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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21757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13-07-2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
프롤로그 02.
01~18.
에필로그의 프롤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엄마, 뭐해?”
처음 보는 낯선 아이가 머릿속을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덕분에 머리가 쿵쿵거리며 울려댔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데 머릿속에선 방금 전의 상황이 연이어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엄마 일하잖아. 바빠서 그러는데 방해하면 어떡해.”
“엄마, 일해?”
“설마 엄마가 우리 민우랑 아빠 놔두고 맞선이나 보고 있겠어? 아니겠지.”
싸늘하던 강후의 미소에 민소매로 드러난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패기 없던 맞선남은 자리를 뜬 상태다. 대신 그 빈자리를 강후가 메우고 있었다. 방금 전 아이의 아빠를 연기하던 때와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일까, 아니면 맞선을 보는 진래로 인해 분노가 이는 것일까?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랜만이지?”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 숱 많은 까만 머리카락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쌍꺼풀 없는 눈빛은 예전보다 더욱 깊어진 모습이다. 곧은 콧날과 아래로 이어지는 날렵한 입술은 여전히 먹음직……. 아니, 단정했다. 볼이 홀쭉한 걸 보니 살이 좀 빠진 건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미쳤어, 내가 왜 그런 걱정까지 하는 거야! 진래는 이성을 잃어버리려는 자신을 단속했다.
강후의 물음에 진래는 경직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워낙 오래 보지 않은 상대이기도 했고, 봐서 좋을 것 없는 상대이기도 했으며, 이렇게 우연히 만나 말을 섞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식으로…….”
와이프, 포르노 등 그가 언급한 말을 떠올리자 삽시간에 얼굴이 붉어진 진래다. 낯 뜨거워서 정말, 누가 보기라도 했음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더 노골적인 말도 할 수 있다는 당당한 태도의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나 반성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 모양새였다.
“도와준 거잖아.”
“뭐?”
“비겁하게 빙빙 돌리기나 하고. 싫으면 싫다고 직구를 날리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거 몰라? 그래서 내가 대신 던졌어. 그 직구.”
진래는 입술을 살포시 깨물었다. 그가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문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절할 핑계를 찾고 있던 거잖아. 내가 도와준 건데?”
아주 잠시 마음이 약해지려던 진래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에 와서 그가 이런 행동을 할 이유도, 권리도 없었다.
“도와달라고 안 했어.”
“그럼 멋대로 끼어든 거라고 치자. 네가 맞선이나 보자고 쫄래쫄래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나로서 기분이 아주 엿 같거든.”
강후와 달갑지 않은 재회 후, 계속해서 그가 발산해내는 소유욕을 느끼며 부정해왔던 진래였다. 자신의 착각일 거라는 생각으로 민감하게 솟은 촉을 무디게 만든 그녀였지만 지금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왜?”
“왤 것 같아?”
강후는 진지한 얼굴로 반문했다.
알게 뭐야!
큰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은 진래는 화제를 돌렸다. 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의 태도에 휩쓸려 괜한 마음고생 하고 싶지 않았고. 이, 밟지 않아도 될 지뢰를 밟고 자폭하고 싶지 않았는데다. 삼, 두 사람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한가하게 안부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니까, 안부 묻는 건 생략할게.”
“한가하게 안부 주고받을 사이는 어떤 사인데?”
“적어도 이혼한 사이는 아니겠지.”
“그래서, 궁금하지 않으시다?”
“별로. 잘 살았겠지.”
“난 궁금해. 조질래 네가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지.”
진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스스로를 다스렸다. 참을성, 인내, 득도, 해탈……. 하지만 5년 동안 갈고 닦은 그 스킬도 쓸데가 없었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강후 덕분에 머리 한 부분에서 나는 폭발음을 들으며 진래는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았다.
“죽기라도 바랐다는 거야?”
“설마. 그렇게 오해했어? 연락 한 통 없기에 죽은 줄 알았다는 말이었는데.”
“내가 연락을 했어야 해?”
“할 수 있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좋게 헤어졌든 나쁘게 헤어졌든 이미 끝난 인연이야. 난 헤어지고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뭔지, 잘 모르겠어.”
여전히 올곧은 눈빛이고, 또 순수하리만치 진지하고.
강후는 눈앞의 진래를 바라보며 그의 기억 속의 그녀와 매치를 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좀 당당해졌고, 거칠어진 것도 같고, 씩씩하고.
“끝났다라……. 아이가 있었더라면 연락하고 지낼 수 있는 사이는 될 수 있었으려나?”
강후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든 진래가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 전, 자신의 바지춤을 잡았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강후와 똑 닮은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 진래는 뒤통수를 힘껏 맞은 느낌에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헤어진 지 5년이 흘렀으니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긴 했어도 왜인지 모르게 묘한 느낌이다.
“아이. 아, 맞다. 선배, 아이가……있었어?”
그렇게 물으며 진래는 빠르게 그의 긴 손가락을 훑었다. 결혼반지나 커플링의 흔적은 없었다. 그런 그녀를 재미있게 바라보며 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아이야.”
그 말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