창문 밖에 선 호의 등을 보던 령이 물었다. 까맣게 죽은 입술이 삼 일간의 고생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강하시더구나.”
령의 상태를 아는 일월은 창가로 걸어가 령의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월령’의 초혈을 마신 호는 아무 걱정이 없었지만 령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피의 능력을 행한 걸로도 모자라 귀들의 공격까지 받은 령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일월은 령을 침상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볼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일월은 령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부축한 손에 힘을 주었다.
령은 조금씩 멀어져 가는 호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의 집이 습격당하고, 그 과정에서 그의 아비와 어미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도 막지 못했다. 왜 그리되는지, 어째서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인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의식을 준비하라 일러준 목소리도 의식에 필요한 과정이니 나서지 말라는 경고만 할 뿐이었다. 오만한 신의 목소리는 늘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는 호월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 힘든 것은 다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령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향해 반듯하게 걸어가는 호의 등을 보며 눈을 감았다. 눈을 다시 뜰 수 있을 때까지 저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