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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과 살해의도

형사법과 살해의도

임종식 (지은이)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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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법과 살해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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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형사법과 살해의도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법학계열 > 형법
· ISBN : 9791155500675
· 쪽수 : 436쪽
· 출판일 : 2014-08-29

책 소개

영미 형사법에서도 오랜 난제로 남아 있는 '살해의도'에 관한 문제를 철학적 논의를 통해 새롭게 정의하고, 판별 기준을 제시한다.

목차

머리말

1. 범죄심리상태와 의도

1.1. 영미 형사법과 범죄심리상태
몽유병을 앓고 있던 토마스Brian Thomas는 2008년 7월 캠프용 밴을 타고 아내와 함께 웨일스로 여행을 떠난다. 행복감에 도취되어 둘만의 시간을 보냈으나, 여행 마지막 날 새벽 눈을 떠보니 아내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맙소사, 내가 아내를 죽인 것 같소. 누군가가 침입한 줄 알았는데, 꿈이었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999로 사건 정황을 알려 살인 혐의로 기소된 그는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다. “사건 당일 폭주족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잠들었는데 … 아내 위에 누군가가 있어 그의 목을 움켜잡고 아내로부터 떼어냈소”. 정신과의사의 자문을 구해 검찰이 기소 결정을 철회했듯이,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심리상태mens rea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 영미 형사법의 오랜 전통이었다. 초기 입법부와 법원은 범죄심리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악의적인’, ‘사악한’, ‘의지의 타락’과 같은 용어를 사용했으나 나중에야 ‘의도적인’이라는, 보다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범죄심리상태를 ‘의도적인’의 의미로 파악하고자 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방향을 선회한 것은 호랑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늑대굴로 들어간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검찰에게는 피고인에게 의도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그리고 판사에게는 배심원단에게 의도의 의미를 지시해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영국의 형사법과 의도

1.2.1. 의도 그리고 바람과 목적
배우로서의 명성을 쌓아가던 스틴Sebastian Steane은 1924년 고향인 런던을 떠나 독일로 이주해 유명세를 더해간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게슈타포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나치의 선전방송에 동참한다. 종전 후 적을 도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적을 도왔다는 혐의로 영국 검찰에 기소되어 3년 징역형을 언도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며, 최고법원인 상원 역시 항소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준다. 스틴이 적을 돕고자 의도했는지가 쟁점이 되는 가운데 상원의 데닝 대법관은 “적을 돕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적을 돕고자 의도했다는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인다. ‘어떤 것을 의도했다면, 그것을 바랐다’는 데닝 대법관의 견해는 의도한다는 것의 외연을 지나치게 축소 해석한다는 논란의 소지를 남길 뿐 아니라 특정 사건에 대한 봉합책은 될 수 있으나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1.2.2. 의도 그리고 예견
조부모님 결혼 40주년 파티에 참석한 22세의 현역군인 몰로니Patrick Moloney는 의붓아버지와 총 다루기 시합을 벌인다. 몰로니가 탄창을 먼저 장착하고 승리를 자축하자 아버지가 용기가 없어 쏠 수 없을 것이라며 다그친다. 용기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은 몰로니가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엽총의 방아쇠를 당겨 아버지가 얼굴에 총탄을 맞고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82년 열린 1심재판에서 아버지가 사망할 것을 예견했다는 이유로 의도적인 살인죄 판결을 받고 항소하나 기각된다. 하지만 최고법원인 상원은 1심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의도의 의미를 잘못 지시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법조인뿐 아니라 법이론가 그리고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도를 예견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견해였다. ‘예견한다’는 것과 ‘의도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 없으나, 몰로니 사건 1심 판사와 같이 전자를 후자의 충분조건으로 제시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1.2.3. 예견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테스트
2013년 10월 24일, 계모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뎌내던 이모(8) 양이 소풍을 가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숨을 거둔다. 사건을 담당한 울산지검은 계모 박씨가 폭행 과정에서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을 인식한 상태에서 폭행을 했다고 보아 살인 혐의를 적용한 반면, 울산지법은 미필적으로라도 살인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보아 살인 혐의가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2013년 8월 24일, 온몸에 멍을 달고 살았던 김모(8) 양이 계모의 폭행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사건을 담당한 대구지검은 계모 임씨가 폭행 과정에서 미필적으로라도 살인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보아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으며, 대구지법 역시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960년 3월 2일, 승용차 뒷좌석에 훔친 물건을 싣고 가던 스미스Jim Smith가 경찰관의 정지 명령을 따르다 급출발하자 경찰관이 차로 뛰어올라 보닛에 매달린다. 경찰관을 매단 채 90m 이상을 갈지자로 질주해 차에서 떨어진 경찰관이 마주 오던 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담당한 도노반 판사는 경찰관이 차에 매달린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스미스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형이 가능한 의도적인 살인죄를 적용한다. 계모 박씨와 임씨에게도 도노반 판사의 판결이유를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1.3. 미국의 형사법과 의도 - 모범형법전을 중심으로

1.3.1. 모범형법전과 범죄심리상태
보험금을 노리고 세 명의 아내를 살해한 핸드Gerland Hand에게 크루거 판사는 2003년 5월 사형을 선고한다. 2006년 10월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주전 가드 잭슨Stephen Jackson은 싸움을 말릴 목적으로 허공에 9mm 권총을 다섯 발 이상 발사한다. 잭슨을 기소한 브리지 검사는 그가 6개월에서 최고 3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헤로인 중독 치료제, 정신안정제 등을 혼합 과다 처방함으로써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헨리Jesse Henry Jr. 박사는 2004년 9월 일곱 건의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5만 달러 벌금형과 5년 보호관찰을 선고받는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심리상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그리고 범죄심리상태를 의도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영미 형사법의 전통을 놓고 볼 때, 핸드에게 잭슨보다 무거운 형벌이 내려졌다는 것이 그리고 잭슨에게 헨리 박사보다 무거운 형벌이 내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 미국법률협회가 1962년에 공포한 모범형법전에 의존해 위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을 시작으로 의도에 대한 미국 형사법의 시각을 조명하고자 한다.

1.3.2. 모범형법전과 의도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사회의 도덕률을 넘어설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한 마리의 이에 불과한 저 전당포 노파를 죽여도 된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선과 악을 나름대로 규정하고 실천에 옮긴다. 하지만 영미 형사법의 근간을 이룬 도덕률은 사뭇 다른 견해를 보인다. 그것에 따르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미 형사법에 의존하면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마땅히 의도적인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의도를 정의하고 있는 모법형법전의 두 조항을 자구대로 해석해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상태를 놓고 모순된 답변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들 두 조항을 적용하면 가장 죄가 되는 심리상태로 흉기를 휘두른 동시에 가장 죄가 되는 심리상태로 흉기를 휘두른 것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두 조항을 포기할 수 없다면 작성자의 취지를 우호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2. 왜 의도인가?
출산 중인 임신부의 산도産道에 태아의 머리가 끼어 태아뿐 아니라 임신부의 생명도 위태롭다. 임신부를 살리기 위해서는 태아를 산도로부터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태아의 머리를 부수는 것 말고는 달리 태아를 제거할 방도가 없다. 반면 임신부를 죽게 방치한 후 복부를 절개해 태아를 살릴 수 있다. 이 경우 의사가 가진 선택지는 태아의 머리를 부수고 임신부를 살리는, 임신부를 죽게 방치하고 태아를 살리는, 현 상황에서 손을 떼는 세 가지뿐이다. 하지만 이들 중 어떤 선택을 해도 살인행위처벌에 관한 법률의 근간이 되고 있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도덕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점이 위의 규칙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의도’에서 찾지 않고는 위의 규칙에 도덕규칙으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따라서 그것에 기초한 법이 주문하는 형벌이 응보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3. 의도가 아닌 것

3.1. 동기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연행된 용의자에게 경찰관이 살해 동기를 추궁했다. 용의자가 보험금 때문이라고 자백해도 어색하지 않으며 경찰관도 만족할 것이다. 살해의도를 물었다면 어떠한가? 이 질문에 역시 보험금 때문이라고 답변해도 어색하지 않다. 일상적으로 의도를 동기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듯이, 동기와 의도를 동일시하는 것이 상식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적용 범위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 동기, 의도 중 후자를 전자보다 폭 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위의 상식을 부정하고자 한다.

3.1.1. 특정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및 배경으로서의 동기
2009년 5월 19일, 31세의 레지던트 응우옌Charles Nguyen은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성을 찾아가 성폭행한다. “응우옌이 침대에서 저를 진찰하겠다고 해서 거절하자 손과 발을 묶고 협조하지 않으면 저뿐 아니라 옆방의 조카까지 살해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조카와 저의 안전을 위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간을 당했다는 피해 여성의 주장에 맞서 응우옌은 동의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나, 애선스 카운티 민소재판소는 강간, 유괴, 악질적 주거침입으로 각각 10년 그리고 증거조작으로 5년, 도합 35년의 징역형을 언도한다. 애선스 카운티 민소재판소가 응우옌을 중죄로 다스렸듯이, 응우옌이 범행을 저지른 동기와 무관하게 그가 죄의 중대요소를 의도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의도와 동기를 동일시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3.1.2. 특정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및 선택 그 자체로서의 동기
보험금을 노리고 두 전처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았던 핸드Gerland Hand는 네 번째 부인 질JillHand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를 도와 두 전처를 살해했던 친구 웰치Walter Welch를 재차 고용하고는 직접 질을 살해한 후 웰치의 입을 막고자 그도 함께 살해한다. 질을 살해할 계획을 세울 당시 웰치도 함께 살해해야 했기에 속사식 권총이 필요했다고 해보자. 따라서 총기점에 들러 속사식 권총을 구입했다고 해보자. 또한 그가 아내를 살해한 최종 목적이 BMW를 구입하는 데 있었다고 해보자. 이와 같은 경우 ‘속사식 권총을 구입한다’는 기술구와 ‘BMW를 구입한다’는 기술구 모두에 의도를 적용할 수 있으나 후자의 기술구에만 동기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의도와 동기를 동일시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3.2. 바람

3.2.1. 어떤 것을 바라면서 그것을 의도하지 않을 수 있다
1962에서 1964년까지 13명의 여성을 살해한 데살보Albert DeSalvo는 10대 때 개와 고양이를 오렌지 상자에 가두고 서로 싸워 죽게 했으며, 상자 틈새로 직접 화살을 쏘기도 하는 등 동물을 학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자 의도했다는 데 이견을 보일 수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라면 화살이 빗겨갔다면 재차 시도했을 것이며, 화살을 맞고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면 보다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즉, 개와 고양이가 고통스러워하길 바랐기 때문에 고통을 주고자 의도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설명일 수 있다. 의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의 물음을 놓고 영미 법조계와 형법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어떤 것을 바랐다면, 그것을 의도했다’는 답변을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의도를 그와 같이 정의해서는 규범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점뿐 아니라 기술적인 차원에서 의 문제점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다.

3.2.2. 어떤 것을 의도하면서 그것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
1980년 초가을 어느 날, 캠벨Steven Campbell은 아내가 친구 배스노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로부터 2주 후 캠벨과 술을 취하도록 마신 배스노가 자살 이야기를 꺼내며 총이 없다고 하자 캠벨은 부모님 집으로 가서 권총과 탄환 5개를 가져와 배스노에게 건네고 집을 나선다. 그날 아침 배스노는 권총을 손에 쥔 채 숨진 채로 발견된다. 열린 살인open murder 혐의로 기소된 캠벨은 1심재판부에 의해 살인죄 판결을 받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수단(권총)이 사용되길 의도한 채 제공한 경우와 그것이 사용되길 바란 채 제공한 경우는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캠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항소심 판결에는 ‘어떤 것을 바란다는 것이 그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충분조건이 아니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위의 전제를 참으로 보아야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제시한 판결 이유에 의존해 의도했는지를 판별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3.3. 목적

3.3.1. 목적을 달성하는 데 원인으로서 기여한다는 것
살인청부업자 A와 B가 각기 다른 의뢰인으로부터 C를 제거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A와 B 그리고 그들의 의뢰인들 모두 C가 다른 살인청부업자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A와 B 모두 C가 출근을 위해 차량에 오르는 시점을 거사시점으로 잡는다. A가 사전답사를 하던 중 C의 차량 차창이 방탄유리라는 사실과 C에게 시동을 걸고는 급출발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A는 미리 차창의 방탄유리를 일반 유리로 교체하고 시동장치를 파손한 후 C가 차량에 오르기를 기다린다. C가 차량에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B가 C를 살해하고 도주한다. 표적이 제거되었으므로 A와 B 모두 의뢰인으로부터 잔금을 받는다. 이와 같은 예가 수단과 의도의 상관관계에 의존해서는 목적과 의도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고자 선택한 것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원인으로 기여했을 경우 그 선택한 것을 수단으로 봄으로써 목적과 의도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준다.

3.3.2.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연루시킨다는 것
1932년 미국 질병예방센터는 매독의 진행 과정을 규명할 목적으로 흑인 매독환자 399명을 선정해 병을 치료해준다고 속이고 병의 진행상황만을 관찰한다. 환자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으며, 연구가 진행되던 중 페니실린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처방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질병은 적극 치료를 해주는 일까지 발생한다. 다른 질병으로 사망하면 매독의 진행과정을 밝혀낸다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2년 성병조사관 벅스턴의 폭로 내용이 <뉴욕 타임스> 1면 머리기사로 실리면서 40년에 걸쳐 자행된 터스키기 매독연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연구진에게 치료 기회를 놓쳐 죽어간 환자들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데는 이견을 보일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라면 연구진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립한 계획에 환자들을 계획적으로 연루시켰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목적을 이와 같이 이해해도 목적과 의도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의도했는지를 판별할 묘책이 있는가?

4.1. 밀접성 논변

4.1.1. 밀접성 논변이란
경찰관 P가 근거리에서 무장강도의 다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예상대로 다리를 명중시켰으나 총탄이 대퇴동맥을 관통해 과다출혈로 무장강도가 숨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어도 P에게 의도적인 살인죄를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경찰관 Q가 비무장의 좀도둑과 마주쳤다. 총으로 위협만 해도 제압할 수 있었으나 근거리에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심장을 정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예상대로 총탄이 심장을 명중해 도둑이 즉사했다면, Q에게는 마땅히 의도적인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방법을 택한다면 험난한 여정을 밟아야 하므로 ‘밀접성 논변closeness argument’에 의존해 다리와 심장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즉, 다리에 총탄을 맞고 사망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므로 경찰관 P에게 무장강도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심장에 총탄을 맞는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경찰관 Q에게는 좀도둑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손쉬운 설명일 것이다.

4.1.2. 밀접성 논변의 한계
동굴탐사대가 탐사를 마치고 귀환길에 올랐으나 뚱뚱한 사람이 앞장서 난감한 일이 발생한다. 그가 동굴 입구에 끼어 나머지 대원들이 동굴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대원들은 그가 야윌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동굴 안쪽으로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원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하고 있어 뚱뚱한 사람을 폭파해 출구를 확보할 수 있다. 밀접성 논변이 설득력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험난한 여정을 밟지 않고도 의도했는지를 판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뚱뚱한 사람 예와 같은 경우가 밀접성 논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4.2. 죽임/죽게 방치함 논변

4.2.1. 죽임/죽게 방치함 논변의 전제
2007년 3월 미군 병사 라모스는 눈이 가려진 채 손이 묶여 살해된 이라크인 4명의 죽음을 방관한 혐의로 체포된다. 법정에 출두한 그는 피해자들이 살해당할 당시 자신이 망을 보았고 원해서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라모스는 피해자들의 죽음을 유발한 직접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피해자들을 죽게 방치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911 응급요원들에 의해 세 아이가 영양실조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워드Natashay Ward는 두 딸과 아들을 “일부러 굶겨 죽였다”고 자백했다. 워드는 아이들을 폭행하지도, 아이들의 음식에 독극물을 넣지도 않았다. 워드 역시 아이들의 죽음을 유발한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모스와 달리 아이들을 죽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두 예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죽임/죽게 방치함의 차이에 의존해 의도 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는 죽인 경우와 죽게 방치한 경우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위의 입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죽인 경우가 죽게 방치한 경우보다 언제나 부도덕하다는 전제도 충족되어야 한다.

4.2.2. 어떤 경우가 죽인 그리고 죽게 방치한 경우인가?
1994년 4월 후투족 출신 르완다 대통령이 전용기 격추 사고로 숨지자 투치족의 소행이라 여긴 후투족 강경파가 100여 일 동안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 80만 명 이상을 학살한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죽음을 유발한 신체동작을 취한 경우가 죽인 경우로, 신체동작을 취하지 않은 경우가 죽게 방치한 경우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죽게 방치한 경우를 그와 같이 보아서는 당시 내가 80만 명 이상의 후투족을 죽게 방치했다는 비난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당시 그들의 죽음을 유발한 신체동작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체동작을 취했다면 상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동작을 취하지 않은 경우를 죽게 방치한 경우로 보아도 크게 나아질 것이 없다. 예컨대 개를 우리에 가두고 굶겨 죽인 경우에도 개를 죽게 방치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임/죽게 방치함 논변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죽인 경우와 죽게 방치한 경우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하나 그것이 용이할지 의문이다.

4.2.3. 죽인 경우와 죽게 방치한 경우 사이에 도덕적 차이가 없을 수 있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자신의 아파트 현관으로부터 30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마친 제노비스Catherine Genovese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위험을 직감하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갔으나 괴한 모슬리가 몸을 날려 그녀를 쓰러뜨린 후 흉기로 등을 두 차례 찌른다. 비명소리로 이웃 창문들에 불이 켜지고 한 이웃이 그녀를 놓아주라고 소리치자 괴한은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불이 다시 꺼지고 나와 보는 사람이 없자 5분 후 돌아와 현관 근처까지 기어간 그녀에게 마음놓고 흉기를 휘두르고는 차로 도주한다. 하지만 욕심을 채울 목적으로 차를 돌려 현관까지 기어간 그녀를 폭행하고 49달러를 빼앗은 후 다시 찔러 살해한다. 제노비스의 죽음을 방관한 38명에게 괴한에게 가해야 하는 비난과 동일한 수위의 비난을 가해야 한다면, 제노비스 사건이 죽임/죽게 방치함 논변에 대한 결정적인 반례가 될 수 있다. 반면, 동일한 수위의 비난을 가하는 것이 모슬리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평가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제노비스 사건이 죽임/죽게 방치함 논변에 힘을 실어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5. 의도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5.1. 토대 마련하기 (1) - 행위 개별화

5.1.1. 합일론과 분리론 그리고 의도
2008년 12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흘간 공습을 가해 최소 307명이 숨졌으며, 한 가족 안에서만 어린이 4명이 숨진 경우도 있었다. 이스라엘 폭격기 조종사는 손가락을 움직였고, 발사 버튼을 눌렀고, 폭탄을 투하했고, 민간인을 숨지게 했다. 그가 별개의 네 행위를 했는가? 아니면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는 하나의 행위만을 했는가? 합일론unifiers’ approach이 옳다면 폭격기 조종사는 하나의 원초적인 행위만을 한 반면, 분리론multipliers’ approach이 옳다면 별개의 네 행위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 행위 개별화 물음을 놓고 영미 형사법과 같이 분리론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수단 = 의도된 의도적인 행위’로 그리고 ‘부수적인 결과 = 의도되지 않은 의도적인 행위’로 보아야 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며, 그럼으로써 이 책의 최종 목적인 의도를 정의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다.

5.1.2. 합일론과 분리론에 대한 평가
소프라노 가수가 오페라 주인공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센 입 바람에 탁자 위의 악보가 날렸으며, 유리잔의 고유진동수와 동일한 공명주파수에 유리잔이 깨졌다. 합일론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행위 기준’을 제시해야 하나, 소프라노 가수의 예가 합일론자들이 제시한 기준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합일론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도 가능하다. “존이 조지를 겨냥해 정오에 방아쇠를 당겼으나, 자정이 되어서야 조지가 숨을 거두었다. 존이 조지를 죽였다는 진술 그리고 존이 총을 쏴 조지를 죽였다는 진술 모두 참이다. 하지만 존이 조지를 죽인 것과 존이 조지에게 총을 쏜 것이 동일한 행위인가?”. 이와 같은 물음이 합일론에 대한 결정타가 될 수 있으며, A와 A’가 동일한 행위라면 그들 사이에 ‘대칭관계’와 ‘재귀관계’가 성립되야 하지만 합일론자가 동일한 행위로 여기는 행위들은 대칭적, 재귀적 관계가 아닌 ‘인과관계’에 있다는 점 역시 합일론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될 수 있다.

5.2.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
- 예견한다는 것과 의도적으로 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1)

5.2.1. 어떤 것을 예견했다면, 그것을 의도했는가?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숙취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자고 나면 두통에 시달릴 것이라 예견한 채로 술을 마시나 두통에 시달리고자 의도하며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어떤 것을 예견했다면, 그것을 의도했다’는 입장은 숙취 예와 같은 반례에 참패당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다음의 예에서 해리슨Gerard Harrison이 ‘살해구획kill zone’을 설정해 그 구획 내의 모든 사람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숙취 예 등이 위의 입장에 대한 반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2001년 7월 27일 저녁, 해리슨은 볼티모어 시티 자신의 구역에서 마약을 팔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발렌타인이라 알려진 마약상을 살해하고자 38구경 권총 6발을 마구 쏘아댄다. 하지만 총탄이 발렌타인을 빗겨가 거리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쿡의 목을 관통해 쿡이 중상을 입는다”. 숙취 예에 의존해서 ‘어떤 것을 예견했다면, 그것을 의도했다’는 입장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다른 방법을 통해 위의 입장을 부정하고자 한다.

5.2.2. 어떤 것을 의도했다면, 그것을 예견했는가?
1575년 어느 날 사운더즈John Saunders는 아내를 살해하기로 작심하고 친구 아처의 지시대로 구운 사과에 비소를 넣고 아내에게 권한다. 하지만 아내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고는 세 살배기 딸에게 건네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워 딸이 사과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사운더즈는 교수형에 처해진 반면, 아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면된 다. 별거 중인 남편 제임스James Poe와 언쟁을 벌이던 카렌Karen Poe이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제임스가 차 트렁크에서 12번 산탄총을 꺼내 현관을 향해 발사한다. 방충문을 뚫고 날아든 50구경 납 탄환에 카렌은 팔을 맞아 죽음을 면했으나 카렌 남자친구의 여섯 살 난 딸 킴벌리Kimberly가 머리를 맞고 즉사한다. 외견상으로는 이와 같은 예가 ‘어떤 것을 의도했다면, 그것을 예견했다’는 명제에 대한 전형적인 반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예에 “의도는 총탄을 따라 옮겨간다”는 ‘전이된 의도 독트린doctrine of transferred intent’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반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5.3. 토대 마련하기 (2) - 어 떤 것을 의도하지 않은 채 그것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다
2007년 12월부터 8개월 동안 멜라민 단백질 첨가제 200여 톤을 생산, 이 가운데 110여 톤을 유통시켜 6명의 희생자와 30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낸 가오쥔제 등은 단백질 첨가제를 의도적으로 유통시켰다. 따라서 가오쥔제 등이 단백질 첨가제를 유통시키고자 의도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한다면 그것을 하고자 의도한다는 것이, 즉 ‘단순견해simple view’가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일부 철학자들은 그 상식을 거부한다. 단순견해가 옳다면 이 책의 관심사인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일은 한층 용이해지는 반면, 단순견해가 그르다면 그것을 제시하는 과정은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필자의 논의를 놓고 단순견해가 갖는 의의는 한층 더해진다. 단순견해를 부정하지 않고는 수단을 ‘의도된 의도적인 행위’로 그리고 부수적인 결과를 ‘의도되지 않은 의도적인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견해를 부정함으로써 수단과 부수적인 결과를 그와 같이 해석할 수 있는 그리고 이 책의 최종 목적인 의도를 정의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5.4.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
- 예견한다는 것과 의도적으로 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2)
온도와 함께 압력도 상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물리학자가 실험 목적으로 압력솥에 물을 붓고 스팀 분출구를 땜질한 후 불을 붙였다. 기체물리학에 무지한 철학자가 밥을 빨리 지을 욕심으로 압력솥에 물을 붓고 스팀 분출구를 땜질한 후 불을 붙였다. 이와 같은 예들로부터 ‘어떤 것을 예견한 채 한다는 것이 그것을 우연히 하지 않는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이다’는 명제가 참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소금을 설탕으로 착각하고 커피에 소금을 넣은 경우와 설탕을 소금으로 착각하고 국에 설탕을 넣은 경우로부터 ‘어떤 것을 우연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했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이다’는 명제가 참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두 명제로부터 ‘어떤 것을 예견한 채로 한다는 것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이다’는 명제가 참임을 유추해낼 수 있으며, 이를 시작으로 예견한다는 것과 의도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5.5.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
-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과 의도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5.5.1.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
1934년, 프란츠 발터라는 최면술사가 기차 안에서 한 여인을 만나 손을 만져 최면 상태에 빠뜨린 후 자신을 위해 매춘부로 일할 것을 명령한다. 이어 그녀에게 남편을 죽이도록 명령했으나 매번 실패로 끝나자 자살하라고 명령했고, 자살을 기도한 그녀는 두 번이나 행인에게 구조된다. 1993년 11월 22일, 유방 절제술 후유증으로 통증에 시달리던 포템파Susan Potempa가 집 차고에서 심하게 구타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우발적인 살인으로 간주하고 수사를 벌이던 경찰이 인근에 살고 있던 18세의 윌리엄스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포템파 사건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포템파가 현금 2,100불을 건네고 윌리엄스에게 동의를 구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들로부터 어떤 것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의 필요조건을 유추하고자 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규명하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5.5.2.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과 의도한다는 것
방파제 양편에 각기 존과 메리가 익사 직전에 있으나, 구조장비가 하나밖에 구비되어 있지 않다. 스미스가 구조장비를 메리에게 던져 존이 익사했다고 해도 그에게 존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새로이 출현한 질병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나, 치료제가 부족해 의사들은 치료가 용이한 환자들만을 선별적으로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치료를 받지 못해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다고 해도 의사들에게 그들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예를 시작으로 ‘A를 하면 E가 초래된다는 것을 예견한 채로 A를 하며, A를 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A를 한다’는 것을 ‘A를 함으로써 E를 초래하고자 의도한다’는 것의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5.6.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

5.6.1. 계획의 일환으로 초래한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장애인과 병자를 청소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으로 시작된 코드명 ‘T 4 작전’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1945년 종전 시까지 27만 5천여 명이 희생된다. 프로그램 운영자들은 장애가 있거나 장애로 의심되는 신생아와 영아를 첫 제거 대상으로 삼았으나, 제거 대상은 곧바로 장애를 가진 유아와 성인 그리고 만성질환자로 확대되며, 유대인, 흑인, 집시 등 독일계 혈통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나치 장애인 학살 사건과 같은 예가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으로 지금까지 밝혀낸 조건들 이외에 ‘어떤 것을 계획의 일환으로 초래한다’는 조건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위의 조건이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정두영 사건과 같은 예로부터 (정두영은 1999년 6월부터 10개월 동안 9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다) 필요조건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5.6.2.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시킨다는 것
“브레이크가 파열된 통제불능의 화차가 선로 A를 질주하고 있다. 선로 A에는 다섯 명이 작업 중에 있으나 지형이 협소해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스미스는 레버를 당김으로써 화차의 방향을 선로 B로 전환시킬 수 있다. 스미스가 레버를 당긴다면 선로 B에서 작업 중인 한 명이 죽게 된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통제불능의 화차가 선로 A를 질주하고 있다. 선로 A에는 한 명이 작업 중에 있으나 지형이 협소해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존스는 레버를 당김으로써 화차의 방향을 선로 B로 전환시킬 수 있다. 레버를 당긴다면 선로 B에서 작업 중인 다섯 명이 죽게 된다”. 첫째 예에서의 스미스와 둘째 예에서의 존스를 차별해야 하는 이유로부터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조건으로 지금까지 밝혀낸 조건들에 ‘자연적인 흐름을 차단시킨다’는 조건을 추가해야 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5.7. 적용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어떤 것을 의도한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책의 결론인 위의 필요충분조건을 지금까지 다룬 사건들에 적용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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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인명/사항

논의된 문헌

저자소개

임종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는 친구를 먹지 않는다.” 친구를 먹지 않았던 극작가 버나드 쇼를 좋아한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법정스님의 축원을 되뇌인다. “인간에게는 비폭력적이고 힘없는 동물을 죽이고 적대시하는 것은 사탄의 철학이다”는 피타고라스의 언명에 공감한다. 인간의 고통이건 돼지의 고통이건 고통은 고통으로 여긴다. 동물학대범들은 이승의 기억을 안고 축생도로 환생, 자신과 똑 같은 인간을 만나길 기대한다. 좋아하는 겨울이 와도 길고양이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Univ. of Wisconsin-Madison) 철학과에서 윤리학과 행위철학 분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에서 강의를 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있다. ≪형사법과 살해의도≫, ≪인간, 위대한 기적인가 지상의 악마인가?≫, ≪낙태 논쟁, 보수주의를 낙태하다≫ 등의 저서가 있고 ≪과학의 발전과 윤리적 고민≫을 편집했으며 ≪생명의 위기≫, ≪2020 미래한국≫, ≪지식의 최전선≫ 등의 공저가 있다. 생명과 관련된 윤리적인 물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죽음과 관련된 형이상학적 물음과 신과 관련된 철학적 물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간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인간중심 평등주의 철학의 이단자로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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