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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227564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2-11-29
책 소개
목차
❘총평❘
고난과 시련과 억압과 슬픔을 치유하는 묘약으로 발전 / 김홍신❘ 9
❘심사평❘
소설 부문 / 이광복, 김지연❘11
시 부문 / 김후란, 유자효❘12
수필 부문 / 유혜자, 지연희❘14
아동문학 / 부문 하청호, 이규희❘16
❘소설 부문❘
대상 / 두 번째 엄마❘김은혜 ❘20
은상 / 사리수집가❘이선연❘ 37
은상 / 실 ❘조경선❘56
동상 / 영원한 아내❘유희섭❘77
동상 / 꿈속의 꿈❘양윤선❘101
동상 / 두엔❘윤정임❘118
❘시 부문❘
금상 / 복제인간 로이❘채연우❘144
은상 / 유품정리사❘이세미❘148
은상 / 육포❘송은정❘152
동상 / 싸락눈❘구기순❘156
동상 / 불온한 사막❘김귀순❘159
동상 / 빈혈❘정현순❘164
❘수필 부문❘
금상 / 차가는 달이 보름달이 될 때❘윤국희❘170
은상 / 겸허❘박태양❘179
은상 / 늙은 펭귄의 날갯짓❘윤태봉❘187
동상 / 민달팽이, 집을 꿈꾸다❘임경희❘194
동상 / 등대의 손❘홍정미❘200
동상 / 겨울의 거울❘김상은❘208
❘아동문학 부문❘
금상 / 엄마는 1학년❘김영인❘216
은상 / 손가락 보험❘허창열❘225
은상 / 호구의 묘수❘김은아❘230
동상 / 잠❘이연숙❘241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자의 첫 목소리는 앳되고 순진해서 약간 기운이 빠졌다. 엄마의 피를 빨아먹는 아귀, 잘린 목을 들고 춤을 추는 살로메. 막연히 상상했던 데스마스크의 이미지와 달랐다. 여자의 말은 야살스럽기보다 천진했다.
나는 공들여 그린 밑그림을 지워야 했다.
“어머, 미안해. 핸드폰을 잘못 눌렸어. 내가 계속 전화를 못 받았거든. 내가 이런 걸 할 줄 모르는데 스팸으로 돌려졌더라고. 미안. 그 사람이 전화했었거든. 근데 전화를 또 안 받는 거야. 미안하게….”
여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추임새처럼 쓰면서 조잘거렸다. 예기치 않은 내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여자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려 폴더를 열었다. 끝자리 7080.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상대를 유추하기도 전에 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급한 일인가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는 단박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의외로 내 마음은 평온했다. 여자의 일은 중요도는 낮지만 행정상 꼭 처리해야 할 일 중의 하나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그림자는 이미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권에 놓여 있었다. 그 존재가 비밀도 아니었고, 때때로 가족의 입을 통해 오르내릴 만큼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놀러 갔던 충주의 수안보 온천에서 여자를 처음 봤다. 아빠와 나는 본전을 뽑겠다고 세 시간이 넘도록 목욕하는 엄마를 기다리느라 진이 빠졌다. 우리는 한참 동안 수족관 앞에 서 있었는데, 그때 여자가 등장했다. 빨간색 하이힐에 흰색 투피스를 입은 여자는 텔레비전에서 막 걸어 나온 여배우 같았다. 여자는 무어라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손에 든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 여자의 존재에 무심했다. 그녀가 아버지의 정부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길을 지나는 예쁜 어른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두 사람이 길지 않은 대화를 끝냈고, 여자가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여자의 손에서 향긋한 분 냄새가 풍겼다.