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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엘리 2

이노엘리 2

노엘 (지은이)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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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엘리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이노엘리 2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6821
· 쪽수 : 568쪽
· 출판일 : 2016-08-24

책 소개

노엘 장편소설. 소녀가 열세 살 생일 때 케이크 앞에서 빌었던 소원은 딱 하나였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잠들었다 눈을 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목차

외전. 까마귀의 노래 - 모든 이야기의 시작
7. 판도라 상자 (下)
8. 굴레 (上)
9. 굴레 (下)
10. 전야제


저자소개

노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생태 습지 동네에서 서식하는 글쟁이. 머릿속 망상을 털어 내고 싶어서 글 쓰는 중. <그 남자의 허리띠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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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바람에 나뭇잎이 자기들끼리 몸을 비벼 대며 쏴아- 하고 울렸다. 제 몸을 흔드는 바람을 타고 얇고 작은 꽃잎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눈이 시리도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 안에 더 아름다운 그가 있었다.
두근.
가슴이…… 뛰었다.
이노엘리는 혹시라도 제가 움직이면 그가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 숨소리마저 죽이고 서 있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하지만 계속 신경 쓰이고 궁금했던 사람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마주하자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궁금했던 마음 저편에 꼭꼭 숨어 있던 진심을.
보고 싶었구나. 저 사람이…….
숨이 찼다. 그것이 멋대로 뛰는 제 심장 때문인지 숨을 참고 있는 것 때문인지 헷갈렸다.
첫 만남 때와는 달리 그는 푸른색 셔츠에 은색 크라바트를 매고 검은 바지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다. 금단추가 달린 몸에 딱 맞는 프록코트가 그의 큰 키를 강조했다. 격식에 맞춰 차려입으니 외모가 한층 두드러져 눈이 부셨다.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이제 겨우 두 번 만났는데도 오랫동안 알아 왔던 사람처럼 낯설지 않아 놀라웠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책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떨려서, 숨이 차서, 왠지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서, 이노엘리는 그의 모습만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그림 속에서 빠져나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눈 몇 번 깜빡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제 앞에 서 있는 그가 신기하고 얼떨떨했다.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그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침묵. 이성과의 만남이 익숙지 않은 건 그도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이 상황을 매끄럽게 해결할 만한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카일은 가슴이 답답했다. 다른 여자였다면 알은척하기 전에 먼저 몸을 피해 버렸을 텐데 이 당돌한 소녀에게는 이미 몸이 의지를 벗어났다. 그가 움직이기 전에도, 코앞으로 다가간 후에도 소녀의 검푸른 눈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았다. 다른 이들이 저를 보는 걸 싫어했던 그였는데 이 소녀의 눈이 그를 따라오는 건 제게 집중하고 있고 온전히 저만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져 자꾸 심장이 간지러웠다.
“너…… 뭐야?”
오랜 침묵 끝에 튀어나온 그의 말이 뜬금없어 그녀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왜 자꾸…… 쳐다봐?”
평생 입에 발린 고운 말 같은 건 써 본 적이 없으니 엉클어진 제 심경이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예뻐서요.”
그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곱상한 외모로 어릴 때는 여아로 오해받은 적도 많았고 어린 나이에 신분을 숨기고 전쟁터를 돌아다닐 때는 같잖은 것들이 남색을 드러내며 들러붙은 적도 많아서 카일에게 예쁘다는 말은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직격탄이었다. 보통 머리를 어깨 길이 정도로 기르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그의 머리는 두상을 덮을 정도로만 짧은 이유이기도 했다.
만일 다른 놈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면 대번에 함부로 나불거린 입을 짓이겨 놨을 것이다. 여자들도 예외는 없었다. 몇 번 마지못해 참석한 연회에서 그의 외모를 칭찬하는 영애들에게 살기 가득한 눈빛을 날리며 으르렁거린 전적도 있어 그의 면전에서 외모를 언급하는 간 큰 사람은 근래에 없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그의 차갑게 변하는 안색을 보면서 웃기까지 했다. 미소가 떠오른 눈으로 소녀가 손을 그의 얼굴 쪽으로 뻗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대응할 때를 놓쳤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옆머리를 건드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반사적으로 가는 손목을 잡아챘다. 인정사정없는 힘에 이노엘리의 몸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딸려 왔다. 그 덕에 둘 사이가 주먹 하나 들어갈 틈을 두고 가까워졌다.
“뭐야?”
카일은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그녀를 노려봤다. 손목을 쥔 커다란 손의 악력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한 것이 신경 쓰였다.
제 키가 작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가까이 서고 보니 그녀의 시선이 그의 어깨에 겨우 닿았다. 가까이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그를 올려다보는 기분이 묘했다.
“꽃잎이…….”
“……뭐?”
“꽃잎이 붙어서요.”
그녀를 쏘아보던 그가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작은 연분홍 꽃잎을 잡고 있었다. 카일은 지나치게 힘을 주어 가는 손목의 피부색이 변해 가는 걸 보고서야 제 행동이 과했음을 깨달았다.
팽개치듯이 잡은 손목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민망했다. 자꾸만 바보같이 구는 제 자신에게, 저를 이상하게 휘두르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손목을 문지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소녀의 행동이 저의 무람없음을 탓하는 것 같아 귓불이 달아올랐다.
휙 돌아가려는데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를 붙들었다.
“내 이름!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한다. 하지만 대답해 줄 생각 따윈 없다. 더 꼴사납게 굴기 전에 그저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떠나고만 싶었다. 다시 발을 떼는 그에게 또 소녀가 말을 던졌다.
“다음에 만나면 알은척해도 돼요?”
“……하지 마.”
쌀쌀맞게 답했다. 나한테 다가오지 마. 부글거리는 마음이 제멋대로 날뛴다. 제가 지금 얼마나 한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두려워 함부로 몸을 돌릴 수도 없다. 그저 걸음을 크게 해서 최대한 빨리 소녀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소녀가 불편한 건 분명한데 또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마냥 싫지 않은 제 마음이 당혹스러웠다. 아니다. 싫다. 싫어. 싫은 것이다. 싫어야 한다.
“싫어요.”
뚝. 발이 멈췄다. 카일은 순간 제 속마음을 소녀에게 들킨 것이라 여겼다. 아니면 제 입에서 나온 말인가? 헛갈려 저도 모르게 돌아보자 처음처럼 똑바로 직시하는 검푸른 눈이 기다렸다는 듯 마주쳤다.
“알은척할 거예요. 난.”
“…….”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매번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다가오는 소녀 때문에 원래의 저라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날 땐 이름을 불러 줘요. 너라고 하지 말고. 내 이름은, 이노엘리예요.”
“…….”
“만나서 반가웠어요…… 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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