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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022749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5-08-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연어의 꿈 004
추천사 009
#1 새로운 하늘을 찾아 027
봉화 가시나 강순교 029
서간도 아리랑 040
팔로군의 조선인 호리반 048
심양의 이방인들 054
해당화 핀 붉은 나라 060
#2 눈먼 자들의 나라 067
토대라는 족쇄 069
고난의 행군, 죽음의 행렬 075
주린 배를 채운 절망과 공포 085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096
이건 나라가 아냐! 109
#3 어머니는 강하다 121
목숨을 건 월경(越境) 123
두만강이 삼킨 울음 140
사람장사로 대박난 사람들 148
지옥에서의 한 철 158
죽는 자 VS 살아남는 자 170
#4 고단한 귀향길, 빛이 있으라 179
구곡간장 연가(戀歌) 181
억척어멈과 자식들 189
마지막 탈출 199
어머니의 이름으로 기억하라 209
꿈꾸는 자유인 216
두려운 밤의 동행자, 하나님 223
따뜻한 밥 한 끼 231
아름다운 마중 242
에필로그 | 운명을 거슬러 새 삶을 낳다 253
출간후기 260
저자소개
책속에서
[프롤로그]
연어의 꿈
제 이름은 강순교입니다. 저는 여든네 살의 할머니입니다. 북조선에서 탈출하여 중국에서 숨어 살던 저는 2006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일흔다섯 살 때였습니다.
거의 인생의 끝자락에 접어든 제가 사신死神조차 거부하고 이 자유의 땅, 남한에 온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죽기 전에 어릴 적 바라보았던 새파란 고향 하늘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사람답게 살지 못했으나 죽음만은 적어도 사람답게 맞이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나 ‘희망’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제 자식들에게 그 말을 마음껏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932년 경북 봉화군 법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치 연어라는 물고기처럼 죽기 전에 고향을, 고국을 찾아온 것입니다.
까마득한 옛날, 제가 북조선에 들어왔던 50여 년 전 북조선에서도 연어는 참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매년 오뉴월이면 빨래 방망이로 때려잡을 만큼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연어 떼가 있었습니다. 강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몇 달 후면 두만강 상류에서 새끼를 낳고 일생을 마감한 연어들은 시체가 되어 다시 바다에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런 미물조차도 강물을 거슬러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아갈지언대 사람이라면 그 마음은 더 깊고 간절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눈도 컴컴해지고 노쇠한 제가 이처럼 고향에 오기 위해 불 밝히며 타향만리에서 헤매고 다녔을까요?
거센 물살처럼 모진 운명이 주어졌습니다. 마치 제가 거스를 수 없었던 도도한 흐름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연어라는 물고기처럼 그 물살을 거슬렀습니다. 제 운명은 제가 다시 만들어 나가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가시밭길처럼 험한 탈출길도,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공안들도, 저를 업신여기고 이용하려던 중국 사람들도 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대동강 물살을 거슬렀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육신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연어의 삶 모두를 닮지는 않았습니다. 새끼를 낳고 죽어 버린 어미 연어와 달리 저는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제 새끼들과 함께 말입니다.
남한은 어린 시절 겨우 열두 해만 보낸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파가 되었을 때까지도 붙잡고 놓을 수 없었던 제 눈물이자, 그리움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조국에 되돌아올 수는 있는 것일까, 초조한 생각을 할 때마다 입이 말랐습니다.
간절히 빌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의 시푸른 하늘빛 산천을 흐려진 눈동자로라도 한번만 훑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옛 모습이 다 사라지고 없다 해도 고향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었습니다. 뿌연 유년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추억 속에서 고향 산천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간절하게 돌아온 제 귀향길은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제가 경험하지 못한 열렬하고 아름다운 마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차례 국경을 넘나들었던 제가 마침내 아들딸에게 새로운 ‘조국’을 선물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 험난한 과정은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수많은 북조선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네가 겪은 이야기들을 처음에 들은 분들은 너무나 기구해서 거짓말이거나 심한 엄살처럼 느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나라에서 북조선에서 굶어 죽은 제 큰아들을 대신하여 저를 든든하게 보살펴 주는 남한의 새 아들도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돌보아 주는 경찰관입니다.
그이가 내민 크고 따뜻한 손이 작고 굽은 제 등에 닿으면 울컥 그리움과 슬픔이 샘솟습니다. 북조선에서, 중국에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무서운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저를 괴롭히고, 속이고, 두렵게 했던 존재들이 여기에서는 저를 보듬어 주고, 료해*이해하고, 더 주지 못해 안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저를 비롯한 탈북자들의 모진 운명과 그것을 극복했던 과정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 썼습니다. 북조선에서 저는 투철한 사상가도, 한 자락 하던 당 간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 새끼 입에 맛난 것을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였고, 따뜻한 밥 한 끼에 간절히 목을 매던 인간이었습니다.
밥을, 생존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았던 수많은 북조선 어머니들의 눈물과 한숨과 피를 이 책에 담아 보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누리는 ‘자유’는 오늘도 두만강과 국경 어디에서인가 떨고 있는 많은 북조선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얻은 소중한 것일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아직도 자유와 밥 한 끼에 목숨을 거는 수많은 북조선의 ‘강순교’들이 가진 절박한 모정母情을 알아주시고,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